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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에서 힘 있게 실천하라”

이 학종 | | 2024-04-05 (금)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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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흥전리 절터 기와 파편(사진=미디어붓다) 


악행을 한 사람에게

세상에 비밀은 없네.

사람이여, 진실인지 거짓인지

그대 자신이 알지 않는가.


그것이 훌륭한 증인인데

이것을 간과하고 마음에 악을 숨기네.

어리석은 자가 행하는 악은

신들이 알고 여래가 아네.


그래서 자기를 동기로 하는 님은

새김을 행하고,

세상을 동기로 하는 님은

슬기롭게 선정에 들고,

가르침을 동기로 하는 님은

여법하게 실천하네.

진리에 의지하여 노력하는 성자는

퇴락하지 않네. 


악마를 진압한 님,

죽음을 정복한 님,

태어남을 부순 님,

정근을 갖춘 님, 

세상을 아는 님,

현명한 님은

일체의 사실에 매이지 않네. 


완전범죄가 없는 것처럼,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비밀은 없다. 설사 완전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범인이 있더라도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다. 자기최면이라는 병에 걸린 상태가 아니라면 스스로 악행을 저질렀음을 알 수밖에 없고 죄의식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악행을 저지른 자는 하나같이 마음속으로 자신이 악행을 하지 않았다며 애써 죄를 감추려는 어리석음을 저지른다. 그러나 그런 속임수로 신들을, 또 여래를 속일 수는 없다. 그 죄는 하늘이 알고, 두두물물에 깃든 정령들이 알고, 세간해(世間解)인 부처님이 안다.  

저지른 악행을 속이거나 숨기려는 경향은 삼독심에 끄달릴 수밖에 없는 범부들에게 본능처럼 깃들어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범부들에게 마치 그림자처럼 붙어 있는 악행의 욕구를 거부하고, 용기 있게 그것과 반대의 삶을 살고자 용기를 내고, 결단을 내린 사람이 바로 수행자이다. 부처님께서는 정글을 멋대로 지배하는 라이언 킹을 욕망하고자 하는 범부들의 삶을 거부하고 위대한 포기를 결단한 수행자에게 세 가지의 동기가 있다고 가르친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 시를 관통하는 키워드 ‘동기(動機)’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동기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내적인 직접요인(直接要因)의 총칭이다. 영어로는 모티브(motive)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동기는 심리학 용어로, 동인(動因)이라는 말과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되지만 동인이 기계론적인 데 대하여, 동기는 목적론적인 의미가 강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동기(Adhipateyya)는 ‘선구적(先驅的)인 영향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떤 일이나 사상에서 그 시대의 맨 앞에 서는 것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주도적이며 주체적 의미를 지닌 ‘lordship’, 지도적 위치나 지배적 위치라는 의미의 ‘domination’, 어떤 실천이나 과업을 추동하는 동력을 뜻하는 ‘power’라는 개념들이 ‘Adhipateyya’에 복합적으로 내포되어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 시는 <앙굿따라니까야> 3:40 ‘동기의 경(Adhipateyyasutta)’에 등장한다. 부처님께서는 동기의 경에서 세 가지 동기에 대하여 설명하신다. ‘자기의 동기’, ‘세상의 동기’, ‘가르침의 동기’가 그것이다. 이 경에서 부처님은 세 가지 동기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계신다. 

첫째, ‘자기의 동기’에 대해 부처님은 “자신을 동기로 삼아 악하고 불건전한 것을 버리고, 착하고 건전한 것을 계발하고, 허물이 있는 것을 버리고, 허물이 없는 것을 계발하고, 자신의 청정을 보살핀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자기의 동기이다.”라고 설한다. 

둘째, ‘세상의 동기’에 대해 부처님은 “세상을 동기로 삼아 악하고 불건전한 것을 버리고, 착하고 건전한 것을 계발하고, 허물이 있는 것을 버리고, 허물이 없는 것을 계발하고 자신의 청정을 보살핀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세상의 동기이다.”라고 설한다. 

셋째, ‘가르침의 동기’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세존의) 가르침은 현세의 삶에서 유익한 것이고,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할 만한 것이고, 최상의 목표로 이끄는 것이며, 슬기로운 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동료 가운데는 앎과 봄을 지닌 자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잘 설해진 가르침과 계율에 출가한 내가 게으르고 방일하다면 나에게 옳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이와 같이 ‘나는 물러나지 않고 새김을 확립하고 혼미하지 않고 몸을 평안히 하고 걱정이 없고 마음을 집중하고 통일하여 용맹정진하겠다.’라고 성찰한다. 그는 가르침을 동기로 삼아 약하고 불건전한 것을 버리고, 착하고 건전한 것을 계발하고, 허물이 있는 것을 버리고, 허물이 없는 것을 계발하고, 자신의 청정을 보살핀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가르침의 동기이다.”라고 설한다. 


이 시에서 부처님은 ‘자기를 동기로 하는 님’은 새김, 즉 몸과 마음에서 시시각각 일어나는 현상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사띠(sati)를 행한다고 표현하고 있고, ‘세상을 동기로 하는 님’은 슬기롭게 선정[samādhi]에 든다고 표현한다. 또 ‘가르침을 동기로 하는 님’은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dhamma]을 여법하게 실천한다고 묘사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여법하게 실천하면, 수다원·사다함·아나함과를 성취해 성자가 되고, 진리에 의지하여 노력하는 성자는 퇴락하지 않는다[不退轉]고 덧붙인다. 하여 마침내 악마를 진압하고, 죽음을 정복하고, 태어남을 부수고 정근을 갖추었으며, 세상을 아는 현명한 님, 즉 아라한을 성취한 님은 일체에 얽매이지 않는 대자유인이 된다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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