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붓다
mediabuddha@hanmail.net 2024-05-21 (화) 08:32멀고 먼 티벳 샤카 사원까지 귀양 갔던 충선왕 이야기가 한 권 책으로 선보인다.
티벳불교에는 사대학파가 있다.
닝마파.겔룩파.까큐파.샤카파가 그것이다.
티벳불교 샤카파는 한때 바티칸보다 강력한 종교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쿠빌라이칸이 대몽골제국을 수립하고 제국의 스승으로 티벳 샤카파의 고승 팔사파를 스승으로 섬겼기 때문이다. 쿠빌라이 칸은 무력으로 세계를 정벌할 수는 있어도 무력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는 없다는 가르침을 따랐다.
그 당시 세계 10대 종교의 지도자들을 대원의 수도로 초대하였다. 각종교의 교리를 서로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우열을 가리는 시험을 치렀다. 인격적인 모독을 가하고 인욕 하는 힘과 신통력과 예지력 등 10가지의 시험을 치렀다.
쿠비라이칸의 10가지 시험에 합격하여 스승이 되신 분이 티벳 샤카파의 고승이며 천재였던 팔사파(팍파)이다. 그는 쿠빌라이칸을 도와 몽골 세계 제국에서 통용되는 문자를 만들었다. 그것이 송광사에 전해지는 팔사파 문자이다. 몽골제국시대에 팔사파문자는 요즘의 영어에 해당하는 세계 공용어였다.
현재의 샤카사원 모습이다.
쿠빌라이칸은 팔사파를 스승으로 하여 관정의식을 받았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은 것이다. 관정을 원하는 쿠빌라이에게 팔사파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 이유를 물었다. 칸은 세상의 지존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그런데 나에게 관정을 받게 되면 스승에게 바치는 큰절을 해야 한다. 그리고 칸은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데 그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팔사파 존자의 위대한 덕성과 천재성을 흠모한 쿠빌라이는 제자의 예를 갖추고 관정을 받고 불법의 수호자 역할을 한다.
쿠빌라이칸의 시대에 자식을 출가시킨 이는 세금을 면제해 주었다. 그리고 제국의 영토안에 1250개의 불교사원을 지었다. 대몽골 제국의 종교로 티벳불교 샤카파가 선택된 순간이었다.
고려 충선왕은 쿠비라이칸의 외손자이다. 그의 어머니는 쿠비라이의 딸 제국공주이다. 몽골이름은 이지르 부카이다. 충선왕의 정실부인은 몽골 출신 계국공주이다. 그러나 충선왕이 사랑한 이는 고려여인 조비였다. 조비는 계국공주와 혼인하기 전에 이미 부부의 연을 맺은 첫 여인이었다.
계국공주는 원조정에 사신을 보낸다.
“‥고려왕이 황실의 명령을 받들지 않고 조비가 나를 저주하게 만들어 충선왕의 사랑이 조비에게 있으니 조비에게 벌을 내리시옵소서.‥”
계국공주의 편지를 받은 원 조정은 조비 가족을 감옥에 가두게 하고 충선왕 부부를 원에 불러들인다. 그리고 불경을 배우고 오라는 명목으로 티벳으로 귀양을 보낸다. 충선왕이 귀양 간 곳이 바로 티벳 샤카파의 본산인 샤카사원이다.
샤카사원에 전해지는 고대문서와 불경 모습이다. 돈황 고대문서를 보는 것 같다.
북경에서 만오천 리 목적지까지 6개월이 걸린 험난한 길이었다. 충선왕의 유배 생활은 샤카사원의 탕카그림으로 전해진다. 2년 반의 유배 생활을 마친 충선왕은 먼 길을 돌아 다시 고려왕이 된다. 그때 인연 맺은 티벳 샤카파의 스님들을 고려로 초대한다.
티벳불교 샤카파와의 인연은 700년 전 고려 충선왕부터이다.
송광사에 전해지는 소중한 고려문서. 팔사파문자는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려 충선왕이 귀양 갔던 15000리 길이다. 가는 데만 6개월이 걸린 고달픈 길이었다.(사진=석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