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봉규/사진 장명확
2023-02-21 (화) 10:12蓮이를 위하여 16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
[朝鮮의 農業機構分析:1937]
[朝鮮의 土地問題:1940]
[朝鮮農村鏶記: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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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선생님.
저는 지금, 당신의 책들 목록을 하나하나 적어봅니다. 그리고 당신의 형형했던 그 눈빛을 생각합니다. 우렁차지는 않았지만 힘이 있었던 그 목소리를 아직도 듣고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만난 것은 전쟁이 나기 불과 몇 달 전이었습니다. 당신의 연구실은 ○○대학 본관 건물 1층 끝 방이었습니다. 그 때 창밖으로는 온갖 꽃들로 장식된 남산이 보였습니다. 선생님은 쑥스럽게 찾아간 내게 먼저 손을 내미셨고, 난 너무나 감격해서 인사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그때 충무로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선생님은 제게 학생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학생이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농사를 짓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다시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준비해 온 한 아름의 책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 책을 앞에 놓고 제가 선생님께 무슨 약속을 하였는지요? 선생님이 부여잡은 그 손을 흔들며 제가 뭐라고 울먹였는지요? 오늘의 농촌을 이야기하고, 익지도 않은 식견으로 농지 개혁법의 부당성을 이야기하며 입에 거품을 물 때, 선생님은 울고 계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눈에서 한 방울의 눈물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선생님은 분명 울고 계셨습니다. 한껏 말아 쥔 선생님의 손끝이, 연기를 뿜어내는 선생님의 입술이 한없이 떨리는 것을 저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소나 말처럼 신음하는 동족들 때문에 해쓱해진 진짜 식견인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본 단 한 사람의 쟁기꾼이셨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고향을 물었습니다. 저는 그때 감히 온 조선이 제 고향이라고 객기를 부렸습니다. 다시 선생님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을 때 저는 또 온 조선의 헐벗은 땅을 다스리겠다고 호기를 부렸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들뜬 제 등짝을 두드리며 웃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연필을 꺼내셨습니다. 저는 아직도 선생님이 제게 써주신 그 도서 목록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것은 제 가슴에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구구한 저의 처지에 대해서는 의론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저는 아주 쫓기는 몸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서울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 때문이었습니다. 혜화동에서 충무로까지 걸어가면서, 선생님이 계시는 필동의 그 흙 계단을 오르면서, 저는 얼마나 가슴 떨렸는지요. 그러나 당신은 이미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만남을 위해 무수한 밤을 새워 제가 준비해 간 어리석은 언어들은 이제 갈 곳이 없습니다. 북으로 가셨다는 소문을 들었을 뿐입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제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었습니다.
선생님 그러나 저는 믿고 있습니다. 당신이 제게 주었던 그 형형한 눈빛, 그 부드럽던 손길, 낮은 음성, 허공으로 연기를 밀어 올리며 떨던 그 두툼한 입술을 믿고 있습니다. 지금 어딘가에서 또 가슴 들뜬 우리 조선 젊은이들의 등짝을 두드리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나의 마을 청리산 자락에 피어난 우리의 초목들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 선조 대대로 가꾸어 온 넓지 않지만 옹골찬 들녘을 굽어보고 있습니다. 이 땅에 자라는 풀꽃 하나,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 흙덩이 하나에도 눈물을 흘리고 맙니다. 나날이 허물어지는 육신 탓일까요? 이제 그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내게 더 가까운 탓일까요?
선생님 그때 밤새도록 나눈 선생님과의 대화를 생각하면서 하늘의 별을 봅니다. 이 별만큼 많은 우리의 풀꽃들을 생각합니다. 머지않아 제가 이 언덕의 그 풀꽃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아니면 행복하게도 제가 붉은 깃발을 흔들었던 것은 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땅의 진정한 주인을 찾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묵은 하늘을 청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운 선생님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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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서 울면서
어쩔 수 없이
때가 되면
사라져가는 것들의 뒷모습은
오직 아름다움이다.
안으로 안으로
원망과 분노,
절망을 삼키며
밖으로 밖으로
천천히 퇴장하는
생명들의 울부짖음,
그 통곡!
약속된 시간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비척대는 들풀들은
동서남북
상하좌우로
몸부림치고 있다.
하루 종일, 동굴을 정리했다. 초조하고 불안하다. 몸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노릇, 그렇다면 서둘러야 한다. 며칠 간격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동봉 스님을 괴롭혔다. 당신의 판단이 옳든 그르든 남이 이야기한 것은 절대적으로 들어주는 사람, 동봉 스님. 일어서면 앞으로 눈이 쏟아질 것 같은 통증, 가쁜 호흡, 그러나 한편으로 편안하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들, 한 번도 손대지 못한 그것들이 안타깝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몽땅 태워야 한다. 그래야 저승으로 갈 때 내가 가져갈 수 있다. 점점 엉망이 된 내 일기들을 순서대로 모았다. 칸칸 내 생각들이 빼곡히 적힌 농업서들, 왠지 눈물이 고인다. 그것들을 보자기로 묶었다.
다음은 마지막 눈도장.
그동안 정들었던 칼과 가위, 이부자리, 냄비와 솥단지, 경묵이 녀석이 단단하게 묶었던 싸리비, 동굴 입구를 막았던 노란 짚 거적때기, 동굴 벽면에 붙인 소나무 통판의 선반, 눈에 익은 동굴의 벽면들. 잘 있거라!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경묵이에게는 연락하지 않았다.
동굴을 정리하고 서둘러 백천사에 갔다. 그녀가 동봉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눈에 익은 자주색의 외투. 그녀는 오랜만에 안경을 끼고 있다. 왠지 낯설다. 나와 스님,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셋이 마주한 시간이 머언 먼 옛날만 같다. 불과 10년도 되지 않았는데. 북쪽으로 자리 잡은 작은 요사채 뒤로 능금 빛 노을. 따뜻한 동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바람이 전혀 불지 않는다. 봄날의 저녁 같은 한가을.
“이제 여기 와서 살어.”
스님의 말은 진중하다. 죽음은 백천사에 맞으라는 소리다. 그 소리를 듣고 그녀의 눈이 금방 붉어진다. 그녀는 내 손을 잡지도 못하고 슬픈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애써 그녀의 얼굴을 외면한다. 얼마 전 서울에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해쓱하다. 하기야 여기서 서울까지는 꼬박 하루가 넘게 걸린다. 잠 자지 못한 얼굴. 그러나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머리를 깎을 것도 아니고, 그럴 처지도 못되지만…….”
“또 말을 못 맺고? 자네는 절에서 뭘 배웠나?”
“나무하고 불 땠습니다.”
스님이 말을 받았다.
“그래, 절에서는 배울 게 많지. 절을 하는 법도 배울 수 있고, 종소리를 듣는 것, 목탁을 두드리는 것, 나무를 하는 것, 불을 때는 것, 사람을 알아보는 법.”
“술도 배웠지요.”
나도 슬슬 앞으로 나갔다. 스님이 미리 술을 준비한 모양이다. 스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농골 보살이 술상을 들였다.
“오늘은 나도 한 잔?”
그녀가 술병을 들었다.
스님이 잔을 들었다.
그녀도 잔을 들었다.
“좋구먼.”
스님과 그녀가 단숨에 잔을 비웠다.
맹물 마시듯.(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