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는 보수, 진보가 없다

                                                          정찬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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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정윤경 

밤새 저 달과 별이 

나를 외호했다는 깨달음이 뇌리를 스친다. 

우주적인 은밀한 인연이다. 

이것도 느끼는 자의 몫이리라. 고맙다. 

베풀었지만 베풀었다고 집착하지 않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바로 저런 것일 터이다.

* *

작가의 원초적인 힘은 순수함에 있을 것 같다. 

작가가 순수함을 잃고 위악적으로 바뀔 때 

그의 예술도 타락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예술의 생명은 순수함에 있다고 본다. 

작가의 순수성이 이심전심으로 상대를 공감케 하고, 

상대의 영혼을 정화시켜주기 때문이다.  

매 순간 생(生)이 다할 때까지 

나를 경계하고 경책(警策)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 *

이불재 돌부처님이 미소를 짓고 있다. 

돌부처님은 미소로서 양극단을 여의면서도 

양극단을 포용하는 중도(中道)를 설하고 있다. 

노란 국화, 붉은 국화는 빛깔이 그러할 뿐 

스스로를 보수라 하고 진보라 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우파, 좌파라고 하지 않는다. 

자신을 활짝 드러낸 온전한 존재로 

거기 그렇게 있을 뿐이다. 

그래서 화장세계(花藏世界)는 시비와 갈등이 없나 보다. 

분별의 맹독이 없나 보다. 시비와 갈등, 분별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려면 꽃을 바라봐야 한다. 

꽃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청정해진다. 

<유마경>은 ‘청정한 마음이 법당’이라고 했다. 

마당에서 국화꽃의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듣는 오후 한때이다. 

* *

오래전에 <오라, 세월이여>를 내가 작시하고

싱어송라이터 구자형 선생이 작곡한 가사를 새삼 음미해 본다.

 오라, 세월이여 

 그대, 봄을 찾아 방랑자 되어 어둔 세상 떠돌았구나

 햇살 눈부신 한여름 고갯길, 가랑잎 뒹구는 자드락길 

 친구들 떠난 이후 이제는 그리움마저 놓아버린 그대여  

 정녕 아무것도 원하지 않나니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네

 향기를 숨기지 않는 꽃이여 그대는 자유라네, 봄이라네.

 그대, 임을 찾아 나그네 되어 시린 한세상 돌아왔구나

 눈보라치는 산길, 언 강 숨죽이며 피울음 삼키었다니

 세월은 가는 것인가 오는 것인가, 아쉽고 설레는 마음이여

 이젠 아무것도 원하지 않나니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네

 길 끝나는 곳에 길이 있구나 그대는 자유라네, 임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