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칼보다 강하다

                                                          정찬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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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정윤경

연못으로 들어오는 수로의 막혔던 물길이 트였다. 개구리들이 가장 반긴다. 밤에 개구리 노랫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연못에 물이 차니 무언가 풍성하게 보인다. 한 뿌리에 두 개의 가지를 뻗은 불이송(不二松)의 그림자가 물 위에 어려 있다. 원래는 봉화에 사는 경상도 분이 영호남 화합의 상징물로 승합차에 싣고 와 이식한 작은 소나무였는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는 기품 있는 이불재 수호신이 된 것 같다.

문득 중국 선종 6조 혜능대사의 스승인 5조 홍인대사가 생각난다. 홍인은 전생에 소나무를 기회되는 대로 심은 공덕으로 재송도인(栽松道人)으로 불렸으며, 4조 도신대사의 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깊이 모르겠으나 소나무를 사랑했다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홍인만의 자비심 발현이 아니었을까. <열반경>에 '자비심이 여래'란 구절이 있는데, 일맥상통하는 사연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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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무변한 우주와 내가 대면하는 가장 사랑하는 시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의 신성하고 거룩한 새벽빛.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 속의 새벽빛에 감싸인 이불재.

오늘은 잠자는 아내를 깨워 북두칠성을 보여주었다. 뜬금없이 북두칠성을 선물하는 것도 산중생활의 특권(?)이 아닐까 싶다. 옛사람은 눈을 감는 순간 북두칠성 자리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그래서 칠성판이 관 위에 올려졌을 터이다. 눈을 뜨는 시간에 북두칠성을 본 나는, 눈을 감는 시간에도 북두칠성 자리로 귀향(歸鄕)하듯 돌아가고야 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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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재 마당가에 홍매, 백매, 청매의 꽃봉오리가 부풀어 오르고 있다. 홍매와 백매는 꽃이 이미 서너 개 피어 있다. 청매는 개화의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 꽃은 이때가 가장 좋은 것 같다. 꽃이 활짝 피어버리면 꽃의 혼(魂)이 달아나버린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람도 만나기 전이 더 좋을 때가 많다. 만나고 나서 그가 쏟아내는 말과 지식, 자기주장 등을 듣고 나면 혼이 달아나버린 그와 함께 있었던 듯해서 씁쓸할 뿐이었던 것이다.

청매는 꽃은 푸른빛이 도는 흰색이고 꽃받침은 푸르며, 백매는 붉은빛이 도는 흰색이고 꽃받침은 붉으며, 홍매는 붉은 빛깔의 꽃이 피고 꽃받침도 붉은 것이 특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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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늘 단속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안다는 것을 압축기에 넣고 가동시킨다면 그 분량은 얼마나 될까? 추측이긴 하지만 내가 봐도 부끄러울 정도로 소량일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나는 내가 안다고 하는 것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경거망동하지는 않았는지 지금 이 순간 오싹해진다. 내가 모르는 미지의 것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더욱더 침묵하고 겸손해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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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증오와 탐욕, 폭력과 조롱 등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에 사로잡힌 이들의 맹독(猛毒)을 씻겨주는 고마운 존재들이 많다.

삿된 것들을 해독시키는 꽃도 그중에 하나이다. 그러므로 꽃은 칼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강하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다움의 궁극은 강함이 아닐까. 나는 이불재의 진달래, 자두나무꽃, 목련꽃들에게서 강함을 본다. 세계 4대 성자로 불리웠던 틱낫한 스님은 꽃을 보고 미소 짓는 순간에는 누구나 붓다가 된다고 말했다. 붓다가 되게 하는 꽃이 얼마나 강한지, 꽃의 힘을 사유한 틱낫한 스님의 지당한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