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에서 벌어지는 폭력사태가 통제 불능 수준이 될 경우 자신이 망명정부 수반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달라이 라마의 비서인 텐진 타클라는 티베트인들이 폭력에 의존하는 길을 택한다면 전적으로 비폭력 노선에 의존하고 있는 달라이 라마가 물러나야 할 것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외신종합><해설>티베트에서 달라이 라마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티베트의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중국 정부의 무력에 의해 강제 진압되면서 티베트 내부에서 차츰 강경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이번 사태를 티베트의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는 강경파가 주도함으로써 ‘고도의 자치’를 요구해온 달라이 라마의 온건노선이 타격을 받았다고 분석한다. 달라이 라마가 17일 ‘폭력 사태가 이어질 경우 망명 정부의 수반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히고 나온 것도 이런 상황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달라이 라마는 3월 17일 기자들과 만나 “상황이 (자신이 주창하는 평화노선의) 통제를 벗어나면 나는 완전히 물러날 수밖에 없다”며 “중국과 티베트 모두 폭력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티베트의 국민들이 폭력의 길을 선택하면, 비폭력주의자인 자신이 지도자로 남아 있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같은 달라이라마의 언급을 중국정부에 대한 일종의 압박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 보다는 점차 자신의 입지가 좁아드는데 대한 솔직한 술회의 가능성이 더 힘을 얻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이번 사태를 주도한 것으로 지목한 ‘티베트청년회’는 티베트 망명정부 내부의 대표적인 강경파로 꼽힌다. 7만 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이 조직은 달라이 라마를 존중하지만, 그의 자치노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티베트의 완전한 독립만이 이들의 목표다. 이들은 종교적으로도 티베트 불교의 특정 종파에 기울어 있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티베트청년회는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달라이 라마와 뚜렷하게 노선을 달리하게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체왕 리그진 회장이 17일 베이징 올림픽 거부운동을 거부한 달라이 라마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그는 “중국은 올림픽을 개최할 자격이 없다”며 “달라이 라마의 온건노선에 대한 티베트인들의 좌절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는 16일 중국이 티베트에서 문화적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했으나, 올림픽 개최는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달라이 라마에 대한 이들의 비판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강경파는 망명정부 밖에서도 세력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는 것도 달라이 라마에게는 부담스런 부분이 아닐 수 없다. 1995년 미국에서 설립된 국제티베트독립운동은 가장 급진적인 단체로 알려져 있다. 이들 역시 자치가 아닌 독립을 주장하며 온건파와 선을 긋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들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의심한다. 유럽에선 영국에 근거지를 둔 자유티베트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으며 조직적 결속을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티베트 부족들 사이에서도 강경파가 힘을 얻고 있는 분위기다. 14일 발생한 라싸의 시위에는 오체투지 순례로 유명한 캄바티베트족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티베트족 가운데서도 원리주의적 불교관을 신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이 부족들 내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을 경우 중국 정부의 종교적 침탈에 대한 비타협적 노선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래저래 달라이 라마의 입지나 영향력이 흔들리게 정황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상황에서 나온 달라이 라마의 사퇴 가능성 언급은, 티베트의 자치를 요구하는 온건파의 입지가 급속히 축소되고 있음을 뜻한다. 중국 정부와 대화를 통해 자치를 추구한다는 이들의 비폭력 평화노선은 이번 사태가 폭력적으로 진압되면서 설 땅이 줄어들었다.중국 정부는 이번 시위를 주도한 이들에게 ‘극소수’ ‘폭도’ ‘범죄’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달라이 라마를 분리주의자로 부르는 것에 비하면 훨씬 격한 표현이다. 이들을 달라이 라마 중심의 온건파와 분리시키려는 속셈으로 보이지만, 그 저변에는 온건파를 대화파트너로 삼는 것이 중국정부의 입장에서 더 효과적으로 판단했다는 반증이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 원자바오 총리가 18일 달라이 라마와 대화의 통로가 열려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다만 문제는 달라이 라마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말 그대로 정치적 거래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이 점은 올림픽 개최를 코앞에 둔 중국 측에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기사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