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종
2024-03-19 (화) 11:54[기고] 정찬주 작가의 『마지막 스승 법정스님』을 읽고
정찬주 작가가 법정스님 14주기를 맞이해서 펴낸 산문집 『마지막 스승 법정스님』(여백출판사)을 읽으며 떠오른 명제는 사제지정(師弟之情)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아름다운 이야기, 교훈적인 이야기, 감동적인 이야기가 그리 새로운 것도 드문 것도 아니지만, 두 사람의 정은 세간과 출세간을 경계를 넘어 돈독하게 맺어진 드문 경우이기 때문이다.
선가의 일화 중에서 스승이 제자들을 가르치거나 일깨우기 위해 보여준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중에는 임제선사처럼 재가의 수행자들을 위해 헌신한 분도 있었다. 그렇더라도 그런 사제 간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우리와 동시대의 분들에게서 듣고 확인하는 건 더욱 색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시대 많은 이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고, 특히 빼어난 문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었던 법정스님과, 스님의 재가제자(유발제자)이자 대표적인 불교소설가인 정찬주 작가 사이에 있었던 인연 이야기들은 더 큰 공감과 감동, 그리고 교훈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정찬주 작가가 스승 법정스님을 주제로 집필한 책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 책은 존경하고 신뢰하는 사제 간에 느낄 수 있는 내밀한 인연사이기에 잔잔하지만 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책의 제목에서 드러낸 것처럼 ‘마지막 스승’이라는 표현이 참스승을 찾기 어렵거나, 존재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작가가 참스승 법정스님을 통해 얻은 감동과 교훈, 그리고 행복과 기쁨을 동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보시바라밀에 다름 아니다.
“살다 보면 욕심 때문에 샛길로 빠질 때도 있을 것이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허물을 지을 때도 있을 것이오. 그럴 때마다 신호등 같은 계를 생각하면 발걸음이 멈춰질 것이오. 그렇소. 계란 삶의 신호등 같은 것이오.”
법정스님이 정찬주 작가에게, 저잣거리에 살면서도 물들지 말라는 의미의 ‘무염(無染)’이라는 법명을 내리면서 전해준 말이다. 스님은 계의 의미를 ‘삶의 신호등’이라고 표현하셨다. 계에 대한 스님의 신선하면서도 독특한 해석은 어떤 이름이든 계를 받은 모든 불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가르침이다. 각자 자신의 계명을 돌이켜보면서, 과연 나는 계명을 내 삶의 신호등으로 삼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법정스님은 정찬주 작가에게 가끔씩 엽서를 보내 자비로운 말씀을 전하기도 했다. 강원도 오대산 기슭에 사실 때, 제자들의 공부를 점검하기 위해 해제에 맞춰 불일암에 들르곤 했는데, 그때 재가제자를 봤으면 한다는 내용의 엽서 한 구절이 우정 눈에 들어온다.
“혼자서 지내려면 뭣보다도 자기 관리가 철저해서 게으르지 않아야 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게으를 수가 없습니다.”
글집 이불재에서 홀로 지내던 정찬주 작가는 이 엽서를 받고 게으름을 경계하기 위해 집필실 벽에 호미를 걸었다. 새벽같이 논밭으로 나와 일하는 산중농부들을 보면서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고 자문하기 위해서이다. ‘살아 있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게으를 수가 없다!’는 스님의 글귀는 그대로가 할(喝)이고, 그 할에 호미를 걸어 호응한 제자의 모습은 그대로가 방(榜)이 아닌가. 사제의 방할을 접하며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참으로 그 스승에 그 제자가 아닐 수 없다.
스님과 재가의 제자가 사제의 인연을 맺는 경우는 절집 안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쩌면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매우 큰 행복이기도 한데, 문제는 모든 사제지간이 이 두 분처럼 감동적이지는 않다는 점이다. 조응(照應)이 가능한 관계여야 가능한 일이기 그럴 것이다. 비록 이처럼 멋진 사제의 정을 나누지 못했더라도 책을 통해서 그 감동을 나눠 받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고희를 훌쩍 넘겨 이제는 원로소설가라는 소리를 들어도 될 나이가 된 정찬주 작가가, 스승 법정스님 14주기를 맞이해서 낸 산문집 『마지막 스승 법정스님』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원로가 되어서도 스승 앞에서는 여전히 몸과 마음을 삼가는 그 모습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정찬주 작가는 1991년 봄에 송광사 불일암을 찾아가 스승으로 맺은 인연을 비롯하여, 법정스님의 알려지지 않은 인간적인 일화들과 일상에서 보여준 살아 있는 가르침 및 청정한 수행자로서 개결한 모습 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찬주 작가는 법정스님이 왜 자신에게 마지막 스승인지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법정스님은 우리 시대, 우리 모두의 스승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왜 마지막 스승이 법정스님이신가? 나로서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첫 번째 스승은 사춘기 방황을 멈추게 해주신 분이 있는데, 나의 아버지이시다. 두 번째 스승은 대학시절에 고결한 문학정신을 일깨워주신 동국대 홍기삼 전 총장님이시다. 법정스님은 내가 샘터사에 입사한 뒤에야 뵀다. 스님의 원고 편집담당자가 되어 스님을 자주 뵙곤 하였다. 스님과 인연을 맺은 지 6년 만에 스님으로부터 계첩과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받고 재가제자가 되었다. 무염이란 ‘저잣거리에 살되 물들지 말라’라는 뜻이었다. 이와 같은 사연으로 법정스님은 나의 세 번째 스승, 즉 마지막 스승이 되신 것이다.”
법정스님의 엽서와 편지, 유묵(遺墨)을 처음으로 공개하는 산문집 『마지막 스승 법정스님』. 거기에다 그것들이 갖는 사연을 진솔하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스님의 정신과 품격, 사상 등을 실감 나게 엿볼 수가 있다.
2부 1장 ‘불일암은 법정스님이다’는 불일암 공간에 저장된 정찬주 작가의 추억과 사연들이다. 불일암이야말로 법정스님이 가장 치열하게 정진했던 공간이고, 물소리 바람소리 같은 자연주의적 칼럼을 활발하게 발표하여 어둔 세상을 밝혔던 곳이기 때문이다. 2부 2장은 정찬주 작가가 듣고 보았던 스님의 말씀과 당시 실제상황을 복기한 글들이다. 그러니 2부 2장은 불교경전의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즉 여시아문(如是我聞)처럼 정찬주 작가의 목격담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정찬주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청정해야 할 종교계마저도 미세먼지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고 개탄하며, 『마지막 스승 법정스님』을 발간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내가 『마지막 스승 법정스님』을 발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누군가의 지친 영혼에게 다가가서 문을 두드리듯 노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문은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다. 종교계마저도 미세먼지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오늘, 내가 전하는 법정스님의 가르침 한 줌이 신산한 삶으로 힘겨운 독자들에게 위로와 응원이 된다면 나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을 듯하다.”
저자 정찬주는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국어 교사로 교단에 잠시 섰고, 샘터사 편집자로 법정 스님 책을 만들면서 스님의 각별한 재가제자가 되었다. 법정 스님에게서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받았다. 2002년 전남 화순 계당산 산자락에 산방 이불재(耳佛齋)를 지어 현재까지 집필에만 전념 중이다. 오랜 기간, 불교적 사유가 배어 있는 명상적 산문과 소설을 발표해왔다. 1983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작가가 된 이래, 자신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변함없이 천착하고 있다. 호는 벽록(檗綠).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 『소설 무소유』, 『암자로 가는 길』(전 3권)을 비롯하여, 이 땅에 수행자가 존재하는 의미와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를 일깨우는 수십 권의 저서를 펴냈다. 행원문학상, 동국문학상, 화쟁문화대상, 류주현문학상, 유심작품상을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