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찬주의 알아차림 행복

정찬주의 마음챙김 행복25

정 찬주 | | 2023-09-06 (수) 07:21

 

                      날카로운 첫 키스 같은 계곡물



                                                      정찬주(소설가)

                        


크게보기


삽화 정윤경
 



1.

유심작품상 시상식장인 만해마을에 아내, 딸 부부, 쌍둥이 손자, 둘째 딸과 도착했다. 숙소를 배정받았는데, 창문 너머 소나무 사이로 옥 같은 계곡물이 쏜살같이 흐르고 있다. 시상식은 저녁 6시라고 한다.

상을 받기 위해 송정리에서 KTX를 타고 상경한 뒤 1박하고 다시 강원도 인제군까지 3시간 이상을 렌터카로 달려왔다. 수상하기 위해 깊은 산중으로 들어온 셈인데, 아주 독특한 경험이다. 상의 권위를 위해 수상자를 힘들게 한 것은 결코 아닐 터이다. 한 생각 바꿔보니 눈앞에 남도에서는 볼 수 없는 옥색 물빛의 계곡물이 흐르고 산빛은 더없이 싱그러운 갈맷빛이다. 만해 한용운 스님이 당신의 정신을 담금질했던 님의 침묵 같은 산과 날카로운 첫 키스 같은 급류의 다급한 계곡물이다. 이것만으로도 강원도까지 달려온 수고의 보상은 충분한  듯하다.


2.

만해마을 대강당에서 오후 6시에 유심작품상 시상식을 했다. 시, 시조, 소설 부문과 특별상 순서였다. 나로서는 동국대 전 총장 홍기삼 은사님께서 수상작 <아소까대왕>에 대해 축하 해설을 해주신 것과 동국대 윤재웅 현 총장의 축사 및 선후배 동료들을 만난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지금도 지근거리에서 은사님을 모시고 있는 김윤길 후배, 이상문 선배 소설가, 이경철 후배 시인, 신흥래 후배 소설가, 이용범 후배 소설가, 불광미디어 유권준 실장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쌍봉사 증현 주지스님의 화환과 나주시 윤병태 시장님의 축하 난이 뜻밖에 눈이 띄기도 했다. 화환과 화분을 사양한다고 했지만 굳이 보낸 것 또한 마음의 표시이리라. 반드시 감사의 전화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메아리가 없으면 공허하기 때문이다.

시상 후 만해마을 근처 숲속의 식사 장소에 가족과 지인 17명이 모였는데, 제일기획 팀장인 정호길 사위가 모두의 식사비 일체를 지불했다. 생각해 보니 홍기삼 은사님께서 주례를 서주신 ‘인생 선생님’이셨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은혜를 아는 것이 사람의 첫 번째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 중에 그것도 하나의 충분조건이 아닐까 싶다.


3.

만해축전 행사 도중 가족과 함께 미시령을 지나 손자들 물놀이를 위해 동해안 고성 바닷가, 속초는 주마간산으로, 양양의 낙산 홍련암 참배를 하고 백담사 입구 만해마을로 돌아왔다. 

오래전에 낙산사 경내가 산불로 화재가 났을 때 금곡 정념 주지스님을 위로하고자 방문한 기억이 난다. 그 답례로 금곡 정념스님께서 베어낸 소나무 일부를 아내 장작가마에 사용하라고 양양에서 이불재까지 대형트럭으로 보내준 적이 있다. 도예가인 아내는 낙산사 소나무로 가마에 불을 때서 나온 큰 항아리 한 점을 낙산사 홍렴암까지 찾아가서 금곡 정념스님께 기증했다. 

몇 년 만에 가족과 휴가를 보낸 셈이다. 이 호사 또한 고마운 분들 덕분이다. 크든 작든 항상 고마움을 잊지 말 일이다. 이런 인연을 들여다보면 인간은 고독한 듯하지만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적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4.

동국대 만해마을 건물 측면에 있는 만해 한용운스님 입상(立像)이다. 나와도 인연이 깊은 스님이다. 만해스님 일대기 장편소설 <만행(卍行)>을 민음사에서 24년 전인 1999년에 발간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인제군 산중에서 돌아와 지금은 남도산중 이불재에 있다. 속히 일상으로 복귀하려는 마음으로 장편 연재소설 <깨달음의 빛, 청자> 몇 회 분의 구상 메모를 보고 있다. 구상 메모가 나를 ‘글감옥’으로 안내하는 듯싶어 살짝 긴장이 된다. 내 경우 피곤하다는 말은 글쓰기로부터의 도피이거나 변명에 불과하다. 내일 새벽에 나는 반드시 몇 줄이라도 써야 하고 또 쓸 것이다. 집필은 나를 존재하게 하는 당위(當爲)이기 때문이다. 왜, 어째서 사는가에 대한 답이 그것밖에 달리 없으니 말이다. 집중해서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유령인간 혹은 잉여인간에서 탈출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기사에 만족하셨습니까?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이전   다음
Comments
경담 2023-09-06 07:34:23
답변  
눈을 감고 글을 복기해 보니
선생님 삶의 메아리가 아름답게 흘러갑니다.

다시 한번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화엄 2023-09-06 10:22:06
답변 삭제  
선생님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다니, 더 없이 행복해 보이십니다.
사모님 전시회 때 보았던 어린 꼬마들이  눈에 선합니다.
 지금은 많이 자랏겠죠? 귀여운 아이들이  보고 싶군요.
비밀글

이름 패스워드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