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관세음보살

                                                            정찬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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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는 올해 96세가 된다. 3년 전, 집 안에서 넘어져 뇌를 다치셨는데, 진료병원과 재활병원을 거쳐 지금은 광주 집에 홀로 계신다. 집에서나 외출할 때나 항상 이태례란 이름과 생년월일, 내 전화번호가 새겨진 목걸이를 걸고 다니신다. 치매 4등급을 받으신 뒤로는 '자연의 숲'이란 노인주간보호센터를 나가신다.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일요일에는 어머니와 점심을 함께 해온 지 2년이 넘은 것 같다. 나는 도시로는 외출하지 않기로 스스로 나만의 규칙을 만들어놓았지만 어머니에게 갈 때만은 예외이다. 어머니는 헤어질 때면 아쉬운지 아내와 나를 껴앉으며 “사랑한다”고 말씀하신다. 어떤 날은 여동생이 알려줬는지 “아이 러브 유~”라고 말씀해 나를 웃게 한 적도 있다. 

그런데 비가 오거나 요즘처럼 추운 날은 어린아이처럼 센터에 가기 싫다고 고집을 부리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머니가 센터에 가셔야만 제가 글을 안심하고 잘 쓸 수 있어요” 하고 달래곤 했다. 그러면 대게는 “아들아, 좋은 글이 머리에서 퐁퐁 솟아나서 잘 쓰거라”하고 고집을 접으셨다. 

오늘도 어머니는 목욕하시고 센터에 가실 준비를 하시더니 갑자기 돌변해서 가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날이 너무 춥고 눈 쌓인 길이 미끄러울 것 같아 나는 군소리하지 않고 어머니 의견을 받아들였다. 더구나 어머니를 픽업하러 오는 센터의 기사분에게 몸이 아파 못 가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정말로 아프신 것이지 확인해 보니 단순히 가기 싫으셔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나는 학창시절에 나도 그런 날이 있었지 하고 단념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 어머니의 전화가 다시 왔다.

“센터에 갈란다. 좋은 글 많이 쓰거라.”

순간 눈물이 나올 뻔했다. 어머니 마음이 나를 먹먹하게 해서였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식의 유일한 수호신이자 관세음보살이라는 자각(自覺)이 또다시 가슴을 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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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향한 지 23년. 

그동안 화순 분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중에서도 늘 생각나는 몇 사람이 있다. 월헌(月軒) 김천국 선생도 잊을 수 없는 지인이다. 나와 깊은 정이 오가는 사이다.

작년 12월 31일 자로 36여 년 봉직한 농협을 명예퇴직한 월헌의 지나온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은행원이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원(願)으로 상고를 진학했다는 얘기, 부모와 가까이 있고 싶어 서울로 올라가지 않고 지방 근무만 전전했다는 얘기, 같은 마을에 살았던 아내의 초등학교 시절 소풍 얘기 등을 들으면서 효심과 동심을 품고 사는 월헌의 순수한 매력을 다시 느꼈다. 

나는 월헌에게 약속했다. 월헌의 인생을 글로 담은 패(牌)를 하나 만들어 선물하겠다고.

월헌이 가고 난 뒤라서 그런가? 석양이 다른 날보다 더 거룩하고 아름답다. 마치 거칠고 신산한 세월 속에서 보석같이 빚어진 월헌의 빛나는 인생처럼. 선지식(善知識)이 없다거나 멀리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바로 내 옆에도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내 삶의 지남이 되는  선지식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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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대구면의 토기와 청자 가마터를 답사했다. 청자재현에 성공한 이용희(88세) 선생님, 신영호 향토사학자, 심송(心松) 김걸 선생의 안내를 받았다. 아내는 이분들의 설명을 꼼꼼히 메모했다. 

토기와 청자 가마터는 정수사에서 용문천과 대구천을 따라서 골짜기 산자락마다 산재해 있었다. 관요와 민요들이었는데, 그때를 상상해 보니 짜릿하다. 봄 가을마다 가마에 불을 들였을 텐데 한꺼번에 가마 굴뚝에서 연기들이 산골짜기마다 솟구치면 안개가 산자락을 일시에 휘감은 듯한 장관이 연출되지 않았을까 싶다.

정수사 아래 개울 좌우로 용운리(운곡, 항동, 용문)에서 고인돌이 있는 계율리, 청자박물관이 있는 사당리, 미산포의 바다까지 가마들이 화목(火木)의 필요에 따라 1백 년 단위로 오르내렸다고 한다. 화목이 되려면 소나무가 1백 년은 자라야 하니까.

요즘 말로 하면 이곳은 국가에서 지정한 '청자생산특구'였을 것이다. 당시의 수도인 개경에서 가까운 인천, 충청도, 부안 등에도 청자가마들이 있었지만 왜 수송이 힘든, 가장 멀리 떨어진 강진에서 고려시대 내내 대단위로 청자관요를 운영했을까?

첫 번째는 경질토로서 산화철이 많은 강진 흙 때문이었을 것이고, 두 번째는 신라 때부터 토기를 생산해 왔던 강진 도공들의 준비성 및 장보고가 들여온 당나라 월주요의 초기청자 노하우였으리라고 짐작된다. 

정수사는 원래 쌍계사였다고 한다. 대웅전으로 들어가 아내와 함께 참배를 했다. 때마침 전화를 준 동국대 후배를 위해서 또다시 대웅전으로 들어가 참배했다. 삼존불 모두 용운리 도공들의 얼굴처럼 소박하다. 얼굴이 동그란 주불은 한 고집 부릴 것 같고, 장사 같은 느낌의 왼쪽 협시불은 얼굴이 길쭉하고, 오른쪽 협시불은 치아가 안 좋은 듯 윗입술과 인중이 조금 튀어나와 있다. 

우리들이 기념사진을 찍은 도조사(陶祖祠)는 선조 도공들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리라. 정수사 대중스님들은 기도하러 온 도공들과 상부상조했을 것이다. 어느 한 도공은 가마를 운용하지 않는 겨울철 백일기도 끝에 수만 마리의 물총새가 비상하는 꿈을 꾸고 청자 빛깔을 생각해 냈는지도 모른다. 

절 앞으로 두 줄기의 맑은 계곡물이 합수하고 있다. 그 옛날 이른 아침마다 대중스님들이 계곡물에 세수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어떤 처자는 이 계곡물로 세수하다가 눈앞에 있는 청자불두(佛頭)를 발견했다고 한다. 아마도 고려시대 어느 스님의 원불(願佛)이었을 것이다. 내 서재에도 나의 원불인 인도에서 온 불상이 있다. 어느 스님께서 보관하고 있다가 내 얼굴 닮았다고 이불재로 모셔온 부처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