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적사 (3) 

                                                      수원사람 김성채 객원기자

산령각

산령각은 석굴암 바로 옆에 지어진 정면이 두 칸, 측면이 한 칸인 전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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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은 동물뿐 아니라 식물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을 가졌고, 큰 암석을 숭배하는 의식도 치렀습니다. 동식물과 자연을 함부로 대하여 피해를 입기도 했고, 잘 보호하여 이익을 얻기도 했을 겁니다. 그러면서 짐승에게 살상당하는 무서운 재앙을 ‘산신령이 벗어나게 해준다’라는 믿음이 생겼고, 불교가 들어오기 전까지 높게 받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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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탱화
 

예전에는 지금보다 나무가 울창했고, 계곡도 훨씬 깊어서 이곳에 산신을 모신 사당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당은 묘적사가 창건되면서 산령각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산신탱화는 물이 넘쳐흐르며 물거품이 일어나는 묘적사계곡과 노송 숲으로 학이 날아드는 풍경이 배경입니다. 산신은 붉은색 도포에 복건을 썼는데, 머리 옆을 돌아 뒤에서 묶은 띠 매듭이 양쪽으로 단정하게 솟았습니다. 산신 옆에는 호랑이가 늠름한 기세를 뽐내고, 협시하는 동남동녀가 석류, 불로초를 받들고 섰습니다.

산령각에 머물고 계신 독성

독성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음이 없이 업보와 윤회를 깨우쳤고, 번뇌를 벗어나는 지혜를 깨달은 성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더 이상 배워야 할 것이 없는 아라한의 단계에 오르는 것도 대단한 것인데, 홀로 이런 경지를 이루어 낸 엄청난 분이 독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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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탱화
 

독성은 깊은 산속 소나무가 많은 조용한 곳에서 머무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정수리가 우뚝 솟아난 모습으로 그려져 높은 지혜를 지니셨고,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세고 눈썹과 귓속 털까지도 길게 그려서 오래전부터 이곳 묘적사에 계시면서 수명도 길어졌음을 나타냈습니다. 반가부좌로 오른손에 불로초를 들고 있어 언뜻 산신이나 도교의 신선인가 하였지만, 왼손에 든 단주를 보고 독성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옆에는 문수동자처럼 쌍상투를 튼 동남이 비단으로 만든 번을 들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큰 공덕을 얻게 될 것임을 알려 줍니다.

독성탱을 그리면서 자리이타의 자비심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두광을 그리기도 하는데, 묘적사 독성탱은 머리 바로 뒤편에 어두운 동굴을 그려놓아 얼핏 보면 두광처럼 보였습니다. 확실하게 두광을 그린 것이 아니라, 두광처럼 착각(?)하게 한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독성을 16아라한 중 신통이 가장 뛰어난 분이어서, 공양을 올리고 기도하면 영험한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탱화 화기에는 한 가족의 이름을 차례차례 쓴 다음, 백봉산 묘적사에 시주한 공덕으로 무병장수와 재앙이 소멸되기를 축원하는 내용을 썼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르침

‘올라갔다가 내려오자’라는 생각으로 올라갔고, 또‘올라갔으면 내려오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언젠가 깨달음의 길을 걷고 싶었던 때가 있었지만 말 그대로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미타 부처님께서는 나같이 낮고도 낮은 근기의 하품하생부터 높고도 높은 상품상생으로 나누셨다’라고 생각하면서 웃고 살아갑니다. 웃는다고 하지만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자신이 때때로 미워지고 언짢아지는데, 이런 것이 중생의 진실이 아닐까 합니다. 

멀고 험난한 길을 오랫동안 걸어 다녔던 상품상생의 선재동자는 선지식들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깨우쳤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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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마당에 탐스럽게 핀 작약꽃이 피었습니다. 

그 주변에 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은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올라갔던 짧은 계단을 내려옵니다. 느낀 것은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가 상당히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물은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옆의 계곡에서 쉼 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바람은 울창한 나무와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갈 뿐 소리만으로 자기가 옆에 있음을 알려 줍니다. 새도 자기가 어느 나무에 앉아있는지, 어떤 색깔의 새인지를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당신의 옆에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곳에서 템플 스테이를 체험했던 분들이 ‘좋다’고 소문을 냈는가 봅니다.

연꽃

그렇게 내려온 계단의 아래편에는 연못이 있습니다. 연못이라고 부르지만 연은 없고, 연못 중앙에 선정인을 취한 석가모니 불상이 봉안되었습니다. 

연못에는 사찰에 머물면서 수행자의 크고 작은 일상을 보고 경험하는 체험객이 머무는 건물이 비쳤습니다. 건물만 비친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 모두가 비쳤습니다. 보이지 않아서 내 발자국이 저기 찍혔다고 말씀드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않을 따름이지 어디인가에 이제까지의 내 행동거지가 찍혀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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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이 연못에 거꾸로 비쳤고, 연화좌의 앙련이 복련으로 나타났습니다. 팔각다층석탑 상대석 기단에 새겨진 앙련과 복련은 연꽃이 물에 비쳐서 나타난 모습을 새긴 것임을 알게 합니다.

무슨 일이 앞두고 안절부절못하면서 발을 동동거리는 것처럼, 불상 주변을 붉은 잉어가 빙빙 돌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환생하고 싶은 마음이 급하여, 법문 베풀어 주시기를 재촉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흙벽에 꽂은 기왓장

연못가에서 흙으로 쌓은 종무소의 기단 벽을 봅니다.

나뭇잎이 떨어져 흙이 됐고, 나무는 나뭇잎이 썩은 흙에서 영양을 얻었습니다. 흙에서 얻는 영양분으로 나무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 땅과 물에서 살아가는 동물도 흙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흙은 먹을 것만 주는 것이 아니라, 옷도 주고 집도 줍니다. 

종무소는 자기가 흙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며, 사방천지에 살아가는 것과 있는 것 모두 돌고 도는 한 몸인 것을 보여줍니다. 흙 색깔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잔뜩 보여주는데, 아무리 그래도 미장이 마음을 채워줄 수는 없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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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이는 종무소를 높게 지으려고 쌓은 기단의 바깥 벽체를 흙으로 두껍게 바르고, 빗물에 씻겨 내리지 않도록 기와지붕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벽에는 기왓장으로 바다에 밀려드는 파도와 구름, 활짝 핀 꽃을 그려놓았습니다.

기단 위 살림집 창문을 미닫이문으로 채우면서, 창살은 팔각형을 넣은 아자살창으로 짰습니다. 기단의 그림과 창문 그리고 도량주가 어울려 자연에 들어있는 전통 한옥의 멋을 자랑합니다. 종무소뿐 아니라 여러 채의 한옥이 다 그렇습니다.

번뇌도 태워버릴 수 있으면 

연못 아래에는 흙으로 쌓아 올린 소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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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와 지장보살상
 

작은 정사각형집 소대는 네 개의 내림마루가 모이는 절병통 자리에 굴뚝을 세웠습니다. 흙이란 것이 아무리 두꺼워도 열을 받으면 터지는 것을 알기에, 이를 막아낼 속셈으로 벽면에 평기와를 줄줄이 심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을 떠나면서 가져가지 못한 망자들의 소지품이 타는 뜨거움에 견뎌내지 못하고 여기저기 갈라졌습니다.

소대 옆에는 망인의 영정을 모셨던 플라스틱 액자와 옷가지 등을 담아왔던 나무상자들만 남았습니다. 죽기 전에 버려야 했던 것, 버릴 때가 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것들이 여기서 타버렸습니다. 그 애착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보다 더 뜨거웠을 겁니다. 좋아하고 아끼던 물건들이 불에 타 사라질 때, 백여덟 가지 번뇌도 다 태워버리고 가셨기를 바랍니다.

묘법사는 시끄러운 저 아랫동네와 바싹 붙어 있으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아름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숨어있습니다. 

깨달은 분들이야 시끄럽고 더러운 곳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도 물들지도 않지만, 저 같은 범부는 이같이 고요한 곳에서나 잠깐 차분해질 뿐입니다. 묘법사에 와서는 경내가 넓지 않아서 짧은 시간 머물렀으면서도 마음이 맑아졌습니다. 맑아진 마음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께 찾아보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