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를 위하여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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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확)  

해가 중천에 떴을 때야 비로소 그녀는 박 서방의 시체를 떠메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흘릴 눈물이 남았는지 눈물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그녀는 짖고 싶었다. 하늘이 무너져라 울부짖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엄연한 인간이다. 눈물 흘리는 것 또한 인간의 일임에 죽기보다 싫었지만, 눈물은 그녀의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그리고 알았다. 눈물 흘릴 일이 없기에, 하늘은 인간 아닌 다른 족류들에게는 눈물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 그것은 인간만이 그렇게 눈물 흘릴 일이 많다는 것임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그 불빛 아래에서 인간들이 흘리고 있는 눈물을 몰랐던 것이다.

그녀는 박 서방의 시체를 닦고 또 닦았다. 깨끗한 옷을 입혔다. 그리고 자신과 박 서방이 베개를 맞대고 누웠던 그 이부자리 위에 곱게 뉘었다. 그 앞에는 맑은 물그릇 하나. 그녀는 인간이 하는 법도대로 쉴 새 없이 합장을 하였다. 그녀는 물 한 모금 넘기지 않고, 한날한시도 눈을 붙이지 않았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고 난 다음, 그녀는 박 서방의 시체를 메고 청리산으로 올라갔다. 평생을 쓸쓸하게 살았던 박 서방. 마음 같아서는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동구 밖에 묻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박 서방을 다시 그 몹쓸 인간들의 틈바구니 속으로 들여보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윗못 옆 노랑바위 밑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인간의 다른 망자들보다 몇 배나 커다란 봉분이 만들어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당을 쓸고, 방을 치우고, 박 서방과 자신이 쓰던 모든 물건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당연히 집 주변에는 박 서방이 겨우내 마련했던 마른 장작들을 골고루 쟁여 놓았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저녁때가 되었다. 그녀는 등잔불을 세 번 깜빡거렸다. 양반집 아들이 얼굴에 한껏 미소를 달고 번개처럼 달려왔다.

“아니, 아이는 어떻게 했소?”

“친정집에 보냈어요. 애비 없는 자식……, 나도 내 팔자가 있는데.”

“그럼, 그럼. 애비 없는 자식 키워야 뻔한 노릇이지. 더구나 이런 산중에서……, 흐흐흐!”

그녀는 쌩긋 웃었다. 양반집 아들은 예상보다 빠른 그녀의 민첩한 행동에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고 지껄이고 있었다. 그러고는 노골적으로 몸을 붙여왔다.

“여기서 그럴 수는 없어요. 아시겠지요. 박 서방 생각이 나서…….”

눈치 빠른 양반집 아들도 그녀의 말뜻을 재빠르게 알아들었다. 그는 여전히 입가에 비릿한 웃음을 날렸다. 그녀도 요염하게 웃어 주었다.

“애를 낳고도 전혀 표가 안 나니 자네는 정말 보통 아낙이 아니야. 특별한 무슨 비결이……, 흐흐흐! 어쨌거나 그럼, 어디서? 나는 아무 곳에서나……, 흐흐흐!”

“보아둔 곳이 있어요.”

“어디?”

“윗못.”

순간 양반집 아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졌다. 그녀는 그 얼굴을 쳐다보면서 웃었다.

“어때요? 이 좁은 집보다는 못가가 훨씬 좋지요. 더구나 오늘은 서방님과 첫 밤인데……, 아무려면 역시 가을밤은 물가가 제일 좋지요.”

그녀는 교태 넘친 웃음을 연신 날렸다. 처음에는 미심쩍은 얼굴을 하던 양반집 아들의 얼굴이 점차로 펴지고 있다. 그녀를 보는 그의 눈빛에 점점 불꽃이 일고 있다.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도 세찬 불꽃이 일고 있다. 그것이 양반집 아들을 미치게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곳은……, 될 수 있으면 이 근처에서…….”

“잘못해서 남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흐흐흐, 좋지 좋아. 어디면 어때. 자네 마음이 정 그렇다면, 흐흐흐!”

그녀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양반집 아들을 앞장세우고 윗못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박 서방이 묻힌 노랑바위 아래편를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눈물이 남았는지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그 눈물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눈물은 웬 눈물?”

“다시 팔자를 고친다는 생각을 하니…….”

“하기야……. 대범하기는 해도 자네도 아낙이니까. 그렇지만 앞으로는 걱정하지 말게. 자네한테는 내가 있잖나. 이제는 이 험한 산중에 살 필요 없어. 흐흐흐!”

“그럴까요?”

“아암, 암. 자아, 이제 다 끝났어. 흐흐흐!”

양반집 아들은 정신없이 못 가에 앉아 코를 벌름거리고 있었다. 여전히 눈이 시리도록 파란 물. 그녀는 양반집 아들 옆에 바짝 다가앉았다. 서편으로 핏빛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녀는 설핏 그 노을 뒤에 숨은 박 서방의 슬픈 얼굴을 본 것 같았다.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는 그 어정쩡한 모습을. 나란히 앉은 그녀와 양반집 아들 옆엔 죽은 박 서방을 묶고 있던 그 새끼줄과 돌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렇지만 양반집 아들은 그것들을 보지 못했다. 그의 눈엔 그녀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꼴딱 해가 떨어지기 전에 그녀를 안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녀는 살며시 새끼줄을 움켜잡았다. 양반집 아들의 입이 양쪽으로 찢어지고 있었다.

“흐흐흐, 자아 이리로!”

그러나 양반집 아들의 웃음은 이어지지 못했다. 새끼줄을 들고 있는 그녀의 눈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인간의 눈빛이 아니었다. 파랗게 빛나는 그녀의 눈빛을 본 양반집 아들은 그만 뒤로 벌렁 자빠지고 말았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박 서방을 묶은 새끼줄과, 분명히 물속에 빠뜨린 돌을 보았던 것이다. 그녀의 진짜 눈빛을 보았던 것이다.

“이게 뭔 줄 아느냐?”

“너는?”

양반집 아들의 안색이 납빛으로 변했다.

“나는 인간이 아니야. 더러운 인간이 아니야!”

그녀는 새끼줄을 입에 물었다.

“아, 아!”

양반집 아들의 입에서 두려움에 떠는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호호호! 네놈이 내 남편을 빠뜨려 죽였던 이 물, 내 남편을 묶었던 이 새끼줄, 그리고 내 남편을 물속에 처박았던 이 돌, 이것을 고스란히 너에게 되돌려주마!”

“그럼, 너는……?”

양반집 아들은 온몸을 떨었다.

“그래, 나는 늑대다! 이 버러지만도 못한 놈아!”

“아, 아!” 

양반집 아들이 달아나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날쌘 몸매가 그의 목덜미를 향해 내리꽂혔다. 바람보다도, 화살보다도 더 빠르게.

“으흑!”

양반집 아들의 비명과 동시에 그녀의 흰옷으로 피가 튀었다. 그녀의 이빨이 양반집 아들의 목덜미 심줄을 그대로 뜯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입에 물린 그 살점들을 질겅질겅 씹어 못 가로 뱉어 버렸다. 양반집 아들은 잠깐 버둥거리다가 금방 숨을 놓고 말았다. 시퍼렇게 두 눈을 뜬 채로 처참하게. 그녀는 아주 익숙하게 양반집 아들의 몸을 박 서방의 죽은 몸을 묶었던 새끼줄로 묶었다. 그리고 그 새끼줄에다가 박 서방을 가라앉혔던 그 돌을 다시 달았다. 그러나 그녀는 죽은 양반집 아들의 시체를 연못으로 던지려다 말고, 무슨 생각을 했음인지 웃으면서 새끼줄에 매달린 돌을 떼어버렸다. 그리고 죽은 양반집 아들의 시체를 들쳐 맸다.

“흐흐흐!”

흰옷에 피 떡칠을 한 그녀가 양반집 아들의 처참한 주검을 매고 마을에 나타난 건 이른 새벽이었다. 그녀는 마을 중앙 동사에 양반집 아들의 시체를 훌쩍 던져두고는 산속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한 집 한 집, 외설리의 모든 인간들을 죽여줄 것이다.” 그때부터 그녀의 살생이 시작되었다. 번개보다 빠른 솜씨. 목을 물어뜯어 죽이는 잔인한 수법. 사람들은 하나 둘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고, 그래도 조상이 물려준 땅을 버릴 수 없어 끝까지 마을에서 버틴 인간들은 모두 죽임을 당해야 했다. 그녀는 외설리에 남아 있는 모든 인간들을 쫓아냈고, 물어 죽였다. 마을은 아무도 살지 못하는 폐허가 되어 갔다.

마침내 피의 시간들이 모두 끝난 뒤, 그녀는 웃 못 노랑바위 아래 박 서방의 무덤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몇 날 며칠, 그녀는 그 벌건 무덤을 껴안은 채 서서히 죽어갔다. 그녀의 피눈물이 웃 못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뒤로 웃 못은 늘 붉은빛을 띠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