칼럼ㆍ기고 > 정진원 교수의 노래하는 삼국유사

김유신의 정실 아내 재매정댁 영모부인

정 진원 | | 2024-08-01 (목) 05:59

 정진원(튀르키예 국립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학과) 


신라가 통일하기 위하여 김춘추와 김유신이 지대한 역할을 한만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어머니, 아내, 누이 같은 여인들도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었다. 혈연과 혼맥으로 이중삼중 겹겹이 서로를 결속해 한 가족으로 일체가 되고 차례로 백제와 고구려를 항복시키는 신라의 전략. 

이번에는 다시 김유신의 이야기로 돌아와 유신의 본부인 영모부인에 대해 노래해 보자.


재매정댁 영모부인 


신라를 통틀어 

아니 가야부터 백제, 고구려를 통틀어 

가장 걸출한 사나이가 있었으니 

나의 남편 김유신이라네 


나는 미실의 아들, 하종의 딸이요 

어머니는 진흥왕의 딸 은륜 공주

할아버지는 노리부 또는 세종이이었느니 가야 구형왕의 장남

대대손손 왕족으로 부러움 없이 살았네  


나는 재매부인

나의 우물은 맑고 깊은 암장수 

돈주고도 살 수 없는 재매정 

금테 두른 금입택이 되고도 남았지 


유신에게 첫사랑 천관이 있어도 

나의 언니 유모가 있어도 

유신의 집 이름은 재매정댁 

나의 이름은 재매부인 

유신의 가문은 나만이 건사하였네 


가야, 망한 나라의 허울뿐인 진골 가문 

시어머니 만명이 진평왕의 누이로 신라왕실에 어렵사리 발 들였다면

나는 다섯 신라왕을 주무른 

나는 새 진지왕도 떨어뜨린 미실의 가문 

유신, 드디어 명실상부 신라 왕족으로 입지를 굳히네 


그제사 날개를 단 유신 

춘추와 손잡고 신라를 호령하네 

신라를 넘어 백제와 고구려를 손에 쥐네 


그때마다 물심양면 유신을 보필하는 것은 

나의 금테 두른 재매 우물 

세상에 다시없는 바위틈 암장수 

재매정 물맛으로 사기를 북돋고 전장으로 떠나네  


춘추와 문희의 딸 지소까지

유신 나이 환갑에 시집와 신라가문으로 철갑을 둘러도 

재매정의 우물은 영원하리 

태대각간 흥무대왕 유신의 유일한 반려 

재매정택 영모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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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디자인=미디어붓다)



할머니가 중매한 김유신의 정실부인 영모부인

 지난 시간에 김유신의 첫사랑이자 평생의 사랑일지 모를 천관과 그의 집터였던 천관사, 그리고 왕이 될 징조를 보인 천관사의 우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그가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일을 하던 직분이었으며 비구니로 출가해서는 유신의 공적을 위해 통일 신라의 국운을 기도한 살신성인의 표상이었다고 정리하였다.  

또 하나의 우물 이야기가 담긴 유신의 정실부인은 재매정(財買井)에서 유래한 금입택 재매부인으로 불린다.


유신의 어머니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천관과 달리 유신이 결혼한 여성은 누구였을까. 612년 유신(595~673)의 정실 영모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영모부인(英毛夫人)은 화랑세기(花郞世記) 기록에 의하면 미실(美室)의 손녀이자 신라 11대 풍월주 하종(夏宗)의 딸이다. 영모의 어머니는 풍월주 설원(薛原)의 딸 미모낭주이다. 

영모는 김유신(金庾信)과의 사이에서 맏아들 삼광(三光) 외 네 명의 딸들을 낳았는데 둘째 딸 신광은 문무왕의 후궁이 된다. 

영모는 특히 재매부인(財買夫人)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영모의 모습을 재구성해보고자 한다. 

또 화랑세기에는 영모의 언니 유모 또한 김유신의 둘째 부인이었다고 하나 김무림과 결혼해 자장율사의 어머니로 알고 있던 우리는 혼란스럽다.


18세 김유신 하종의 딸 영모와 결혼

천관녀와 이루지 못한 사랑을 하던 같은 시기에 영모는 유신과 결혼을 한다. 뜻밖의 일이다. 그렇다면 유신의 어머니 만명은 그 사실을 알고 천관을 반대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삼국시대는 연대가 정확하지 않고 잘 나타나 있지도 않아 우리는 역사적 연도만 기억할 뿐 앞뒤 맥락을 들여다볼 생각을 안 하게 된다. 특히 여성들의 기록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모의 생몰연도도 알 수 없고 천관의 생몰연도 또한 모른다. 그러나 화랑세기에 의하면 천관과 사랑하던 동시에 영모와의 혼인을 추진했거나 혼인상태였을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만 있었으면 몰랐을 화랑세기의 위력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건복 29년(서기 612), 이웃나라 적군들이 점점 더 압박해 왔다. 공은 더더욱 비장한 마음이 격동되어서 보검을 차고 홀로 인박산(咽薄山) 깊은 골짜기에 들어갔다. 향을 피우고 하늘에 고하며 기도하기를 중악에서처럼 하였다. 맹세하고 기도했는데 그때 천관신이 빛을 비추어 보검에 영기를 내려 주었다. 3일째 밤에 허수(虛宿)와 각수(角宿) 두 별자리의 빛이 환하게 내려 비추니, 검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화랑세기의 같은 시절 기록이다.

무리들이 유신공에게 몸을 바치기를 원하였다. 이에 지혜와 용기가 있는 낭도를 뽑아서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고 고사(高士)들과 힘써 결속을 맺었으며, 중악(中岳)에 들어가 노인에게서 비결(秘訣)을 받았다. 신변에는 늘 신병(神兵)들이 있어 좌우에서 호위하였다......... 15세 풍월주가 되었다. (만호)태후가 하종공의 딸 영모(令毛)를 아내로 맞이하도록 명하여 미실궁주를 위로하려고 하였다. 영모는 곧 유모(柔毛)의 동생이었다. 형제가 모두 선화(仙花)의 아내가 되었다. 그때 사람들이 영화롭게 여겼다. 곧 건복(建福) 29년 임신년(612)이었다. 공이 풍월주의 위에 올랐다. 날마다 낭도들과 더불어 병장기를 만들고 궁마를 단련하였다.


612년 당시 유신이 무예를 닦고 화랑의 무리를 거느리고 천관신의 신령한 기운을 받는다. 한편 삼국사기에서는 ‘천관신’은 천관녀와의 관계를 암시하고 화랑세기에서는 진평왕의 어머니인 만호태후(유신의 외할머니)가 ‘영모’를 중매한 기록도 나타난다. 여기서 유신과 두 자매의 사랑과 결혼이 있었던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영모와 유모 자매에 대하여

영모의 출생 연도를 모르지만 아버지 하종은 564년생이다. 영모 위로 오빠 모종과 언니 유모가 있으므로 595년 출생한 유신과 비슷한 590년 경이 아닐까 싶다. 화랑세기에는 언니 ‘유모’도 유신의 둘째 부인으로 나온다. 그러나 유모가 어떻게 둘째 부인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자장의 어머니로 유명하다. 신라인의 결혼에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다빈치 코드들이 이렇게나 무수하다. 

그리고 이 자매 이야기는 마치 유신의 두 누이동생이 김춘추와 결혼하는 것과 같아서 혹시 착종된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선덕여왕도 용수와 용춘 형제를 남편으로 삼았다는 화랑세기 기록을 떠올리면 이때에는 이러한 결혼이 보편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재매부인과 재매정댁, 재매곡

영모부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그중에서 재매부인으로 불렸다고 하는 것이 특징인데 재매부인도 영모, 셋째 부인인 지소, 김유신 종택의 후손 등 설이 분분하다. 

먼저 차분히 관력 기록을 따라가 보자. 삼국유사 진한 조에는 신라 서라벌에 서른다섯 개의 그야말로 부잣집 금입택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재매정댁이다.

김유신의 본가 택호인 재매정댁(財買井宅)에서 유래한 호칭으로 보고 있다. 삼국유사 기이(紀異) ‘김유신’ 조에 의하면, 그녀가 죽자 집안사람들이 청연(靑淵)의 위쪽 계곡에 제사를 지내고 재매곡(財買谷)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김씨 댁 재매부인(財買夫人)이 죽자 청연(靑淵) 위 골짜기에서 장사를 지냈다. 그래서 재매곡(財買谷)이라고 한다. 해마다 봄이면 김씨 집안의 남녀들이 그 골짜기의 남쪽 시냇가에 모여 잔치를 베풀었다. 이 무렵이면 온갖 꽃이 만발하고 송화가 골짜기 숲에 가득하였다. 골짜기 어귀에 지은 암자도 그 이름을 송화방(松花房)이라고 하였는데, 훗날 소원을 비는 절로 삼았다.


이상의 기록에서 어쨌든 재매부인의 위상은 대단하여 죽어서도 묻힌 곳이 ‘재매곡’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봄마다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하고 송화가 숲 속에 가득하였다는 것이다. 원래 청연 윗골짜기였던 이곳에는 청연궁(靑淵宮)이 있었는데, 경덕왕 때 조추정(造秋亭)으로 바꾸었다가 뒤에 다시 청연궁이라 하였다고 한다.

5명의 관리가 이 궁을 지켰다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별궁(別宮)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재매곡은 경주 북쪽의 골짜기로 지금의 형산강 지류인 서천과 북천의 합류지점인 ‘청소’가 있는 금장대 부근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재매우물의 상징

재매정댁이 된 우물 관련 이야기는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편 선덕여왕 14년조에는 이러한 기록이 있다.


이때에 그 집안사람들이 다 문 밖에 나와 기다렸는데, 유신은 돌아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오십 보쯤 지나 말을 세우고 집의 장(漿) 물을 가져오라 하여 마시고는 말하였다.

“우리 집의 물맛이 예전 그대로다.”


집안사람들이 모두 나와 집에도 못들르고 떠나는 유신을 기다리는 중에 중심인물은 재매부인이었을 것이다. 왜 하필 재매정의 우물물이었을까. 재매부인과 관련 있을 재매우물은 유신과 과연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가끔 그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사실을 묻고 확인하고 싶을 적이 있다. 김경신을 원성왕으로 만들어준 천관의 집터 천관사 우물과는 관계가 없을까.


집안을 지키는 가신 신앙에서의 용왕신은 우물을 관장하는 신이다. 물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자원이다. 그래서 마을에는 공동 우물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집안에 우물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우물들은 사해용왕이 살고 있는 용궁과 통하고 있다고 믿었으며 용신의 힘으로 비가 내리고 무지개가 생기면 용신은 이 무지개를 타고 우물로 들어간다고 믿었다.


귀중한 물을 공급하는 우물에는 우물을 관장하여 깨끗한 물을 공급해 주는 물의 신인 용왕신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이 용왕신을 잘 섬겨야만 우물이 마르지 않고 물맛이 좋은 깨끗한 물이 흘러나온다고 믿어 지극 정성으로 섬겼던 것이다. 집안에 있는 우물에도 역시 용왕신이 존재하므로 우물과 그 주변을 항상 깨끗하게 해야 하며 우물가에서도 부녀자들의 말과 행동이 경박해서는 안된다고 주의하기도 했다.


우물의 상징에 대하여 찾아보니 천관사의 우물과 용왕의 상징이 확인된다. 유신은 우물의 물맛으로 재매부인 영모가 남편 없이 건사하고 있는 집안의 안녕과 무사를 확인했던 것이 아닐까. 특히 ‘장수(漿水)’라는 말이 생소해 찾아보니 ‘암장수(巖漿水)’라는 말이 있었다. 지하 깊은 곳에서 나와 바위틈에서 물이 솟아나는 것과 같은 우물로 ‘처녀수, 초생수’라고도 부르는 신성한 물이었던 같다. 


영모부인의 역할 : 김유신을 완전한 신라인이 되게 한 관문

우리는 삼국을 통일한 통일신라 프로젝트에 혁혁한 공을 세운 김유신과 관련된 여성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유신의 여동생이자 춘추의 부인인 문희와 보희, 그리고 김유신남매들을 낳은 어머니 만명부인, 사랑을 위하여 사랑을 버린 천관녀 그리고 유신의 정실부인이 된 재매부인 영모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영모는 진흥, 진지, 진평 등 왕을 섬긴 미실의 손녀딸로 신라 왕가 혼맥인 대원신통의 최고 실력자 가문에 태어났다. 가야계 후손인 김유신으로서는 신라왕족에 편입되는 지름길이었을 것이다. 그는 1남 4녀를 낳아 훌륭하게 키웠다. 삼광은 벼슬이 이찬까지 오르고 김유신 와병 중 고구려 정벌에 참여하여 통일 신라의 공을 세웠다. 장녀 진광은 대아찬 김흠돌의 부인이 되고 차녀 신광은 문무왕의 후궁이 되었다. 삼녀 작광은 미실과 진평왕의 아들 보로전군의 부인, 사녀 영광은 김흠순의 아들인 화랑 반굴의 부인이 되었다. 

이 모두 신라의 핵심 세력들로 혼인 관계로 김유신 가의 신라화에 공고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재매정댁 영모부인은 그야말로 가야계 유신을 신라계로 확고하게 편입시켜 준 열쇠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자녀들은 그리하여 신라인으로 삼국통일에 혁혁한 공을 세우는 인물이 되거나 그 인물들의 부인이 되어 통일신라의 주역들로 살아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김유신은 네 명의 여인이 있었다. 첫사랑 천관 사이에 군승이란 아들이 있다고 하기도 한다. 정실부인 영모와 4남매를 두고 둘째 부인 유모와 마지막으로 네 번째 부인인 김춘추와 여동생 문희의 딸 지소부인을 환갑에 맞이한다. 다음에는 그 지소부인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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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경담 2024-08-01 06:06:27
답변  
맑고 깊은 암장수 재매정이여. 유신과 영모의 사랑으로, 가야와 신라를 모두 품었구나. “우리 집 물맛이 예전 그대로다.” 전장의 장수가 사사로울 수 없으니, 아내에게 넌지시 던지는 깊은 믿음이 아닐까. 천관의 영기를 받은 보검을 지아비의 허리에 채워주면서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우물의 신성한 물과 용왕신의 기운을 갈무리하여 금입택재매부인으로서 유신을 완전한 신라인이 되게 하였지. 청연 골짜기 그윽한 재매곡, 꽃이 만발하고 송화 가득해지면 송화방 봄 잔치가 흐드러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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