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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차 한일불교문화교류 일본 증산사대회 개최

미디어붓다 | mediabuddha@hanmail.net | 2024-06-18 (화) 10:41

제41차 한일불교문화교류 대회가 불기 2568(2024)년 6월 25일(火)부터 28일(金)까지 3박 4일의 일정으로 일본 도쿄 정토종 대본산 증상사(增上寺)에서 개최된다. 


금년 41차 대회는 지난 2019년 홋카이도 중앙사 대회 이후 5년 만에 일본에서 개최되는 대회이다. 


「격변하는 세계 질서와 불교의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개최되는 이번 대회는 양국 대표단 약 150명이 참석할 예정이며, 26일 공식일정인 환영만찬과 27일에는 증상사에서 세계평화기념법회, 학술강연회 및 공동선언문 발표, 회향 축하만찬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는 한국과 일본 양국 불교계가  불교 문화 교류를 통한 유대증진과 인류평화공존을 염원하며 만든 교류대회이다. 

준비 기간을 거쳐 1977년 제1차 서울대회를 시작으로 올해로 41차를 맞이하게 되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대회가 잠시 중단되기도 하였지만 한일 불교계의 오랜 우호 교류를 바탕으로 양국 불교 교류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조죠지(増上寺) 소개 


명칭: 『삼록산 광도원 증상사』 

종지 및 사격: 정토종 대본산

본존불: 아미타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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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사는 정토종의 7개의 대본산 중 하나입니다. 유요 쇼소(酉誉聖聰) 대사께서 현재 도쿄 치요다구 히로카와쵸(千代田区平河町)에 해당하는 땅에 정토종의 정통 근본 염불 도량으로서 창건하셨습니다. 이후 관동지방의 정토종 교학의 전당으로서 종단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해 왔습니다.

도쿠가와 장군의 가문과 깊은 인연을 지닌 증상사는, 에도시대 일본 유수의 대사원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개산으로부터 600년. 에도시대의 융성기로부터 180도 달라진 격동의 근세를 살아남아 현재에 이르기까지, 증상사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 개산으로부터 600년

증상사는 1393년 정토종 제8대 조사이신 유요 쇼소 대사께서 창건하셨습니다.

처음 위치는 무사시노쿠니 토시마군 가이즈카, 현재 도쿄 치요다구 히로카와쵸에서 고우지마치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무로마치 시대에서 시작된 증상사는 전국시대를 거쳐, 정토종의 관동지방의 중심지로서 발전해 나갔습니다.


⎈ 도쿠가와 가문의 원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관동지방을 다스리던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였던 1590년, 이에야스는 증상사를 가문의 원찰로 삼았습니다. 이는 당시 이에야스가 증상사 주지 겐요 존노(源誉存応) 대사에게 귀의하였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1598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으며, 에도 막부가 시작된 뒤로는 이에야스의 비호를 받으며, 증상사는 대융성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이 시기에 증상사는 삼해탈문, 경장, 본당이 건립되었고, 3대장경(송, 원, 고려 대장경)의 기증 봉납 등이 이어지고, 겐요 선사는 조정으로부터 「보광관지국사」라는 호를 하사받고, 대대로 주지 스님에게 보라색 옷을 입고 궁중 출입이 허락되는 상자의(常紫衣)라는 자격도 받았습니다.

이에야스는 1616년, 본인의 장례를 증상사에서 치러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75세로 세상을 떠납니다.


⎈ 여섯 명의 장군이 잠든 도쿠가와 가문 묘소

증상사에는 도쿠가와 가문의 2대 장군인 도쿠가와 히데타다, 6대 이에노부, 7대 이에츠구, 9대 이에시게, 12대 이에요시, 14대 이에모치 6명의 장군의 묘소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 묘소에는 각 장군의 정실, 첩실의 묘도 마련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14대 이에모치의 정실이자 비극을 맞이한 황녀로 잘 알려진 세이칸인 카즈노미야(静寛院和宮)의 묘소도 있습니다.

    지금의 도쿠가와 가문의 묘소는 본래 6대 이에노부의 묘 앞에 있던 중문을 입구의 문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내부에는 각 쇼군의 석탑과 다이묘들이 기증한 석등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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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운을 부르는 흑본존(黒本尊)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겐신(源信)스님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아미타여래 불상을 깊은 신심으로 숭상하여 전쟁터에도 모시고 가서 승리를 기원했습니다. 그가 죽고 난 후, 이 불상은 증상사에 봉납 되어 승운, 재난막이의 영험한 부처님으로서 에도시대 이래 널리 서민들에게 숭상되었습니다. 흑본존이라는 이름은 긴 세월 향 연기로 검게 변했기 때문에, 그리고 많은 이들의 악재·재난을 대신 받아주며 검게 변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 의한 것이지만. 이는 역시 이에야스가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 에도시대 ~ 메이지시대

에도시대에 증상사는 도쿠가와 가문의 원찰로, 융성기의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전국의 정토종 종무를 총괄하는 총록소가 설치된 것을 시작으로, 정토종을 대표하는 관동 18개 단림의 필두가 되는 등, 교토의 정토종 총본산인 지은원에 필적하는 위상에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단림이란, 승려양성을 위한 수행과 배움의 도량을 의미하며, 당시 증상사에는 상시 3천 명 이상의 수행승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사찰 소유지는 1만여 석으로 즉, 25만평의 경내에는 사찰 48개, 기숙사 백 수십 채가 있어 「사격백만석」이라고 불리었다고 합니다.


 ⎈ 메이지시대 ~ 다이쇼시대

메이지시대에는 증상사에 있어 고난의 시대였습니다. 메이지 초기, 경내지를 몰수당해 한때는 신정부의 명령에 의해 신사의 신관 양성소가 설치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1873년과 1909년에 발생한 두 차례의 대화재에 의해 본당과 그 외 귀중한 당우가 소실되었습니다. 그러다 1875년, 대본산으로 격상되고, 유력자 등 새로운 신도들의 영입으로 부흥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이쇼 시대에는 소실되었던 본당의 재건도 이루어졌으며, 그외 당우의 정비·복구도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 쇼와시대 ~ 헤이세이시대

1945년의 공습은 메이지·다이쇼 시대에 이루어진 증상사 부흥의 노력을 한순간에 수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종전 후 1952년에는 임시로 본당을 세웠으며, 1971년부터 4년간 35억엔 이라는 거금을 들여 웅장한 새 본당을 건립했습니다.

1989년 4월에는 개산조 유요대사의 550주기를 기념하여 개산당 자운각을 재건하였고, 2009년에는 호넨대사 800주기를 기념하여 원광대사당과 기숙사를, 이듬해인 2010년에는 안국전을 건립하였습니다. 현재는 소실을 피한 삼해탈문과 흑문 등 오래된 건물들을 비롯하여 본당, 안국전, 원광대사당, 광섭전, 종루, 경장, 자운각 등의 당우들이 1만6천 평의 경내에 들어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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