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의 특징은 없다 

크게보기
(삽화 정윤경) 

아난다는 암송을 계속했다. 붓다의 특징[相]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당시 수다원과를 증득한 벗들 대부분은 붓다에게 자신과 다른 특징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싶어 한 나머지 아난다를 불러 자주 물어보곤 했기 때문이었다. ‘스승께서는 정말로 우리와 다른 인상(人相)이 있는 것인가?’

‘서른두 가지 특징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그때마다 아난다는 스승의 몸을 살핀다는 것이 불경하여 그런 질문을 외면하곤 했다. 스승의 몸을 몰래 살핀다는 것은 무례한 일이었던 것이다. 비구 벗들이 말하는 32인상은 다음과 같았다.

1. 발바닥이 평평하여 서 있기에 편안하다.

2.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 무늬가 있다.

3. 손가락이 길다.

4. 발꿈치가 넓고 평평하다.

5.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비단 같은 막이 있다.

6. 손발이 부드럽다.

7. 발등이 높고 원만하다.

8. 장딴지는 사슴 왕과 같다.

9. 팔을 펴면 손이 무릎까지 내려간다.

10. 음경이 몸 안에 감추어져 있다.

11. 신체의 가로 세로가 같다.

12. 털이 위로 향해 있다

13. 털구멍마다 하나의 털이 있다.

14. 몸이 금빛이다.

15. 몸에서 나오는 빛이 두루 비춘다.

16. 피부가 부드럽고 얇다.

17. 두 발바닥과 두 손바닥, 두 어깨와 정수리가 두텁고 풍만하다.

18. 두 겨드랑이가 두텁고 풍만하다.

19. 상반신이 사자와 같다.

20. 신체가 크고 곧다

21. 어깨가 원만하다.

22. 치아가 마흔 개다.

23. 치아가 가지런하다.

24. 어금니 네 개는 상아와 같이 희다.

25. 뺨이 사자와 같다.

26. 혀는 최고의 미감을 갖고 있다.

27. 혀가 넓고 길다.

28. 음성이 맑다.

29. 눈동자가 검푸르다.

30. 속눈썹이 소와 같다.

31. 정수리가 상투 모양으로 돋아나 있다.

32.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그러나 수부띠 같은 장로들은 붓다의 특징을 굳이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설령 어떤 사람이 붓다의 특징을 지녔다고 해서 그를 붓다이다, 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점이 바로 아난다처럼 수다원과를 증득한 이들과 달랐다. 수다원들은 붓다는 중생들과 다르기 때문에 초인적인 특징이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중생들은 어떤 특징을 보고 그를 평했다. 미남이다, 추남이다, 인격자이다, 비인격자이다, 진실하다, 사기꾼이다, 미녀다, 추녀다 등등의 생각으로 그들을 가까이하고 멀리했다. 그러나 ‘눈 속의 눈[慧眼]’을 가진 수부띠 같은 장로들에게는 그들의 특징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붓다의 32인상 같은 것도 무의미했다. 수부띠 같은 장로들은 겉으로 드러난 특징보다는 붓다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붓다는 수다원들이 붓다의 상호를 가지고 탁상공론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 수부띠에게 물었다.

<수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는 특징을 갖춘 자라고 볼 수 있겠느냐?”

수부띠가 대답했다.

“스승이시여, 그렇게 볼 수 없습니다. 여래는 특징을 갖춘 자라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스승이시여, ‘특징을 갖추고 있다[相]는 것도 특징을 갖추고 있지 않다[非相]고 봐야 한다.’라고 여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대답하였을 때 스승은 수부띠 장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부띠여, 특징을 갖추고 있다[相]고 하는 말은 거짓이며, 특징을 갖추고 있지 않다[非相]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이 아니다. 따라서 아무 특징이 없는 것[非相]을 여래의 특징으로 보아야 한다.”>

수부띠는 그때가 떠올랐다. 아난다가 ‘나도 스승처럼 깨달으면 서른두 가지의 상이 나타나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수부띠는 아난다의 욕망을 이해했다. 자신도 한 때는 스승처럼 장딴지는 사슴 왕 같고, 몸에서 빛이 나오고, 상반신이 사자와 같고, 속눈썹이 소와 같고, 정수리가 상투모양으로 돋아나 부드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갖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상한 것이기에 부러워해야 할 특징이 아니었다.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허망한 그림자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아난다는 기원정사에 있을 때의 그는 아니었다. 칠엽굴에서 5백 명의 장로들 앞에서 <금강경>을 암송하고 있는 지금이라면 수부띠에게 그런 유치한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붓다가 지금 환생하여 그때 수부띠에게 했던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면 아난다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 분명했다. 아난다는 수다원에서 아라한이 됐으므로 수부띠와 같은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환생한 붓다가 아난다에게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주고받았을 터였다.

‘아난다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는 특징을 갖춘 자라고 볼 수 있겠느냐?’

‘스승이시여, 그렇게 볼 수 없습니다. 여래는 특징을 갖춘 자라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스승이시여, ‘특징을 갖추고 있다[相]는 것도 특징을 갖추고 있지 않다[非相]고 봐야 한다.’라고 여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특징을 갖추고 있다[相]고 하는 말은 거짓이며, 특징을 갖추고 있지 않다[非相]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이 아니다. 따라서 아무 특징이 없는 것[非相]을 여래의 특징으로 보아야 한다.>

붓다의 위와 같은 말도 가시적인 것만 보는 육안(肉眼)을 가진 중생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었다. 서른두 가지 인상(人相)을 갖춘 붓다가 왜 아무 특징이 없다고 모순된 말을 하는지, 특징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하는지 알 수 없을 터였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현상을 공상(空相)이라고 보는 혜안의 입장에서는 붓다의 32인상마저 시시각각 변하므로 실제로는 특징이 없다고 말해도 거짓이 아니었다. 붓다는 바로 그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붓다는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를 하나라고 통찰하신 분이었다. 나 홀로 존귀하게 계신 분이기도 하고 우주 전체로 존재하는 분이었다. 그러니 하나의 특징은 전체의 특징이 될 수 없었다. 따라서 전체로 존재하는 붓다에게는 특징을 다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므로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수부띠는 물론이지만 이제 아라한이 된 아난다도 붓다의 말씀을 이해했다. 중생의 육안으로는 붓다의 32인상이 우아하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아라한의 혜안으로 볼 때 붓다의 32인상은 없다고 봐야 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