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ㆍ기고 > 현장스님의 불교 속의 역사 여행

명당 터 때문에 망한 절. 고창 소요산 연기사가 폐사된 이야기

미디어붓다 | mediabuddha@hanmail.net | 2023-11-16 (목) 08:13

영광 불갑사의 사천왕은 어디에서 왔을까? 


전라관찰사는 자기 부친의 명당자리를 얻기 위해 연기사를 불태우고 승려들을 가마솥 끓는 물에 던져 죽였다.

고창에는 유명한 선운사가 있다. 고창군의 옛 이름이 흥덕현이다.

옛 지도에 흥덕현을 보니 선운사는 없는데 연기사는 표기되어 있다. 고창에는 선운사보다 크고 유명한 연기사가 있었던 것이다. 고창의 동쪽에는 도솔산 선운사가 있고 서쪽으로 소요산 연기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흥덕 현지에는 소요산 정상에는 기우제를 지내는 천제단이 있었다고 적혀있다.



크게보기
고창 옛 지도에 연기사가 표기되어 있다. 



연기사는 백제 위덕왕 때 소요대사가 처음으로 산문을 열고 향화의 발길이 깃들게 되었다.신라 경덕왕 때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절을 크게 중건하면서 소요산 연기사가 되었다. 절이 번창할 때는 38개의 암자를 거느렸다고 한다.

연기사가 폐사가 된 이유는 명당터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전라관찰사가 아버지인 장성부사의 묘를 쓰기 위해 명당자리를 찾다가 연기사터가 명당이라는 말을 들었다. 옛 절터는 화재로 소실되거나 정유재란과 6.25를 지나면서 소실된 것들이 대부분인데 연기사는 몰지각한 권력자의 탐욕과 무지에 의하여 사라진 절이다. 

전라관찰사는 자기 부친 장성부사를 위해 이곳에 자기 집안의 선산 명당자리를 얻기 위해 관원을 동원하여 처음에는 동쪽 산을 넘어와 연기사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스님들이 필사적으로 대항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다. 전라감사는 포기하지 않고 두 번째는 더 많은 관군을 동원하여 한밤중에 나룻배를 이용하여 장연강을 건너와 연기사에 불을 질렀다. 잠결에 혼비백산하며 불을 끄던 스님들을 한 명씩 잡아다 연기사 앞에 큰 솥을 걸어놓고 끓는 물속에 집어넣어 죽였다고 한다.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당한 일이라 스님들은 모두 잡혀 죽었고 연기사는 그렇게 불태워 사라져 버렸다.


조선 후기 성리학을 받들던 관리가 조상의 명당 터를 얻기 위해 천년 고찰을 불태우고 그곳의 수많은 승려들을 가마솥의 끓는 물에 던져 죽이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그런 엄청난 살인과 약탈을 저지르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 사회가 조선이었다..

다행히 사천왕이 모셔진 천왕문은 불에 타지 않고 수년 동안 방치되었다. 경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천왕문도 함몰되면서 사천왕만 폐허가 된 연기사에 남아 있게 되었다. 누군가 사천왕상을 가져가려고 했는지 어떻게 하여 장연강까지 운반되어 장연강 갈대 숲속에 처박혀 있었다고 한다.



크게보기


크게보기
연기사에 있던 사천왕인데 지금은 불갑사로 전입신고를 마쳤다. 



그 무렵 영광 불갑사에서는 설두 스님이 불갑사를 중창하고 있었는데 하룻밤 꿈에 사천왕이 나타났다. 

“나는 연기사에 있던 사천왕인데 지금은 나 혼자만 남아 장연강 갈대 숲속에 버려져 있다. 나를 구하여 주면 도량을 보호하고 삼보를 잘 받들겠다.” 하고 설두 스님 꿈에 나타나 말했다.

그 시간 영광군수 꿈에도 사천왕이 나타나 두 사람은 서로 같은 꿈을 꾸었다. 두 사람은 서로 손을 잡고 장연강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불갑사 설두 스님과 영광군수가 장연강에 함께 와 보니 과연 사천왕은 상반신이 장연강 갈대 숲속에 비스듬히 선채로 있었다. 불갑사의 설두 스님과 영광군수는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사천왕을 장연강에서 건져 올려 큰 배에 싣고 서해바다로 나가 법성포구에 당도하였다. 다시 영광 불갑사로 옮겨 천왕문을 짓고 사천왕을 정중히 모셨다. 


그때가 조선 고종 7년 1870년이다. 지금도 영광 불갑사에 모셔진 사천왕은 조각이 섬세하고 웅장하며 국보급 사천왕으로 손색이 없다. 사천왕을 보수할 때는 많은 유물과 오래된 불경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 유물들은 불갑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전라관찰사 임씨는 잔인하게 스님들을 죽이고 연기사를 불태워 버린 악업을 쌓고 죽었다. 재물과 권세에 대한 집착이 강하면 죽어서 구렁이가 된다고 한다. 그런 업보는 수 천 년이 지나야 업을 벗을 수 있다고 한다. 임 부사 부자도 업을 받은 것일까? 


연기사 터를 발굴 조사한 어느 교수가 쓴 기록에 의하면 장성부사 묘에는 구멍으로 커다란 구렁이 한 쌍이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 후 구렁이는 뱀 잡는 땅꾼 눈에 띄어 두 마리의 구렁이를 잡게 되었다, 땅꾼은 그 구렁이를 어느 떠돌이 약장수에게 팔았다. 약장수는 구렁이를 나무 궤짝에 넣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 구렁이쇼를 보여주었다. 구렁이를 꺼내어 쇼를 하고 나면 많은 사람들은 그 약을 팔아주어 큰돈을 벌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구렁이를 장성부사의 혼이 아들(전라관찰사)의 죗값을 갚기 위해 금사망보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그 약장수는 구렁이로 인하여 많은 돈을 벌었고 땅꾼으로부터 구렁이의 사연을 전해 들은 약장사는 그 돈을 투자하여 강원도 어느 곳에 암자를 지었다. 약장사는 불전에 두 사람의 업보를 대신해서 참회 기도를 올려 주었다.


현재 연기사 터는 연기재 댐 건설로 절터의 대부분이 수몰되었다.

전라관찰사가 절을 불태우고 쓴 아버지 장성부사묘는 돌보는 이가 없이 잡초가 무성한 쑥밭이 되었다. 집안도 모두 폭망했다. 너른 절터도 효령대군 후손에게 넘어가 새로운 공동체 시설을 준비하고 있다. 탐욕스럽고 무지한 사람은 권력을 이용하여 악업만을 쌓는다. 조상과 후손을 위한다는 일이 집안을 망치고 후손들이 죗값을 치르고 있다.



기사에 만족하셨습니까?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이전   다음
Comments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