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ㆍ기고 > 부처님이 들려준 깨달음의 시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라”

이 학종 | | 2024-03-08 (금) 07:05

순천 송광사 천자암 나한전(사진=미디어붓다)



술친구가 있지만,

친구라고, 친구라고 말만 할 뿐입니다.

친구가 필요할 때에

친구가 되어주는 자가 친구입니다.


해 뜬 뒤에도 잠자는 것

남의 아내를 범하는 것

원한에 집착하는 것

손해를 끼치는 것

악한 친구들이 있는 것 

인색한 것,

이러한 여섯 가지는 사람을 파멸시킵니다. 


악한 친구이자 악한 동료,

악한 활동영역을 가진 자라면,

이 세상으로부터 

저 세상으로부터

양자로부터 그 사람은 파멸합니다. 


도박과 여자 

술 

춤과 노래

낮에 잠자고 때 아닌 때 돌아다니는 것

악한 친구들이 있는 것 

인색한 것, 

이러한 여섯 가지는 사람을 파멸시킵니다. 


주사위를 던지고 술을 마시고

남에게 목숨 같은 여자를 범하고

저열한 자를 섬기고 

존경스런 자를 섬기지 않는 자는  

흑분의 달처럼 이지러집니다. 


술꾼이 재산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목마른 자가 물마시 듯 악을 행하면,

물속처럼 빚더미 속으로 가라앉아

곧바로 자신의 가문조차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낮에 자는 버릇을 가진 자와

밤에 일어나 돌아다니는 자와

술에 취해 주정하는 자는

가정에 결코 정착할 수 없습니다. 


너무 춥다, 

너무 덥다,

너무 늦다고 말하면서

일을 팽개쳐버리면,

젊었을 때 기회를 놓칩니다. 


이 세상에 추위와 더위를

건초보다 중요시 여기지 않고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면, 

그는 행복을 잃지 않습니다. 


악한 친구를 가까이 두고, 같이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행복이 있을 수 없다. 잠깐의 감각적 쾌락을 누릴지 모르겠지만, 이는 곧 최악의 불행으로 닥쳐올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악한 친구를 어떻게 분류하셨을까? 부처님께서는 악한 친구로 크게 여섯 부류, 즉 도박꾼, 도락가, 음주가, 사기꾼, 협잡꾼, 폭력배를 말씀하셨다. 도박꾼으로는 주사위놀이 도박꾼을 제시하셨는데, 오늘날에는 도박의 종류도 크게 늘었기 때문에 모든 도박을 즐기는 자라고 보면 될 것이다. 도락가로는 여자도락, 식도락, 과자도락, 금전도락 등이고, 음주가는 마시는 것을 지나치게 즐기는 자를 말한다. 사기꾼은 유사한 것으로 속이는 자를 말하고, 협잡꾼은 면전에 돌아서서 기만하는 자를 말한다. 폭력배는 집 등에서 난동을 부리는 자를 말한다. 이런 여섯 가지의 악한 친구들을 가진 친구는 언젠가는 반드시 파멸하고 만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는 또 게으른 자는 기회를 놓치게 되고 반드시 행복을 잃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게으른 자에 대해 부처님은 적시에 일어나 ‘이보게, 일하러 가세.’라는 말을 듣고도 ‘너무 춥다, 뼈가 시리다. 그대는 가라. 나중에 보자.’라고 말하며, 불을 지피고 않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사람들은 더울 때에도 똑같은 핑계를 대며 게으름을 피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일이 줄어들게 되고 마침내 불행을 맞게 된다고 가르치신 것이다. 부처님은 게으름에 빠지는 것의 위험을 여섯 가지로 정리하셨다. 첫째 너무 춥다고 일을 하지 않고, 둘째 너무 덥다고 일을 하지 않고, 셋째 너무 이르다고 일을 하지 않고, 넷째 너무 늦다고 일을 하지 않고, 다섯째 너무 배고프다고 일을 하지 않고, 여섯째 너무 배부르다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그것들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와 관련하여 장문의 시를 읊으셨다. 이 시는 <디가니까야> 제3품 빠띠까의 품 ‘씽갈라까에 대한 훈계의 경’에 나온다. 

이 시에서 부처님께서는 술친구는 말만 친구일 뿐이며, 진짜 친구는 필요할 때 친구가 되어주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이 시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지어서는 안 될 업들을 짓는 사람에게는 번영이 없으며,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고 강조하셨다. 

혹여 이 시를 읽는 분들 가운데 ‘남의 아내’, ‘여자’라는 용어들이 거슬리게 들릴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부처님 당시의 시대상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성차별이 사라진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 부처님이 이 시를 읊으셨다면, 당연히 남의 배우자, 이성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을까. 



기사에 만족하셨습니까?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이전   다음
Comments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