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종
urubella@naver.com 2008-05-16 (금) 00:00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렸던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을 기억할 것이다. 그 숱한 시와 소설, 산문 중에 등신불에 대한 기억이 유독 뚜렷한 것은 김동리의 출중한 문장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스스로 자신의 몸을 태워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다는 충격적인 내용 때문일 것이다. 사실 동리의 소설을 공부 할 때나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난 뒤까지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설, 즉 허구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넘겨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 그 소설에서나 있을 것 같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태고종의 선지식 충담 스님. 그가 스스로 몸을 불태워 소신공양이 소설속의 일이 아니라 현실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임을, 생사불이의 경계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당시 취재기자로서 소신공양의 현장을 다녀와 보도하고, 관련 불사와 행사에도 참여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 충담사의 법맥을 이은 지성 스님이 10주기를 맞아 기념행사를 6월 7일(음 5월 4일)에 봉행한다. 사실 두어 달 전부터 기념행사와 관련해 이런저런 사전논의를 해왔던 터라 지성 스님의 ‘충담 대종사 열반 10주기 추모 영산재’에 임하는 단심을 기자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지성 스님이 오늘 이메일로 행사에 관한 보도자료를 보내왔다.
우편번호 477-818. 주소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하천리 산1. 전화 031)584-0117,전송 585-5747
일시 및 장소 2008년 6월 7일(음 5월 4일)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하천리산1번지 호명산 감로사(전화(031)584-0117, FAX 585-5747) 행사명 ‘충담대종사 소신공양 10주기 추모 영산재’.
당신에게 불법과 피와 뼈와 살을 남겨준 스승을 대하는 감로사 주지 지성스님의 정성이 비록 상투적인 정보를 담은 문장인데도 곳곳에 배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영산재는 6월 7일 오전 11시부터 범음범패 어산 대종장 스님들이 집전하는 영산재로 시작된다. 10주기 열반기념 법회에서는 특별히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장과 서울불교대학원대학 초대총장을 역임한 목정배 교수의 학술발표가 있고, 종단 원로 중진스님들이 증명한다.
그러면, 소신열반 당시로 잠시 되돌아 가보자. 충담대종사는 당시 분단조국 평화통일, 고통 받는 중생 구원, 불교계 화합과 흥륭 등 세 가지 대원력을 세우고 지난 1998년 6월 27일(음력 윤 5월 4일) 감로사 미륵부처님 전에서 삼매의 불을 일으켜 부처님께 소신공양을 결행했다. 이는 한국불교사상 희유의 사건일뿐더러 부사의(不思議)한 일로, 당시 우리사회에 신선한, 그리고 큰 충격을 주었다.
“호명사 감로사에 구름과 노닐던/ 이 노승은 본래 서원 성취코자/ 삼보전에 소신공양 올리나니/ 이 인연공덕으로 부처님의/ 자비은혜를 갚고/ 국태민안하며 불법이 거듭/ 흉륭되기를 기원합니다.”
<만약 어떤 것이 옳은 것이냐 묻거든/ 다 응당히 주하는 바 없게 하라.>
충담 스님이 남긴 열반송이다. 시(詩)에 절의 의미가 포함돼 있는 것을 거론치 않더라도 스님들은 본래 시인이다. 어쩌면 시인일 수밖에 없는 분들이다. 깨달음의 경계에서, 또 이생과의 인연을 접는 순간에서 스님들은 시를 읊는다. 그것은 사람들은 오도송이라고 하고, 열반송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세속의 온갖 반연을 끊고 절대고독의 세계로 들어가 몸과 마음의 깊고 깊은 정제의 수련과정을 거쳐 터져 나온 절창이다.
삶과 죽음의 분별과 경계를 뛰어넘은 소신의 결행을 놓고 당시 언론들은 충담 스님의 소신공양에 대해 많은 기사를 쏟아냈다. 당시 공종원 선생은 한 칼럼에서 ‘소신공양 자체보다는 충담 스님이 가졌던 중생구제의 크나큰 염원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마도 이번에 10주기 추모행사는 바로 그 염원을 되살리는 행사로 치러진다. 소신의 충격이나 희소성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이제 충담 스님이 남긴 정신을 오롯이 되살리는 것이 더 중요한 불사이기 때문이다.
감로사 주지 지성스님은 “부처님을 찬탄하는 영산회상을 재현하는 영산재와 호국영령및 선망부모 조상님들을 위로천도하는 천도재를 통해 모두 오랜 생에 걸친 업장을 소멸하고 뜻하는바 소원을 성취하기 바란다”며 “추모영산재와 천도재를 통해 성불인연 짓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번 법회는 또 충담대종사가 칠십년 전 창건한 서울 왕십리 승가사를 호명산 감로사로 이전하는 사찰이전 건립불사 기공식도 함께 봉행된다. 왕십리 승가사는 태고종 창종 등록 1호 사찰로 최근 이 지역이 재개발지구로 고시됨에 따라 불가피하게 이전하게 된 것이다.
*충담대종사는?
1997년 정토삼부경을 역해한 역해본을 간행하며, 수행과정과 소신공양 발원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이듬해 소신공양을 결행했다. 대종사는 유교집안에서 태어나 한학을 수업하고 17세에 삼각산 승가사에서 출가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휴전이 되자 호명산 감로암에 토굴을 마련했다. 불교분규와 10.27법난을 거치며 조국통일, 제종통합, 불국토 구현의 대원력을 세웠다. 입적전까지 태고종의 승정으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