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정암사 (3) 

자장각

자장각은 네 개의 주춧돌, 네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단칸짜리 맞배지붕 집으로, 정암사를 창건하신 자장 스님의 영정을 모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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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라는 단어는 지혜가 훌륭하고 복덕을 지닌 보살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스님께서 이러한 대지문수보살마하살 뵙기를 오매불망하신 것은 신라국 대국통으로서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여겨집니다. 그런 분이 문수보살께서 자신의 바로 앞에 현신하셨는데도 알아보지를 못했으니, 얼마나 크게 상심했을까요. 그렇지만 스님은 희망을 잃지 않으십니다. 

그 까닭은 스님께 범승에게 들은 “문수보살께서 갈반지에서 만나자”는 말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때문입니다.

어느 날, 정암사에 헐어빠진 가사를 입은 늙은 거사가 칡으로 짠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와서 자장 스님 만나기를 청합니다. 스님을 부르는 큰소리에 일주문까지 달려간 시봉은 보잘것없는 거사가 괘씸했을 겁니다. 시봉은 대국통을 모시는 우쭐함에 취해 나름의 거드름을 부리며 거절했지만 ‘웬 말이 그리 많으냐. 어서 가서 내가 자장을 만나러 왔다고 일러라’라는 강경함에 밀려, 스님에게 그대로 옮깁니다.

스님께서 대수롭지 않게 ‘잘 타일러서 보내라’하시자, 일주문으로 달려간 시봉은 오가며 더 커진 언짢음을 담아 소리칩니다. 

‘얼른 돌아가시오. 스님이 뉘신 줄 알고 . . .’  

그러자 ‘아상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보겠느냐’ 하면서 거사가 삼태기를 쏟아내자 죽은 강아지가 땅에 떨어지면서 큰 사자보좌로 변했고, 거사는 사자를 타고 허공으로 사라집니다.

시봉은 기절할 듯 놀랐고, 자초지종을 들은 스님은 탄식합니다. 

“나의 아상이 문수보살 친견을 막았구나. 나의 수행이 헛것이라니” 하며 방문을 뛰쳐나갔으나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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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각에서 내려다 보이는 정암사 전경 

사진 중앙에 팔작지붕집이 적멸궁, 적멸궁 뒤쪽 산기슭에 수마노탑은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중생이 상(相)을 가지면 “나”라는 집착을 갖게 되고, 상을 지녔다면 보살이 아니다’는 가르침을 언제부터인가 놓고 계셨는가 봅니다.

그 찰나에 스님은 범승을 만났을 당시 물었던 ‘문수보살께서 만나시겠다는 그때가 언제인가’에 대한 답변, ‘그것은 스님이 선정에 들어 관해 보시면 알 것입니다’가 퍼뜩 떠올랐습니다. 스님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육신으로는 문수보살을 만날 수 없어서 이곳에서 입정에 들어, 만나 뵙고 참회할 것이다’하시고, 바위에 앉아 입정에 들어가십니다.

스님은 세상과의 인연을 끝내는 순간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하였다는 참회의 모습을 보여주어, 제자들에게 타산지석이 되었습니다. 자장각은 정암사 경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에 자리 잡았습니다. 내려다보이는 어느 곳이 스님께서 입정하신 곳일까 궁금해졌습니다.

극락교

정암사 어디서 건 휘휘 둘러보면 ‘산이 높아야 골이 깊다’는 속담이 진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암사 골짜기 한쪽에는 이제까지 본 법당들이 자리하였고, 다른 쪽에는 적멸궁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수마노탑이 있습니다. 

깊어진 골은 계곡을 이루었고, 계곡의 급한 경사를 타고 내려온 물은 불자들의 번뇌를 단번에 씻어주려는 듯 시원한 소리를 내며 흘러내립니다. 겨울임에도 눈이 녹아 내려오는 물의 분량이 많으니, 저쪽으로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있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다리의 이름은 극락교. 다리 저쪽에 극락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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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곳에서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면 극락이라고 하는 세계가 있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다리 건너편이 극락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룩하신 이곳(불국토)에서 시방세계의 여러 부처님이 세운 많은 불국토를 지나야 극락세계가 있다는 때문입니다. 

그러하니 다리를 건너 밟는 땅은 서방 극락정토가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국토입니다. 

부처님께서 보살들에게 불국토를 말씀하실 때, 사리불은 ‘보살이 뜻을 청정히 하고, 청정한 뜻으로 행을 짓지 않아서 이 불국토가 청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즉시 그 마음을 알아채시고는 ‘청정하지 못하다고 보는 것은 너의 잘못이다. 여래의 불국토가 청정하게 장엄 되었음에도 지혜가 없어서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뒤이어 발가락으로 땅을 누르시자, 사리불이 그때까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온갖 보배로 장엄된 불국토가 드러납니다. 뒤이어 사람의 뜻이 청정하면 모든 부처님의 불국토가 청정함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극락교를 건너자, 부처님의 청정한 불국토에 들어섰다며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불국토는 중생을 교화하고 싶은 마음과 모든 중생을 최고 지혜에 들어가게 하려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땅입니다. 

부처님께서 그런 마음을 보이신 것은 탄생하시자마자 “천상에서나 땅에서나 나 홀로 존귀하다. 온 세상이 모두 괴로움에 잠겨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라고 말씀하실 때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큰 뜻을 나타내려 하였는지, 불국토로 들어서는 극락교 첫 번째 돌기둥에는 준공한 연도를 “응화 3005년”으로 새겼습니다(서기 1979년). “응화(應化)”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하신 해를 기원으로 삼는 연도 표기 방법입니다. 극락교는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해로부터 3005년이 지난 때에 준공되었다는 것이지요.

통상 각종 불교 행사가 이루어지는 시기를 불기(佛紀)로 표기하건만 유달리 불국토로 건너는 때를 응화로 표기한 것입니다. 이는 ‘중생들을 괴로움으로부터 건져주기 위해 오신 부처님을 잊지 않고 공경하겠습니다’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