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를 위하여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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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확)  

어쨌든 절터를 찾던 당대 제일선사(第一禪師) 현산 스님이 먼저 발견한 건 노랑바위에서 죽은 그녀가 아니라, 오히려 마을 윗녘 청리산 못에 떠오른 목 없는 사람들의 시체였다. 그녀는 박 서방의 무덤을 붙안고 죽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체는 사람이 아니었다. 원망스런 하늘이 그래도 그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준 탓이었다. 그녀는 커다란 늑대의 형상으로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이 마을에 정착한 사람들은 개를 키우지 않았다. 마을에서 키우는 개가 산속으로 들어가면 늑대가 된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양반집 아들이 어깨에 멨던 활 통 대신 완장을 찼었다.

전설,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떠난다면……. 아무도 이 마을에 다시 들어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정말 다시 그 전설 속 폐허의 마을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담배를 빼물었다. 연기를 내뿜으면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우리 집은 역시 불빛이 없다. 무너질 것이다. 틀림없이 아무도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누가 집을 허물어뜨리려고 하지 않아도, 버려진 햇수가 쌓이면 제풀에 겨워 돌담이 무너지고, 흙 담은 삭아 내릴 것이다. 한 마디로 흉가가 될 것이다. 이곳저곳 널린 돌무더기들, 무성한 잡초, 쥐 굴 아니면 너구리 굴이 될 집터는 원래의 형체마저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집이 무너진다고 해도 외설리 사람들은 마당에 서 있는 감나무는 절대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틀림없이 돌담 옆에 서 있는 주인 없는 감나무들만이 그 오랜 세월을 묵묵히 견뎌낼 것이다. 봄이 오면 하얀 감꽃이 피고, 지고. 

똬배 감을 따기 위해 경묵이와 함께 대강 얽은 뒷간 벼 지붕에 올라갔다가 그대로 똥통으로 추락했던 일이 있었다. 그 소란 덕분에 어른들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지만, 뒷간에 떡을 놓고 경묵이와 함께 제사를 지냈다. 뒷간에서 먹던 그 잊을 수 없는 고사떡 맛……, 그러나 지금은 이미 우리 집이 아니다.

                             **

나들이를 하고 왔다. 그러나 그 하루 동안의 일은 자세히 기록하고 싶지 않다. 영훈이와 광수. 동봉 스님이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다주었다던 그 아이들이 왜 다시 산으로 올라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스님의 눈에 눈물이 어린 것을 처음 보았다. 영훈이와 광수. 그 어린 것들이 왜 마을을 떠나야만 했을까? ‘그들이 말하는 추상같은 절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마을 사람들의 눈초리를 견디지 못한 탓일까?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스님에게 그들이 마을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청리산 이웃 갈방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그들이 이 땅에서 갈 곳은 거기 밖에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숨어 있던 아이들이 한곳에 몰려 있었다. 영훈이와 광수의 소재를 물었을 때 아이들은 멍청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찾아내기도 전에 죽어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살아서 산을 헤매고 다닐 때보다, 죽었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엔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상한 일이다. 하기야 그 아이들이 이 땅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고통이나 슬픔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밤마다의 악몽을 견딜 수 없어 『한산시』를 펼쳐 들었다.

吾心似秋月

碧潭淸晈潔

내 마음은 가을 달인가

내 마음은 맑은 물인가

날씨가 추워질수록 경묵이의 내방이 뜸해진다. 그 이유를 알고 있다. 혼자 젖먹이를 키워야 하는 어려움. 더구나 마을을 망친 ‘빨갱이 아들’을 키우는 고통.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짐승이 되는 일뿐이다. 개나 소처럼 제 새끼의 일을 모르는 체 방관하는 것이다. 

“담배를 피우려면 안쪽으로 들어가서 피워야지?”

경묵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하늘을 향해 연기를 뿜어냈다.

“여기서 내가 담배를 피우면 정말 마을에서 보일까?”

“넌 내가 마루에 앉아서 담배 피우는 걸 보잖아.”

“그건 눈으로 보는 게 아니야. 흐흐!”

맛있게 담배를 피웠다. 오랜만의 일이다. 몸이 그만큼 좋아졌는지도 모를 일. 어둠 속에서 경묵이의 눈빛도 아득히 잠기고 있었다.

“동구 밖에는 못이 있고, 미루나무가 있고, 마을이 있고, 그 마을 뒤에 또 하나의 못이 있고, 그 못을 둘러싸고 정골, 원석골, 갈골, 공골, 대공골, 샛말 죽문……, 청리산이 있고, 자네와 내가 있고. 흐흐흐!”

“들어가서 피워라. 누가 보면…….”

“정말 신고를 할까?”

“모르는 소리, 저쪽 갈방산에 숨어 있던 산사람들 전부 몰사했어. 갈방 사람들이 신고를 한 게 아니라 맞은편의 안골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를 해 군인하고 경찰이 떼로 몰려갔지. 그러고는 수류탄하고 총을 사방에서 보지도 않고 갈겨댔어. 사실 죽은 산사람이 몇인지 알 수도 없지. 온전한 시신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야. 일곱 명이라는 것은 대강 추정한 거지. 군인이나 경찰도 무서웠던 게지.”

나는 땅바닥에 담배를 비벼 껐다. 

“결국 나도 그렇게 죽겠지.”

“지금처럼 행동하면.”

“흐흐흐! 지금쯤 경찰이 오고 있는 지도 모르지. 마을에서 누군가 내 담뱃불을 봤다면……. 그러니 넌 얼른 내려가. 흐흐흐!”

“딴소리하지 말고 이야기를 해 봐.”

“무슨?”

“어디 갔다가 왔어?”

“백천사에 갔다 왔다니까.”

“미안하지만 내가 스님을 만나고 왔네. 그때 자네 안 왔다고 하두만.”

“흐흐, 이 동굴에 내가 없으니까 무섭던가. 하기야 여긴 원래 늑대 굴이지. 아니면 그 옛날 용케도 마을에서 살아남아 산으로 도망친 개들의 후손이거나……. 지금도 이 근처에서 어른거리고 있어.”

“왜 자꾸 빙빙 이야기를 돌리나? 정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서울? 아직 그 여자 만나?”

민망한 일이다. 여간해서는 그녀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는 경묵이가 오늘은 다르다. 물끄러미 경묵이를 쳐다봤다. 감추기는 하지만 표정이 쓸쓸하다. 나로 하여 처참하게 죽은 내 아내 임순이, 그는 임순이의 오라비다.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갈방산에서 죽은 인민군이라는 아이들은 모두 열한 명일세.”

경묵이의 눈빛이 불타고 있다.

“…….”

“나만 살았네.”

“그럼?”

“아이들은 죽어서라도 이북으로 올라간다고 갈방산으로 피했지. 난 이쪽으로 왔고. 그런데 앞뒤로 경찰과 군인들이 쫙 깔렸지. 갈방산 쪽으로 간 아이들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어. 붙잡힌 아이들은 모두 즉석에서 처형을 당했지. 다행히 이쪽 낙동 쪽으로 숨은 아이들은 괜찮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보은으로 넘어가는 길이 모두 막혔어. 붙잡힌 아이 하나가 자신의 목숨을 얻는 대가로 다른 목숨들을 팔아버린 거지. 열 명이 조금 넘는 아이들을 섬멸하기 위해 대대적인 토벌 작전이 벌어졌지.”

“그곳을 뭐 하러 갔었나?”

“꼭 만나볼 애들이 있어서.”

영훈이와 광수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수류탄과 총탄에 몸뚱이가 날아간 그 아이들 거의가 아직 채 스물도 되지 않았지. 개중엔 열다섯 살짜리도 두 명이나 있어.”

“이런!”

“자네는 내가 인민군인 줄 알고 있나?”

“……?”

이제 무엇을 숨기랴. 무엇이 부끄러우랴. 술을 먹지 않고도 옛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저도 알고, 나도 아는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할 수 있다. 쑥스러워서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