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담바라 핀 청계사(3)

                                                   수원사람 김성채 객원기자

눈, 비를 맞으며 서 계신 지장보살님

지장보살 입상이 소대 옆에 세워졌습니다. 지장보살 입상이 사방팔방 위아래를 더해진 시방에 어떤 가림막도 없는 노천에 온전하게 서 있는 이유가 있을까요? 

지장보살은 수억 겁에 이르는 전생 동안, 여러 차례 몸을 바꾸어 날 때마다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시키겠다’는 큰 서원을 내고 실천하신, 의지가 굳고 변함이 없는 보살마하살입니다. 그런 까닭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지장보살이 구원겁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는 자비와 연민으로 일체중생을 구제하고 교화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벌써 이천오백 년이 지났건만, 천상에서 지옥에까지 가득한 육도 중생들은 무거운 업을 계속 지어내고 있어서 지장보살은 쉴 날이 없습니다. 까닭에 지장보살님은 성불하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소대 앞에 서 계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소가 웃는 세계

지장보살입상 옆에는 되새김질하는 소가 편히 앉아 빙긋이 웃고 있습니다. 평생 논밭에서 땀을 흘리며 쟁기질하는 소가 웃으며 즐거워할 때가 있을까요? 소가 웃을 때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만 그런게 아니라, 소도 너무나 기가 막히고 어이없는 일을 본다면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소가 웃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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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가 나쁜 업 짓는 일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에 소조차 ‘도저히 천도 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지장보살께서 극락세계로 보내주시는 자비심이 어이없어서 소가 웃는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경허 스님이 아홉 살 때 어머니를 쫓아와 출가한 절이 청계사입니다. 경허 스님이 출가하면서 받은 법명은 영리할 “성”, 소 “우”자의 성우(惺牛)입니다.

출가한 지 22년이 지난 후, 경허스님은 은사 스님을 뵙고자 떠난 길에서, 역병이 창궐한 마을을 지난 어느 처사 집에서 "스님네들은 일생 동안 시주만 받아먹고 살다가 죽게 되면 소가 된다는데..."하는 말을 듣습니다. 

처사는 이런 때 찾아든 스님이 마땅찮거나, 미웠거나, 꺼려져서 뱉어낸 말이었을 겁니다. 그러지 않아도 사람이 마구 죽어 나가는 상황을 본 스님은 ‘수많은 경전의 교리가 아무짝에 쓸모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심란한 참인데, 그 처사의 흘린 말에 ‘이제까지 닦은 수행이 무엇인가?’ 하는 엄청난 자극이 됩니다. 

스님은 은사스님 만나기를 접고 동학사로 돌아와 폐문한 채 스스로 깨닫는 참선에 들어가셨고, 드디어는 끊어진 우리나라 선맥을 크게 떨치는 경지에 이르십니다.

사바세계에서 사람이 죽고, 죗값을 치르고, 거듭거듭 윤회하는 일. . . 

소대 앞에서 육도 중생의 거듭되는 윤회를 보면서 빙긋이 웃을 수 있는 “소”는 어느 세계에서 온 소인지 궁금합니다.

여섯 개의 넓은 세계도 좁은 지장보살

지장전은 세 칸짜리 맞배지붕집으로 극락보전 오른쪽에 있습니다. 법당에는 지장보살 입상이 봉안되었고, 입상 뒤에는 지장시왕도가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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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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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 입상과 지장시왕도

지장보살은 스님처럼 머리를 깎은 모습에 오른손엔 지옥을 여는 육환장을, 왼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명주를 받쳐 들었고, 원형 광배가 성스럽게 둘러졌습니다.

언제 부처님께서 법문을 마치셨을 때, 꽃비가 내리면서 법회에 참석한 중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손에 여의주가 들려있고,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죄가 가벼워지고 청정해졌고, 살생하고자 하는 생각과 행위가 멀리 떠났고, 온갖 괴로움에 시달리면서 편히 쉬지 못하던 일도 사라져 고통과 근심이 없어졌음을 알게 됩니다. 이유를 여쭙자 부처님께서는 지장보살이 사문의 형상을 하고 신통의 힘으로 이와 같은 장엄한 일들을 나타냈는데, 이는 나에게 공양을 하고자 찾아오는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장보살의 모양새가 사문의 형상인 것은, 육도를 거침없이 다니시며 중생들의 온갖 위험과 공포로부터 구해 주고 보호하며, 번뇌와 나쁜 업의 찌꺼기를 모두 없애주기 간편한 옷을 좋아하시는 때문일 겁니다.

입상 뒤에 걸린 지장시왕도에는 좌우보처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명부시왕과 판관, 사자가 그려졌습니다.

천도재가 열리던 극락보전에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의 명호가 쓰인 번이 걸렸었습니다. 도명존자 번을 거는 이유는 망자를 극락세계로 천도하기 위해서는 명부의 지리와 진행되는 심판 상황을 꿰뚫고 있는 도명존자를 앞세워야 하는 때문입니다. 또 무독귀왕 번을 거는 이유도 망자가 일곱 번째 심판을 받기에 앞서, 혹시나 남아있을지 모르는 사납고 악한 독을 무독귀왕이 제거해 주어야 하는 때문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의 세계

천도재가 어느 틈에 끝났고, 극락보전 걸렸던 불보살님과 신장들의 명호가 쓰인 번도 말끔히 치워졌습니다. 망자는 인로왕보살을 따라갔고, 극락보전에 왕림하셨던 불보살님들도 멀고 먼 동서남북 자신들의 정토세계로 이미 떠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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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보전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집입니다. 공포 구조는 기둥 위에 2익공을 올렸고, 기둥 사이에는 기둥과의 폭에 맞춰서 한 개부터 세 개까지 화반을 놓아 지붕부의 무게를 분산시켰습니다. 귓기둥에는 정면과 측면 그리고 그 중간인 45도 각도의 익공을 냄으로써 한옥의 멋을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조금 길다 싶은 둥근 서까래에 부연마저도 길어, 처마가 길게 내뻗었습니다. 

용마루에는 취두를, 내림마루와 추녀마루에는 용두를, 추녀마루 끝에는 바래기 기와를, 비를 맞아서 썩기 쉬운 사래 끝에는 토수 기와로 덮었습니다. 한옥의 아름다움이 지붕에서 나오는데, 사찰 지붕을 각종 기와로 치장함은 드문 사례로 극락보전을 화려하게 하는 금상첨화 같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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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을 장식한 취두 용두 망와 토수기와가 아름다운 것과 다르게, 보수 후에 단청이 이루어지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사적비의 기록으로 여러 차례 중창과 보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는데, 보수하면서 교체된 연함이며 부연, 서까래, 개판 등이 단청을 입지 못해서 아쉬움이 일었습니다. 

지금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소를 찾아야 하는데. . 

극락보전 외벽에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무엇을 그린 것이라고 단번에 알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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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발자국을 찾았는지, 소를 찾았는지. (見跡 ?, 見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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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를 걸다(得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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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騎牛歸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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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소도 모두 본래 空임을 깨닫는다.(人牛具忘)

회벽 바탕색이 듬성듬성 긁혀 벗겨지고, 벽화도 그려진 때로부터 오래 지나서인지 색이 바랜 탓입니다. 심우도를 그린 것인지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은 동자가 소고삐를 당기는 장면이 단서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것이 ‘참마음을 찾고 깨닫는 과정, 그대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허스님께서 입적하시기 바로 전에 둥근 원(일원상 一圓相)을 그리고, 아래의 열반게송을 쓰신 다음, 오른쪽으로 누워 다른 세계로 교화하시려 떠나셨다고 합니다.

마음만 홀로 둥글어 그 빛 만상을 삼켰어라.

빛과 경계 다 공한데 다시 이 무슨 물건이리오.

(心月孤圓光呑萬像 光境俱忘復是何物)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