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종
2024-01-12 (금) 09:03크게보기
용주사 돌담(사진=미디어붓다)
믿음이 씨앗
감관의 수호가 비
지혜가 멍에와 쟁기.
부끄러움이 자루
정신이 끈
새김이 쟁깃날과 몰이막대.
몸을 수호하고
말을 수호하고
배에 맞는 음식의 양을 알고,
진실을 잡초를 제거하는 낫으로 삼고
온화함이 멍에를 내려놓는 것이네.
속박에서 평온으로 이끄는 정진이 짐 싣는 황소,
슬픔이 없는 곳으로 도달해서
가서 되돌아오지 않네.
이와 같이 밭을 갈면
불사의 열매를 거두고,
이렇게 밭을 갈고 나면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난다네.
부처님 재세 시 부처님을 포함한 모든 비구들은 세속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빌어 양식을 해결했다. 걸사, 즉 얻어먹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는 비구라는 명칭을 사용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인천(人天)의 스승이셨던 부처님은 가는 곳마다 재가의 제자들로부터 큰 환대를 받고 공양을 제공받았지만, 때로는 음식을 얻지 못해 끼니를 걸러야 할 때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시의 비구들은 음식을 얻기 위해 하루 일곱 집만을 찾아갈 수 있었다. 일곱 가구에서 모두 음식을 내어줄 때도 있고, 그 가운데 몇 집에서만 음식을 얻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떤 날에는 일곱 집을 다 돌아도 음식을 얻지 못할 때가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일부 브라만들은 육체적 노동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수행정진만 하는 비구들이 음식을 비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경향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는 부처님께서 파종기에 마가다 국의 수도 라자가하 남쪽의 다끼나기리(Dakkhināgiri) 지방에 있는 에까날라(Ekanālā)라는 브라만 마을에 걸식을 하러 나가셨다가, 브라만 까씨 바라드와자(Kasi Bhāradvāja)를 만난 장면에서 설해졌다. 까씨 바라드와자는 파종 때가 되어 500개 가량의 쟁기를 멍에에 묶고 있었는데, 마침 부처님께서 까씨 바라드와자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까씨 바라드와자는 500명의 인부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그는 탁발을 위해 다가온 부처님을 향해 자신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먹는데, 그대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드시라고 말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그에게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먹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브라만 까씨 바라드와자는 ‘그대 수행자가 멍에도, 쟁기도, 쟁기 날도, 몰이 막대도, 황소도 보지 못했다.’며 ‘어떻게 우리는 그대가 경작하는 것을 알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소개하는 이 시는 이런 바라문 까씨 바라드와자의 물음에 대해 답변으로 읊은 시이다.
이 시는 <쿳다까니까야(Khuddaka Nikāya)> 숫타니파타(Sutta- Nipāta) 뱀의 품 ‘까씨 바라드와자의 경(Kasi Bhāradvājasutta)’에 수록되어 있다. 등장하는 시어 하나하나가 모두 심오한 교의를 상징하고 있어, 곱씹어 읽을수록 부처님 가르침과 부처님 수행법의 진수가 드러나는 놀라운 시라고 할 수 있다.
- 시어 ‘믿음’은 빨리어 ‘쌋다(Saddha)’의 번역으로, 믿음보다는 확신에 가까운 의미이다. 금강반야론, 섭대승론, 대승아비달마집론 등을 번역한 4세기 경의 저명한 불교철학자이자 세친의 형제이기도 한 아쌍가(Asaṅga)에 따르면, 쌋다에는 세 가지의 의미, 즉 진리에 대한 완전하고도 확고한 확신, 둘째 확신에 대한 희열, 셋째 목표를 성취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
- 시어 ‘감관의 수호’는 감각능력을 수호한다는 뜻이다. 감각능력을 수호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정이므로 고행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 시어 ‘비’는 감각능력의 수호라는 공덕으로 믿음과 믿음의 뿌리가 되는 계행 등의 선법이 성장하여 시들지 않고 완성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 시어 ‘지혜’는 빨리어 pañña의 번역으로, 올바른 견해(正見)와 올바른 사유(正思惟)를 말한다. 올바른 견해는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에 대한 통찰을 뜻하고, 올바른 사유는 자비에 충만한 사유를 말한다. 따라서 지혜란 자비로운 통찰을 의미한다.
- 시어 ‘멍에와 쟁기’는 세간적·출세간적 지혜 두 종류를 뜻한다. 세간적 지혜는 팔정도의 시작점에 해당하고, 출세간적 지혜, 즉 궁극적 지혜는 네 가지 거룩한 진리(사성제)를 증득해 얻어지는 지혜를 말한다.
- 시어 ‘부끄러움’은 부끄러움(懺, hirī)과 창피함(愧, ottappa)을 아울러 의미한다. 부처님은 부끄러움과 창피함은 세상을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과 같다고 가르치셨다. 이 두 가지가 사라지면 그 세상은 파멸로 치닫는다는 것이다.
- 시어 ‘자루’는 부끄러움이 세간적·출세간적 지혜를 구성하는 멍에와 쟁기를 지탱하는 버팀목과 같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시어 ‘정신’은 마음(mano)을 뜻하지만 여기에서는 삼매의 의미를 갖는다.
- 시어 ‘끈’은 ‘쟁기를 멍에에 연결하는 끈’, ‘멍에를 소에 연결하는 끈’, ‘수레를 소에 연결하는 끈’을 의미한다.
- 시어 ‘새김’은 팔정도의 정념(正念)을 말한다.
- 시어 ‘쟁깃날과 몰이막대’는 통찰(위빳사나)과 연결된 새김이 쟁깃날이고 길(道, magga)과 연결된 새김이 몰이막대이다.
- 시구 ‘배에 맞는 음식의 양을 알고’는 음식을 절제한다는 의미이다. 부처님은 식사의 분량을 조절하지 못했던 꼬살라 국의 빠쎄나디 왕에게 식사의 분량을 아는 사람은 괴로운 느낌이 적어지고 목숨을 보존하여 더디 늙는다고 가르쳐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 시어 ‘진실’은 네 가지의 거룩한 진리, 사성제를 의미한다.
- 시어 ‘온화함’은 선한 열반을 즐긴다는 의미로, 열반의 경지를 뜻한다.
- 시어 ‘평온’은 해탈의 상태, 즉 열반을 표시한다.
- 시어 ‘정진’은 팔정도의 올바른 정진 즉 ‘정정진(正精進)’을 가리킨다.
- 시구 ‘슬픔이 없는 곳으로 도달해서’는 모든 슬픔과 화살이 제거된 열반의 상태를 말한다.
- 시어 ‘불사(不死, amata)’는 아라한만이 체험하는 경지, 열반을 의미한다. 통찰지혜를 통해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이에게는 변화의 소멸은 지각되지만 늙고 죽음은 나타나지 않는다. 아라한에게서 존재의 다발의 파괴는 죽음이 아니라 ‘생명의 내려놓음’이라고 불린다. 아라한의 체험에는 구조적으로 불사가 수반된다.
부처님의 시를 경청한 까씨 바라드와자는 자신이 잘못 행동했음을 깨닫고 서둘러 청동그릇에 유미죽을 가득 담아 부처님께 올렸으나, 부처님은 ‘시를 읊은 대가를 나는 받지 않는다.’면서, 번뇌가 부서지고 의심이 소멸된 완전한 님, 위대한 성자에게 다른 음식과 음료수를 달리 봉사하라고 권했다. 이 일로 인해 까씨 바라드와자는 부처님 앞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고, 오래지 않아 거룩한 님[아라한]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