蓮이를 위하여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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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커먼 산 그림자가 청리산의 봉우리를 덮을 때쯤 ‘어둠의 무리’라고 불리는 늑대들은 그들의 소굴 백천 동굴에서 빠져나와 모두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들의 눈은 새파랗게 반짝이고 있다. 그들이 모두 그렇게 마을을 내려다본 것은 처음이다. 그들이 모두 함께 그렇게 울부짖은 것도 처음이다. 

 그렇지만 일곱 마리의 무리 중 여섯 마리는 영문을 알지 못한다. 왜 오늘은 이렇게 마을을 내려다보아도 좋은지, 그리고 암늑대의 얼굴에서 비치는 저 당당한 모습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암늑대는 자신에 찬 모습으로 자신들의 무리를 훑어보고 있다.

 이 ‘어둠의 무리’는 다른 늑대 집단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다른 늑대들이야 두목이 수컷이었지만 ‘어둠의 무리’는 그 반대이다. 암늑대가 두목이고, 수늑대는 부두목격이다. 모든 중요한 명령은 암늑대의 몫이다. 새끼들을 안전하게 키우고, 뒷바라지를 하는 것은 오히려 수늑대였던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저 아름다운 불빛이 반짝이는 인간의 마을, 암늑대는 모든 가솔들을 거느리고 처연하게 눈이 내리는 인간의 마을을 넋 나간 듯 한참 동안 내려다보고 있다. 너무도 조용한 마을, 반짝반짝! 등불 빛. 저 불빛 속의 인간이 되기 위해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그 수많은 세월을. 

 드디어 암늑대의 마지막 사냥 명령이 떨어졌다. 인간이 되기 전에 가솔들과 사냥을 하고 싶었다. 하늘로부터 받은 늑대의 마지막 본분을 다하고 싶었던 것이다. 암늑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송이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이 사냥을 끝으로 자신은 인간의 마을로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늑대의 모습이 아니라 엄연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리나무와 굴참나무, 갈참나무와 잣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경사지를 넘었다. 외설리 윗못으로 가는 길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인간 마을 근처로. 암늑대의 가슴은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암늑대는 쌓인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재차 다짐했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회색빛의 커다란 수늑대는 이들보다 얼마쯤 떨어져서 주위를 살피며 이들의 행렬을 따랐고, 대열 첫 번째 자리에는 강하게 곧추세운 꼬리만으로도 대장으로서의 지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회색 암늑대가 걷고 있다.

 두꺼운 가슴에 강인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지닌 이 암늑대는 평범한 동물이 아니다.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짐승이었다. 인간이 되기 전 까진 절대로 인간을 만나지 않아야 한다는 하늘의 절대 수칙을 무려 수십 년 이상 지키면서 살아온. 

그 덕에 이 어둠의 무리들은 수많은 짐승들이 인간들에게 쫓겨 이 땅을 떠났거나 죽임을 당했음에도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철저하게 인간 세계와 단절해야 한다는 ‘어둠의 무리’만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 규칙 때문이었다. 암늑대는 어느 누구든 정한 범위 이상으로 인간 세상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것을 어기는 일원은 처참하게 물어 죽였다. 오직 인간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암늑대뿐이었다. 물론 그것도 일 년에 한두 번이 고작이었다. 그렇지만 암늑대는 인간 세상의 일을 누구보다도 잘 꿰고 있었다. 좁은 청리산에서 ‘어둠의 무리’가 살아남은 것은 바로 두목인 암늑대의 탁월한 통찰력 때문이었다. 암늑대는 청리산 밑의 외설리 마을 속속을 알고 있었다. 어느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까지.

 깊디깊은 주왕산에서 살던 그들의 선조가 이곳 외설리 근처의 청리산에 온 것은 순전히 인간들 때문이었다. 쉴 새 없이 퍼부어 대는 화살을 피해 주왕산만큼 깊지는 않지만 내륙 깊숙이 자리 잡은 청리산을 택했던 것이다. 의당 처음에는 백천 동굴에 살던 강력한 ‘백천 무리’와의 일전이 있었다. 그들은 채 열 마리도 되지 않는 소집단으로 무려 삼사십 마리가 넘는 거대 ‘백천 무리’를 무참하게 격침시켰던 것이다.

 그것은 기습 작전이었다. 인간들의 전쟁과 별개로 백천 동굴에서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던 ‘백천 무리’는 오직 생존을 위해서 눈에 핏발이 선 주왕산 ‘어둠의 무리’들을 이겨낼 수 없었다. ‘어둠의 무리’는 ‘백천 무리’를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죽여 없앴던 것이다. 

 그 이후로 외설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 늑대가 전쟁통에 사라졌다고 했다. 밤이 되면 울부짖던 그들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어둠의 무리’는 절대로 울부짖지 않았다. 멋모르고 울부짖던 몇 마리의 늑대가 당시 무리를 이끌던 암늑대 두목에 의해 무참하게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지금의 ‘어둠의 무리’는 대대로 암늑대가 두목이었다.

 그들의 첫째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들과의 결연이 가장 중요했다. 대대로 두목의 소임을 맡은 암늑대는 무엇보다도 인간들의 눈을 피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인간들에게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늑대들은 무참한 죽음으로 응징했다. 그럼으로 해서 그들은 살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이지만.

 그리고 지금의 두목인 암늑대는 그들 무리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의 숫자는 거의 정확하게 열 마리 이내로 제한되어 있었다. 자신이 임신을 해서 새끼를 낳더라도 그 마리 수가 넘으면 가차 없이 죽여 없앴다. 그래서 그들의 숫자는 언제나 열을 넘어서지 않았다.    

 암늑대는 가솔들과 함께 정골에 위치한 노루목을 찾아가고 있었다. 예전보다는 풍부한 먹이, 인간들의 산 출입이 뜸해졌던 것이다. 나무꾼도 없었다. 밤낮으로 뭉텅 나무를 잘라가던 나무꾼들의 출입이 없어지자 산은 자연스럽게 우거졌다. 어느 때부터인가 산 밑 마을의 인간들은 자신들끼리의 전쟁으로 나무를 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마을이 폐허가 된 덕분에 자연스럽게 토끼는 물론이고, 노루와 멧돼지들의 숫자가 늘어났고, 인간들의 눈을 피하는 것 자체가 쉬웠다. 어쩌다가 산밭을 일구는 아낙네들이나 죽은 인간들의 무덤을 돌보는 사람들만이 간간이 산을 찾았던 것이다. 그것은 그들 무리에게 더할 수 없는 행운을 안겨주었다.

 그렇지만 점차로 세상이 달라지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자취를 감춘 사냥꾼들이 청리산을 들락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잠시이기는 하지만 인간 마을에 평화가 찾아온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암늑대가 그 오랜 세월을 기다리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인간이 될 수 있는 시점은 아무래도 인간 세상이 가장 평화로운 때를 택해야 했던 것이다. 

 그들은 여간해서는 낮에 행동하지 않았다. 일단 백천 동굴을 벗어나면 비교적 눈에 띄기 쉬운 오리나무숲이나 굴참나무숲은 피했다. 산 깊숙한 지점의 싸리나무 풀섶이나 가시덤불 속에 여럿의 은신처를 마련하고 있었다. 그들도 멧돼지들처럼 어느 정도 땅을 파고 그곳에서 일 년의 반을 보낼 때도 있었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노루목 정상에서 암늑대는 몸을 한껏 낮춘 자세로 인간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암늑대의 자세에 맞추어 그를 따르던 일행이 일제히 몸을 숙였다. 잘 훈련된 몸짓이다.

 노란 곡식 대신 눈으로 가득 들어찬 들판, 때로 연기가 오르는 굴뚝, 멀리 동구 밖 연못이 한눈에 들어왔다. 외설리에는 동구 밖에 하나, 청리산 밑에 또 하나의 못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못을 윗못, 아랫못으로 불렀다. 그는 가볍게 꼬리를 흔들었다. 다시 그들은 정골을 향해 전진했다. 노랑바위가 있는 윗못의 위편, 밤나무가 많은 곳이었다.

 당연히 다람쥐나 토끼가 지천인 셈. 그러나 문제는 인간이다. 그런 일은 자주 없었지만 혹 부지런한 나무꾼이나 숯 굽는 인간들과 맞닥뜨린다면 그것으로 인간이 되고자 하는 소망도 끝장이 난다는 걸 누구보다도 암늑대는 잘 알고 있다.

 다행히 정골 근처에는 인간이 없었다. 서서히 행동을 개시했다. 두 마리가 윗못 근처로 가고, 두 마리는 노루목 아래켠을 지키고, 수늑대와 암늑대는 그 중간 지점에서 서서히 풀섶을 훑어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발자국 소리에 놀란 토끼 다람쥐들이 당황해서 뛰고 있다. 노루목 정상을 향해 죽으라고 달아나지만 그곳에 버티고 선 또 다른 ‘어둠의 무리’에게 꼼짝없이 죽어야 한다. ‘어둠의 무리’가 이번 사냥으로 수확한 먹이는 노루 한 마리와 토끼 두 마리다. 

 여름에 비하면 너무도 풍족한 수확이었지만 일곱 마리 늑대들이 며칠의 허기를 채우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둠의 무리’는 이곳 윗못으로 내려오기 위해 벌써 일주일 이상을 망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번번이 눈에 띄는 인간들로 하여 사냥을 포기해야 했었다.

 모두 허겁지겁 노루와 토끼의 살과 뼈로 허기를 채웠다. 입언저리에는 노루와 토끼의 붉은 피가 얼룩졌다. 그러나 두목인 암늑대는 먹이에 손을 대지 않았다. 암늑대는 배를 채우기에 급급한 식솔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노루와 토끼의 뼈까지 모두 먹어치우는 새끼들을 눈에 넣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새끼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산산 골골을 떼를 지어 다니고 싶었다. 그러나 암늑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수는 없다. 청리산에서 내려다 본 인간의 불빛, 그것은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암늑대는 마음이 흔들릴 때면 인간의 불빛을 생각했다. 오직 인간이 되겠다는 열망으로만 가슴을 채웠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