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蓮이를 위하여

우봉규 장편소설. 『蓮이를 위하여』

우 봉규/사진 장명확 | | 2023-01-17 (화) 09:17

蓮이를 위하여12



(©장명확) 



 나는 푸른 숲에 다시 왔다.

 나는 푸른 숲에 다시 왔다.


 행복하여라! 

 단출한 초가 오막집에서 

 오순도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여, 

 행복하여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갖고 

 울 수 있는 사람들이여, 

 행복하여라! 

 등불을 켤 수 있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새끼들의 재롱에 

 화를 낼 수 있는 사람들, 

 그대들은 행복하여라! 

 죽고 사는 것과 아무 연관되지 않는 일로 

 스스로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 사람들이여, 

 돌보아 줄 사람이 있는 병자여, 

 병자를 돌보는 사람들이여.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들이여, 

 돌아갈 마을이 있는 사람들이여, 

 그곳에서 눈 감을 수 있는 사람들, 

 그대들은 행복하여라! 

 나는 내 아들의 이름도 모른다.

 나는 내 아들의 얼굴도 모른다.

 

 죽음보다 무서운 위험을 감수하고 마을과 가까운 늑대 못으로 내려왔다. 마을은 더 자세하게 보인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 집은 뒤 꼭지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연기가 오르지 않는다. 우리 집뿐만이 아니다. 응한이 집이 그렇고, 영국이 집이 그렇고 끝말랑이의 정운이 집이 그렇다. 까닭 없이 눈물이 흐른다. 일본인들이 하늘을 지배하던 그 시절에도 아침저녁으로 명주실 같은 연기는 올랐었다. 

변함없는 것은 늑대 못이다. 마을의 선조들이 한 톨의 쌀이라도 더 내기 위해 마을 위에 만들었다는 못. 그 늑대 못 위로 가을볕이 떨어진다. 나는 용감하게도 둑 가에 앉아 그 물들을 바라본다. 못을 둘러싸고 있는 오리나무와 굴참나무들이 바람에 떨고 있다. 웽웽 소리를 지르고 있다. 하늘 위에서는 있는 데로 날개를 펼친 소리개 한 마리가 빙빙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이 늑대 못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 물이 너무 차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소리개가 소리 없는 비행을 하는 걸 보면 나를 노리고 있는 모양이다. 소리개의 그림자에 일렁이는 물결, 그러나 가을의 물들은 둑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다. 감옥에 갇힌 물들은 언제나 아우성을 친다. 아래로 흐르지 못하는 그들은 조그만 하나의 변화에도 끊임없이 항거한다. 

 

 낮이면 

 그들은 온몸 가득 햇빛을 받아 

 그들은 햇빛을 부순다. 

 그들은 온몸 가득 구름을 받아  

 그들은 구름을 부순다. 

 그들은 온몸 가득 바람을 받아 

 그들은 바람을 부순다. 

 그들은 그들의 살아 있음을 그렇게 표현한다. 

 그리고는 종내 아무도 

 그들의 슬픔을 알아주지 않음으로 하여, 

 그들은 밤이면 자신들의 몸뚱아리를 부순다. 

 그리고 소리 없이 자지러지고 만다. 

 

 그 안타까운 것들이 모여 사는 연못 왼편 낮은 기슭으로는 사과와 복숭아, 살구나무가 몇 대를 이어서 살고 있다. 또 다르게 말하자면 언제나 잔잔한 수면 위로 날이면 날마다 해가 뜨고 별이 진다.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왜란 때 죽은 마을 사람들의 넋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걸 믿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낮 동안 말이 없는 갖가지 나무와 풀들, 그리고 목숨을 다해 가는 꽃들의 마지막 향연쯤으로 여기고 있다. 게다가 이 좁은 골탕에서 모인 물들이 처음부터 함께 어울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제각각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하고는 다르게 곧 하나가 된다. 그 하나가 되는 함성, 그 함성이 끝나면 드디어 하늘의 축제가 벌어지는 것이다. 

 북소리 꽹과리 소리, 머리에 흰 두건을 둘러쓴 사람들이 마구마구 돌아간다. 아무도 없는 시간에, 나는 가버린 사람을 만난다. 경찰에 쫓겼던 몇 년의 세월, 며칠씩 술을 마시고 잠을 청하면 어김없이 시커먼 저승사자란 놈들이 들이닥쳤다. 그런데 지금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먼저 가버린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러나 사실 이곳에 그들은 없다. 그것은 다만 나 혼자만이 누리는 천복의 이상도(理想圖) 일뿐이다. 다섯 개의 봉우리에 가려 거의 응달진 곳, 그래서 이곳에 사람들은 묘 터를 잡고 사람이 살지 않는 곳, 즉 깨끗한 골, 정골[淨里]이라고 하였다.

 어리석음이여! 나는 단 한 번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비록 사람들의 눈초리에 쫓겨 10년 도회를 떠돌았지만, 그리고 완전하게 이곳을 잊어버렸다고 확신하고 있었지만, 이곳에 돌아오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 이곳에 있었다. 

 마을을 가운데 두고, 동구 밖의 못이 산 자들의 땅이라면, 청리산 밑의 이 늑대 못은 망자들의 땅이다. 오래전에 심어놓은 사과, 복숭아, 살구나무는 저 홀로 피었다가 지고, 그리고 비가 내리면 어김없이 그 꽃잎들은 이 작은 못 위를 혹은 희게 혹은 붉게 물들였다. 

 30년 이상 나 자신도 모르게 내 심장 깊숙이 들어와 박혀 나를 눈멀게 하였던 곳, 나를 귀 멀게 하였던 곳, 그로 하여 나는 다른 사물들을 볼 수 없었다.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헛것이 보였다. 헛것이 들렸다. 그럴 때는 웃었다. 남로당원으로 지하에 숨어 지내던 그 적지 않은 세월 동안 나는 고개를 흔들고 다녔다. 보이는 것은 모두 흔들렸다. 들리는 것은 모두 달아났다. 안타까움, 그러나 그때는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 

 그 흔들림 속에 눈을 바로 뜬다는 것, 그 달아남 속에 귀를 바로 세운다는 것, 나를 쳐다보던 그 많은 눈동자들, 사람들은 항상 나를 이상하게 대했었다. 이상함, 그것은 정확한 배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특별한 친밀도 아니었다. 단지 나의 삶 그 자체를 그대로 인정해 주는 듯한 무관심,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단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핏발 선 나의 눈은 항시 죽어가고 있었다. 오직 한 가지만 볼 수 있도록, 항시 곧추선 나의 귀는 죽어가고 있었다. 오직 한 가지만 들을 수 있도록, 결국 나는 그 한 가지만을 보고, 그 한 가지만을 들으며 거리에서 세월을 보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소리 없이 돌아왔다. 내 가족과 내 동무들, 그들과 함께 영원히 살고 싶었던 곳을 죽기 위해 찾아왔다.


                                **


 오랜만에 큰 소나기가 지나간 후, 아직 빗물이 굴 입구 천장에서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억지로 문밖에 나와 앉는다. 청리 쪽에 일곱 색의 무지개가 커다란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왜 나는 무지개를 보면서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까? 죽음이란 것을 조금도 실감하지 못하면서. 아마도 영훈이와 광수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아직도 산속에서 떠도는 꿈을 꾸었다.   

 살금살금 백천사에 갔다. 

 비 탓이라 사람이 없다. 동봉 스님이 아랫목으로 끌었다. 큰절을 하였다. 스님이 빙긋 웃는다. 스님의 앉은뱅이책상 위에는 많은 책이 쌓여 있다. 시경, 당시, 한산시, 노자, 장자, 천부경, 고문진보, 원인론, 그러나 정작 불경이 눈에 띄지 않는다.

 “스님도 책을 읽으십니까?”

 스님이 고개를 흔든다.

 “자네가 오면 주려고. 글씨가 작아서 난 읽지도 못해.”

 내가 스님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렇지만 내가 구한 책은 아닐세. 어느 보살님이 보냈지.”

 나는 그 보살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고개만 끄덕인다.

 “낮에는 위험해?”

 “낮에 오고 싶었습니다.”

 “경찰들이 들를 때가 있어.”

 “제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하기야 자넨 아는 게 많아서 탈이지. 그래, 용건은?” 

 “스님 얼굴입니다.”

 “내 얼굴?”

 “이제 됐습니다.”

 “벌써 가려구?”

 “가야겠습니다. 나 때문에 스님이…….”

 “난 아무 상관이 없어.”

 “저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 사람, 동굴 속에 살더니 달통했구먼.”

 “그러시면 차 한잔 주시겠습니까?”

 “농골 보살 차 좀 내와요.”

 보살이 차를 내왔다. 아마도 보살은 내가 이곳을 들락거린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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