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이 들려준 깨달음의 시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이 학종 | | 2023-10-13 (금) 08:18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때 묻지 않는 연꽃같이,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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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디자인=미디어붓다)  



이 시는 <숫타니파타> ‘코뿔소의 외뿔의 경(Khaggavisānasutta)’에 나오는 41편의 긴 연시(聯詩) 가운데 37번째에 해당하는 시이다. 불교와 관련된 글에 자주 인용되고 있고, 찬불가의 가사로도 활용되어 불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내용이다. 이 경의 전체 내용과 구성이 아름답고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나, 특히 이 부분은 눈에 띄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가히 절창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 시의 내용이 의미하는 것, 각각의 시구가 만들어진 배경까지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아름다운 시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연유까지 알게 된다면 좀 더 큰 감동으로 이 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코뿔소의 외뿔의 경’은, 어느 날 아난다 존자가 홀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연각불에 관하여 부처님께 질문하자 부처님께서 친절하게 시로써 답변한 것이다. 부처님은 연각불들이 지향하는 바와 소망에 관하여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 상황과 서로 다른 시대에 출현했던 연각불들이 자신의 경계를 노래한 것을 아난다에게 들려주는 방식을 취하셨다. 

주석에 따르면, 베나레스(바라나시) 근처의 리씨빠따나(이시빠따나)에 살던 500명의 연각불들이 12년 뒤에 부처님이 온다는 말을 듣고 각각 한 편의 시를 읊으며 사라졌으므로 원래의 시는 500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앞에 소개한 37번째 시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한 연각불이 지은 시이다. 이 연각불은 한때 베나레스의 왕이었다. 이 왕은 유원에서 노닐다가 아침 일찍 일어나 유원 밖으로 나가 물이 있는 곳을 찾아 세수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마침 그곳에서 암사자가 새끼를 낳고는 먹이를 구하러 숲으로 갔다. 그때 왕의 부하가 이 광경을 보고는 왕에게 ‘사자의 새끼가 있다’고 알렸다. 왕은 ‘사자의 새끼는 어떠한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시험해 보고자 큰 북을 두드렸다. 과연 사자의 새끼는 큰 북소리를 듣고서도 똑같이 누워있었다. 세 번이나 울렸으나 미동도 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왕은 어미 사자가 오기 전에 그곳을 떠나며, ‘언젠가는 나에게 갈애나 견해의 두려움이 생겨나더라도 겁먹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명상하다가 다시 한 어부를 만났다. 이 어부가 물고기를 잡아 나뭇가지에 걸고 펼쳤는데, 바람이 그물에 걸리지 않고 가는 것을 보고는 왕은 ‘언젠가 나도 갈애나 견해의 어리석음의 그물에 걸리지 않고 갈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유원의 석축으로 된 연못가에 앉았다. 거기에서 그는 바람이 불어 연꽃이 흔들리다 물에 닿았는데도 꽃이 물에 오염되지 않는 것을 보고는 ‘나도 세상에 태어났지만 세상에 오염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통찰을 닦아 연각불이 되었는데, 그때의 감흥을 읊은 것이다. 

‘코뿔소의 외뿔의 경’이라는 이름은 41편의 시들의 마지막 후렴구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 가져온 것인데, 코뿔소의 뿔이 동반자 없이 홀로인 것처럼, 홀로 연기법을 깨달은 이, 연각불도 그와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후렴구에 대한 번역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다양한 이설들도 없지 않지만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번역이 적절한 것 같다. 후렴구의 맨 끝 시어인 ‘가라’는 글자 그대로 ‘걸어가라’라는 의미로 볼 수도 있겠으나, ‘행하라. 행을 닦아라.’의 뜻을 함축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주석에서는 ‘가라’에 대해 모두 여덟 가지의 행을 설명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네 가지 행주좌와에서 위의를 지키는 행(威儀行, iriyāpathacariyā) △감각 능력을 수호하는 행(處行, āyatana cariyā) △네 가지 새김의 토대를 닦는 행(念行, saticariyā) △네 가지 선정에서 집중을 닦는 행(定行, samādhicariyā) △네 가지 거룩한 진리에 대한 앎의 행(智行, ñāṇacariyā) △네 가지 거룩한 길[四向]을 닦는 행(道行, maggacariyā) △네 가지 수행자의 경지(四果)를 닦는 행(成就行, patticariyā) △모든 중생을 유익하게 하는 행(利世間行, lokatthacariyā).

37번째 시가 아니더라도 이 경에 등장하는 나머지 40편의 시들도 모두 심오한 가르침과 교훈을 가지고 있다. 이 시를 잘, 제대로 감상하셨다면, 이를 계기로 나머지 40편의 시도 찾아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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