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종
2023-05-12 (금) 13:14참깨는 우리에게 매우 친근한 식물이다. 참깨에서 추출하는 참기름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탁에는 없어서는 안 될 요리의 필수품이다. 참깨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열대 지방이라는 설과 인도라는 설이 있으나 인도에서 시작하여 페르시아·메소포타미아·소아시아·이집트 등으로 퍼져 유럽에 전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중국에는 아라비아 상인을 통해 들어왔다고 추측되며, 우리나라에는 중국으로부터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깨의 꽃은 7∼8월에 피고 줄기 윗부분에 있는 잎겨드랑이에 한 개씩 밑을 향해 달린다. 꽃받침은 다섯 개로 깊게 갈라지고, 화관은 통 모양이며 끝이 다섯 개로 갈라진다. 수술은 네 개인데 그 중에 두 개가 길고 한 개의 헛수술이 있으며, 암술은 한 개이고 암술머리는 두 개로 갈라진다.
참깨 종자의 45∼55%가 기름이고, 단백질이 36%나 된다. 종자는 각종 식품과 조미료로 이용하는데, 아시아 지역의 요리에 특히 많이 쓰인다. 또한 종자에서 품질 좋은 기름을 짜내 사용하고,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은 사료 및 비료로도 사용된다. 두말할 것도 없이 나물반찬을 제대로 만들려면 참깨와 참기름은 필요충분조건에 해당한다. 나물위에 볶은 통 참깨를 솔솔 뿌리면 절로 군침이 당긴다.
귀촌해 직접 참깨를 심어 기르면서 참깨가 얼마나 얻기 힘든 소중한 곡물인줄 피부로 깨달았다. 어찌나 많은 종류의 벌레들이 몰려드는지 놀라울 정도다. 벌레들도 달고 고소한 맛과 향기를 내는 곡물에는 유난히 몰려드는 법이니, 참깨수확을 제대로 하려면 벌레와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참깨의 원산지가 인도인만큼, 붓다께서 설법을 하실 때 참깨가 법문의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붓다는 팔정도의 중요성을 가르치면서 참깨와 참기름을 법문의 소재로 활용하셨다.
붓다가 라자가하에 머물고 계실 때, 붓다의 제자 가운데 부미자(Bhūmija)라는 존자가 있었다. 그는 마가다 국의 왕자 자야쎄나의 삼촌이었는데, 쌈부따, 제이야쎄나, 아비라다나 등 친구들과 함께 붓다의 상가로 출가했다. 어느 날 부미자는 왕자 자야쎄나의 처소를 찾아간 일이 있었는데, 그에게 자야쎄나가 이렇게 물었다.
“존자 부미자여, ‘만약 어떤 사람이 서원을 세우고 청정한 삶을 영위한다고 해도 과보를 얻을 수가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서원을 세우지 않고 청정한 삶을 영위한다고 해도 과보를 얻을 수가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서원을 세우기도 하고, 세우지 않기도 하고 청정한 삶을 영위한다고 해도 과보를 얻을 수가 없다.’라는 이와 같은 주장, 이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는 수행자나 성직자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존자 부미자의 스승은 어떻게 말씀하시고 어떻게 설명하십니까?”
조카의 질문에 부미자 존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왕자여, 저는 세존의 앞에서 그것에 대하여 직접 듣거나 직접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명하실 것이라는 것은 가능합니다. ‘서원을 세웠지만 이치에 맞지 않게 청정한 삶을 영위하면 과보를 얻을 수가 없다. 서원을 세우지 않더라도 이치에 맞지 않게 청정한 삶을 영위하면 과보를 얻을 수가 없다. 서원을 세우기도 하고, 세우지 않기도 하더라도 이치에 맞지 않게 청정한 삶을 영위하면 과보를 얻을 수가 없다. 서원을 세우는 것도 아니고, 서원을 세우지 않는 것도 아니더라도 이치에 맞지 않게 청정한 삶을 영위하면 과보를 얻을 수가 없다. 그러나 서원을 세우고 이치에 맞게 청정한 삶을 영위하면 과보를 얻을 수가 있다. 서원을 세우지 않았지만 이치에 맞게 청정한 삶을 영위하면 과보를 얻을 수 있다. 서원을 세우기도 하고, 세우지 않기도 하지만 이치에 맞게 청정한 삶을 영위하면 과보를 얻을 수 있다. 서원을 세우는 것도 아니고, 서원을 세우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이치에 맞게 청정한 삶을 영위하면 과보를 얻을 수 있다.’라고.”
부미자 존자는 그 후 자신이 자야쎄나 왕자와 이와 같은 대화를 나눴다는 이야기와 함께, 세존에 관하여 진실을 말한 것인지, 혹시 진실이 아닌 말로 비방을 한 것은 아닌지, 진리를 말한 것인지, 아니면 진리에 관하여 여러 이론에 밝은 자가 비방할 구실을 만들어낸 것은 아닌지를 붓다께 물었다. 붓다께서 부미자 존자의 물음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 바로 ‘참깨’의 비유가 등장한다.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동시에 요리에 필수품인 참깨 기름을 붓다가 소환한 이유는, 물론 팔정도의 바른 실천에 대한 중요성을 제자에게 온전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비교적 긴 ‘부미자의 경’ 가운데, 참깨가 등장하는 부분만을 발췌하면 이렇다.
“부미자여, 서원을 세우고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을 가지고 청정한 삶을 영위하면 과보를 얻을 수 있다. 서원을 세우지 않지만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을 가지고 청정한 삶을 영위하면 과보를 얻을 수 있다. 서원을 세우기도 하고 서원을 세우지 않기도 하지만,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을 가지고 청정한 삶을 영위하면 과보를 얻을 수 있다. 서원을 세우는 것도 아니고, 서원을 세우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을 가지고 청정한 삶을 영위하면 과보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부미자여, 그것은 과보를 얻는데 이치에 맞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부미자여, 기름이 필요해서 기름을 구하고 기름을 찾아 나선 사람이 참깨를 통에 채워 물을 골고루 뿌려 압착하는 것과 같다. 서원을 세우고 참깨를 통에 채워 물을 골고루 뿌려 압착하면 기름을 얻을 수가 있다. 서원을 세우지 않더라도 참깨를 통에 채워 물을 골고루 뿌려 압착하면 기름을 얻을 수가 있다. 서원을 세우기도 하고 서원을 세우지 않기도 하더라도 참깨를 통에 채워 물을 골고루 뿌려 압착하면 기름을 얻을 수가 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부미자여, 그것은 기름을 얻는데 이치에 맞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전재성 옮김 <맛지마니까야3-3. 공의 품 ‘부미자의 경(Bhūmijasutta) 중에서.
붓다의 설법은 철저하게 최종 목적지인 열반으로 가는 길을 제자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붓다는 비유의 왕이라는 별칭을 얻었을 만큼 적절한 비유를 들어 설법을 했다.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접하는 참기름을 예로 들어 팔정도와 서원에 대해 설명을 했으니, 아마도 청법(聽法) 대중들에게는 붓다의 가르침이 귀에 쏙쏙 들어왔을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치에 맞는 방법’에 대한 붓다의 열린 견해인 것 같다. 이치에 맞는 방법이라면 서원을 세우든 세우지 않든 과보를 얻을 수 있다는 붓다의 명쾌한 입장은, 오늘날에도 종교적 도그마에 빠진 이들이 눈여겨봐야 할 가르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