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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사 소재보살도(사진=미디어붓다) 

성자는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결코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슬픔도 인색함도 그를 더럽히지 못한다. 

연꽃잎 위의 물이 더럽혀지지 못하듯. 

연꽃잎 위에 물방울이 묻지 않듯

연꽃 위의 물방울이 더럽혀지지 않듯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과 인식된 것에

성자는 더럽혀지지 않는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과 인식된 것을

청정한 님은 그것과 함께 생각하지 않으며,

다른 것에 의해서 청정을 원하지 않으니,

그것들에 탐착하지 않고,

탐착을 떠나려 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무병장수를 원한다. 그런 와중에 늙지 않기를 바란다. 늙지 않기 위해 온갖 시도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든 늙음을 막아설 수 없고, 사람의 목숨은 짧을 뿐이다. 의학이 크게 발달한 오늘날에도 백 살을 넘기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설사 백 살을 넘긴다고 해도 오래지 않아 늙어 죽는 굴레에 휘말리게 된다. 늙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욕망에 부응해 안티에이징 산업이 부상하지만, 늙음의 속도를 다소 늦출지언정 늙지 않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부나방이 불로 달려들 듯 내 것을 추구한다. 그 어떤 것이든 소유란 영원한 것이 아닌데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이든 ‘내 것’은 죽음을 맞는 순간 송두리째 잃어버리게 된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모르는 이 없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에 해당될 뿐 자신은 예외라는 착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이라면 내 것이라는 것에 경도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은 어떤 것이든 ‘이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죽음으로 그것들을 잃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현명한 이는 이와 같이 알고 내 것이라는 것에 경도되지 않는 것이다. 

꿈속에서 만난 사람을 잠에서 깨어난 사람이 다시 볼 수 없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그를 볼 수가 없다. 살아서 이름이 불리던 사람들은 눈으로 보이기도 하고 목소리로 들리기도 하지만 그들이 죽어버린다면 이름만이 남아 불릴 뿐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 즉 사바세계를 고해라고 부르신 것이다. 그러나 고해는 단순히 사바세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계보다 훨씬 행복하고 즐거운 세계라는 천상계도 쓰라린 윤회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고해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려나. 내 것이라는 것에 탐욕을 부리면 걱정과 슬픔과 인색함을 버리지 못한다. 그 걱정과 슬픔과 인색함으로 괴로움을 부르게 된다. 그러므로 안온을 보는 성자들은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내 것이라는 소유의 욕망을 버리고, 벗어나 유행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홀로 명상하며 유행하는 수행승이 정신적으로 멀리 떠남을 좋아하고, 처소에서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것은 그에게 잘 어울리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부처님이 읊으신 이 시는 <숫타니 파타> ‘청정에 대한 여덟 게송의 품(Aṭṭhaka-Vagga)’에 포함된 ‘늙음의 경(Jarāsutta)’의 마지막 게송이다. 부처님께서 사왓티에서 우기를 지내고 여러 나라를 유행하다가 싸께따(Sāketa)에 도착하여 안자나와나(Añjanavana)에 들렸을 때 한 부유한 노 브라만 부부를 만났을 때 읊은 시이다. 

노 브라만 부부는 부처님을 보고 ‘아들아, 얼마만이냐!’하면서 울면서 다가오자 제자들이 그를 제지하려 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을 방해하지 말라며 그들의 포옹을 받아주셨다. 노 부부 브라만은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초대한 후, 부처님의 발우를 들고 앞장서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들은 ‘아들이 왔으니 자리를 깔아라. 아들아 마침내 내가 너를 만났다.’며 엎드려 공양을 올렸다. 공양을 마친 후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설하자 노 부부는 그 자리에서 진리의 흐름에 들었다. 나중에 부처님은 아난다 존자에게 이 노 부부 브라만이 오백생을 거치면서 보살(전생의 부처님)의 어머니였다고 말했다. 노 부부는 부처님이 사께따를 떠난 뒤에도 깨달음을 얻어 무여열반을 성취했다. 그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부처님은 장례식에 참석했고, 식이 끝나자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 시를 읊으신 것이다.  

- 시구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는 열두 가지의 감각의 장(十二處)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12처는 육근과 육경을 말하는 것으로 색경, 성경, 향경, 미경, 촉경, 법경(이상 육경)과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 의근(이상 육근)이다. 

- 시구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는 <법구경- 담마파다>의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로우니.’라는 가르침과 상통한다. 사랑하면 소유하고 싶고,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미움도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성자는 사랑에도 미움에도 머물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 시구 ‘연꽃 위의 물이 더럽혀지지 못하듯’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완전하게 극복했다는 뜻이다. 불가에서 자주 사용되는 사자성어 처염상정(處染常淨), 즉 더러운 곳에 머물더라도 항상 깨끗함을 잃지 않는다와 같은 의미이다. 

- 시구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과 인식된 것’은 육근육경, 즉 12처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 게송에서는 압축해서 표현하고 있다. 

- 시구 ‘탐착을 떠나려 하지도 않는다.’는 육근육경을 대하는 성자들의 태도를 잘 표현하는 말이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그것을 탐착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탐착을 애써 떠나려 하는 것도 사라진 경계를 의미한다. 탐착을 애써 떠나려 한다는 것은 탐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