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으로 읽는 불교
“단호하고 확고하며 강인함을 상징”
이 학종 2023-04-14 (금) 08:02
문자풀(muñjamāyā)은 갈대의 일종으로, 한역에서는 문사초(文邪草)로 옮겼다. 또 문야초(文若草)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 문야(文若)는 산스크리트어 muñja의 음사이다. 얼핏 보면 벼와 비슷한 풀로, 앉거나 눕기 위한 자리를 만드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불전에 등장하는 문자풀은 단단하고, 견고하며 확고한 것을 비유할 때 주로 등장한다. 따라서 어떤 제안이나 유혹을 단호히 거부하고 확고한 의지를 천명할 때, 문자풀이 주로 설법의 소재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불교계의 파워블로거로 널리 알려진 이병욱 선생(법명 담마다사)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경 외우기에 문자풀을 걸치고자 한다. 부처님처럼 자신과 한판 싸워 보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 경전을 빠알리어로 외우는 것을 원력으로 삼은 그의 심경을 문자풀의 강인함과 견고함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그는 ‘정진의 경’이라는 게송이 25개나 되는 긴 경을 외우기에 앞서 문자풀을 떠올렸던 것이다.
문자풀은 브라만들의 베다 의식에도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다. 인도의 옛 법전으로 주로 브라만교에서 사용하는 ‘다르마샤스트라’ 문헌에 따르면, 문자풀은 꼬인 띠의 형태로 브라만의 휘장의 일부를 구성한다고 한다.
(사진=India Biodiversity Portal)
문자풀은 경전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 <숫타니파타> ‘정진의 경(padhānasutta)’(Sn.3.2)에 등장하는 시구가 대표적이다.
“차라리 나는 문자풀(muñjamāyā)을 걸치겠다. 이 세상의 삶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 내게는 패해서 사는 것보다는 싸워서 죽는 편이 오히려 낫다.”(Stn.440)
얼핏 거칠 것이 없는 대장부가 읊었을 법한 시구로 들린다. 그런데 이 게송이 붓다의 게송이다. 붓다께서 악마의 군대와의 싸움에서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인 것이다. 이 게송에서 ‘문자풀을 걸치겠다.’는 항복을 거부한다는 의미이다. 주석에 따르면, “군인들은 전쟁터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머리둘레나 깃발이나 무기에 문자풀을 묶었다.”(Prj.II.390)는 표시를 했다. 고대 인도에서는 문자풀을 항복의 표시로 입에 물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이 게송에서는 문자풀을 입에 물지 않고 머리둘레나 무기에 묶음으로써 결코 마라에게 항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밝힌 것이다.
‘정진의 경’은 아난다 존자가 설한 ‘출가의 경(Pabbajjāsutta)’에 이어서 붓다의 설법을 담은 경이다. ‘출가의 경’에서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등 위대한 제자들의 출가는 알려져 있다. 수행승들이나 재가자들이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세존의 출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내가 그것을 밝혀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제따와나에서 자리에 앉아 총채를 들고 수행승들에게 세존의 출가를 밝히기 위해 ‘출가의 경’을 읊었다. ‘출가의 경’에서는 세존이 출가 후 라자가하로 가서 탁발을 할 때 만난 마가다 국의 빔비싸라 왕의 ‘코끼리의 무리가 시중드는 위풍당당한 군대를 정렬하여 당신께 선물을 드리니 받으십시오.’라는 제안을 거절하는 내용이 나온다. 세존은 자신은 감각적 욕망을 구하지 않고 출가했음을 밝힌 뒤 ‘감각적 욕망에서 재난을 보고, 그것에서 벗어남을 안온으로 보고 나는 정진하고자 한다. 내 마음은 이것에 기뻐하고 있다.’고 빔비싸라 왕에게 밝히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진의 경’은, 존자 아난다가 ‘여기 내 마음이 물들었으니 정진해야겠다.’라고 ‘출가의 경’을 끝내자, 제따와나의 향실(香室)에 머물고 있던 붓다가 ‘나는 6년간이나 정진하며 고행을 했는데, 오늘 수행승들에게 이야기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향실에서 나와 자리에 앉아 용맹정진에 관해 설한 경이다. 앞에서 소개한 ‘정진의 경’의 한 시구는 고행을 끝내고 네란자라 강의 기슭에서 멍에로부터의 평안을 얻기 위해 힘써 정진하는 사문 싯다르타에게 악마 나무치(Namucī)가 다가와 온갖 감언이설로 정진을 중단할 것을 회유하는 데 대해 싯다르타가 반박한 내용이다. 싯다르타는 이 시구를 읊기에 앞서 악마 나무치에게 이렇게 말한다.
“방일의 친척이여, 악한 자여, 어떠한 목적으로 이 세상에 왔는가? 털끝만큼의 공덕을 이루는 것도 내게는 필요가 없다. 공덕을 필요로 하는 자, 그들에게 악마는 말해야 하리라. 내게는 믿음이 있고, 정진이 있고, 내게는 또한 지혜가 있다. 이처럼 스스로 노력을 기울이는 나에게 그대는 어찌하여 삶의 보전에 관해 묻는가? 이러한 정진에서 오는 바람은 흐르는 강물조차 마르게 할 것이다. 스스로 노력을 기울이는 나에게 피가 어찌 마르지 않겠는가. 몸의 피가 마르면, 쓸개도 가래침도 마를 것이다. 살이 빠지면, 마음은 더욱더 맑아지고 나는 새김과 지혜, 그리고 집중에 든다. 나는 이와 같이 지내며 최상의 감수를 느끼고 있으므로, 내 마음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기대가 없다. 보라, 존재의 청정함을! 그대의 첫 번째 군대는 욕망, 두 번째 군대는 혐오라 불리고, 그대의 세 번째 군대는 기갈, 네 번째 군대는 갈애라 불린다. 그대의 다섯째 군대는 권태와 수면, 여섯째 군대는 공포라 불리고, 그대의 일곱째 군대는 의혹, 여덟째 군대는 위선과 고집이라 불린다. 잘못 얻어진 이득과 환대와 예배와 명성, 그리고 자기를 칭찬하고 타인을 경멸하는 것도 있다. 나무치여, 이것들은 그대의 군대, 검은 악마의 공격군인 것이다. 비겁한 자는 그를 이겨낼 수 없으나 영웅은 그를 이겨내어 즐거움을 얻는다.” -전재성 옮김
<숫타니파타> ‘다니야의 경(Dhaniyasutta)’의 한 시구에서도 문자풀은 강인한 줄로 표현되고 있다. ‘다니야 경’은 붓다가 사왓티에 머물 때 마히 강변 언덕에 살면서 소를 치는 다니야에 대해 설한 연작시 형식의 경이다. 오랜 전생부터 공덕을 지은 다니야는 사끼야(석가모니) 붓다 시대에 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3만 마리의 황소와 2만 7천 마리의 소에서 젖을 짤 정도로 대단한 부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치는 일은 우기에는 고지대에, 우기가 아닌 다른 8개월은 풀이나 물을 쉽게 얻을 수 있는 하천변이나 호숫가에 머물러야 했다. 다니야는 새와 게의 움직임을 통해 우기의 징조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늘 완벽하게 대비할 수 있었다. 폭우에 대한 대비를 완벽하게 끝내고 난 후 여유롭게 시구를 읊는 다니야의 노래 소리를, 붓다는 700요자나 거리에 떨어져 있는 사왓티 시에서 듣고 신통력으로 다니야의 처소에 몸을 나투었다. 붓다는 다니야가 읊는 노래에 각각 댓구(對句)가 되는 시구들을 첨가했다. ‘다니야 경’은 이렇게 열두 개의 시들이 다니야의 노래와 붓다의 시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다니야가 농경생활의 유익함을 노래하면 붓다께서 유사한 유형으로 자신의 명상적 삶의 탁월성을 노래했다. 그 가운데 11번째와 12번째 시에 문자풀이 등장한다.
[소치는 다니야] “말뚝은 땅에 박혀 흔들리지 않고, 문자풀로 만든 새 밧줄은 잘 꼬여 있어,
젖을 먹는 어린 소가 끊을 수 없을 것이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세존] “황소처럼 모든 속박들을 끊고, 코끼리처럼 냄새나는 넝쿨을 짓밟아, 나는 다시 모태에 들지 않을 것이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전재성 옮김
다니야의 시를 볼 때 문자풀 줄기를 꼬아 만든 밧줄은 매우 견고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다니야와 붓다의 댓구(對句)가 끝나자 다니야와 아내와 두 딸이 진리의 흐름에 든 님(수다원, 예류자)가 되었고, 그 자리에서 붓다와 붓다가 이끄는 승단에 귀의했다.
<디가니까야> ‘인연의 큰 경(Mahānidānasutta)’에도 문자풀이 법문의 소재로 나온다.
[아난다] “세존이시여, 이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는 얼마나 깊고, 얼마나 심오하게 출현하는지 세존이시여,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예전에 없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아주 명백한 것으로 보입니다.”
[세존]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이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는 깊고 심오하게 출현한다. 아난다여, 이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꿰뚫어 보지 못하면, 이와 같이 이 뭇 삶들은 실타래에 묶인 것과 같이, 문자풀에 엉킨 것같이 괴로운 곳, 나쁜 곳, 비참한 곳 지옥의 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
아난다가 열반을 성취한 이의 경계에 속한 것을 스스로 명백한 것이라고 말하자 붓다께서 ‘자, 아난다에게 심오한 것을 가르쳐 주자’라고 생각하여, 칭찬하면서도 또한 경계하기 위하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말한 후, ‘그대는 커다란 지혜를 가지고 있고 명료한 지혜를 가지고 있어 심오한 연기를 명료하게 보지만,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깊고 심오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암시한 것이다. 연기를 꿰뚫어 보는 지혜가 없는 자는 문자풀에 엉킨 것같이 괴롭다는 비유는 문자풀이 어떤 특징을 가진 풀이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디가니까야> ‘수행자의 삶의 결실에 대한 경(sāmañña-phala sutta)’에 등장하는 문자풀의 비유는 삼매에 들어 마음이 청정해지고 고결해져 전혀 다른 차원의 몸이 만들어진다는 설법의 소재로 등장한다.
이 경은 붓다가 라자가하 시에 있는 지와까 꼬마라밧짜의 망고 숲에서 천이백오십 명의 수행승들과 함께 머물고 있을 때, 지와까 꼬마라밧짜의 권유를 받고 안온을 얻기 위해 찾아온 마가다 국의 왕 아자따쌋뚜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붓다는 이 자리에서 6사 외도의 주장의 허구를 논리적으로 반박한 뒤 현세에서의 수행자의 삶의 결실에 대해 설법한다. 붓다는 이 경 가운데 ‘지혜의 다발’에 대한 설법 가운데 두 번째 ‘정신으로 이루어진 몸에 대한 앎’을 설명하면서 문자풀을 소환한다.
“…대왕이여, 그 수행승은 이렇게 마음이 삼매에 들어 청정해지고 고결해지고 티끌 없이 오염을 여의어 유연해지고 유능해지고 확립되고 흔들림 없게 되어, 정신으로 이루어진 몸의 창조에 마음을 지향하게 하고 기울게 하여, 이 몸으로부터 형상을 갖추고, 정신으로 만들어지고, 모든 사지를 갖추고, 감관이 결여되지 않은 다른 몸을 만듭니다. 대왕이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문자풀에서 갈대를 뽑아 이와 같이 ‘이것이 문자풀이고 이것이 갈대이다. 문자풀과 갈대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문자풀에서 갈대가 뽑혀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
요즈음 산길이나 산책로 등에 많이 깔려 있는 야자매트를 보면, 천연재료로 만든 물건도 아주 단단하고 내구성이 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야자매트의 수명이 적어도 5~6년은 간다니 그 질김과 견고함이 놀랍다. 문자풀에서 갈대를 뽑아 만든 밧줄도 매우 강했던 모양이다. 그 밧줄이 얼마나 견고했으면, 붓다는 지옥의 괴로움을 문자풀에 얽힌 것으로 비유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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