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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들에겐 흑단나무(꼬빌라라)라고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게 흑단으로 만든 염주와 단주, 향통 등일 것이다. 재질이 단단하고 촉감도 좋은 데다가 색깔까지 고급스러워 불구(佛具)의 재료로 인기가 높다. 또한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영화 ‘톰레이더(Tomb Raider)’에 캄보디아 앙코르 타포름사원 촬영분에서 흑단나무가 등장하기도 한다. 흑단나무는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나무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흑단나무는 인도 남부와 스리랑카가 원산지이다. 잎은 두껍고 감나무 이파리처럼 생겼으며 긴 타원형이고 옆 가지에서는 2줄로 배열한다. 꽃은 단성화(單性花)이고 암꽃과 수꽃이 한 그루에 달리는 1가화이며 백색으로 통같이 생겼고 4개로 갈라진다. 열매는 감같이 생겼으나 지름이 2cm 정도로 작다. 나무의 외부는 일반적인 연질이지만, 내부에는 경질의 검은 심이 있는 게 특징이다. 이 부분의 목재를 흑단이라고 부른다.

흑단의 검은색에는 깊은 광택이 감돌아서, 단순히 검게 칠한 나무와는 확연히 다르다. 어두운 바탕을 가로지르는 줄무늬가 멋들어진 데다 은근한 광택을 띤 검정 색깔이 주는 묵직하면서도 우아한 색감 덕에 중후한 기품이 느껴져 예로부터 목재로 인기가 높았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 세월의 손길을 더하면 흑단의 검은색은 한결 멋스러워진다. 이처럼 흑단은 아름다우면서도 단단하기 때문에 무기류, 장식품, 고급 가구, 조각, 피아노 건반, 악기, 도장, 북채 등을 만드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흑단으로 뭘 만들었다고 하면 일단 최고급 재질이라는 의미가 된다.

흑단은 매우 단단하고 조직이 치밀하기 때문에 가공이 매우 어려운 목재에 속한다. 거의 돌을 깎는 조각에 가까울 정도이다. 오죽하면 ‘금속과도 같이 단단한 나무’란 뜻에서 아이언우드(ironwood)로 분류될 정도이고, 부석(浮石)과는 반대로 물에 던지면 가라앉는다. 현재는 지나친 남벌로 멸종 위기종이 되었다. 흑단나무는 건강미와 육체미가 있는 흑인 여성을 뜻하는 은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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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단은 불전에 꼬빌라라(Koviḷāro)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꼬빌라라는 산에서 자라는 흑단나무를 의미한다. <숫타니파타> ‘뱀의 품’ 가운데 ‘코뿔소의 외뿔의 경’에 나오는 꼬빌라라 이야기는 이렇다. 

“잎이 떨어진 꼬빌라라 나무처럼, 재가 생활의 특징들을 없애 버리고 재가의 속박들을 끊고, 용기 있는 이는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뱀의 품 (전재성 옮김) 

이 게송은 짜뚜마씨까 브라흐마닷따(Cātumāsika Brahmadatta)라는 이름의 한 연각불(緣覺佛)이 지은 것이다. 베나레스(바라나시)를 다스리는 왕이었던 그는, 초여름 어느 날에 유원을 찾아 푸르고 무성한 잎으로 뒤덮인 꼬빌라라 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했다. 그는 그곳에 왕이 ‘누울 수 있는 처소’를 만들라고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한 여름에 다시 그곳을 찾았는데 꽃이 만개해 있었다. 그런데 왕은 ‘누울 수 있는 처소’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알고는 재차 그것을 만들라고 대신들에게 명했다. 여름이 끝날 무렵 왕은 세 번째로 그곳을 찾았다. 그러나 나무는 잎사귀가 다 떨어지고 고목처럼 되어 있었다. 왕은 그 밑에 누워서 보주에서 생겨난 것 같은 나뭇잎과 산호초를 아로새긴 것 같은 꽃들, 진주를 부수어 뿌려놓은 듯한 나무 아래의 흙, 붉은 모포를 펼쳐놓은 듯한 떨어진 꽃잎을 볼 수 없게 된 것을, 세밀히 관찰하면서 천년만년 살 것만 같던 나무도 늙어 쇠약해진다는 것을 처절히 깨달았다. 왕은 그 순간 집착을 버리고, 꼬빌라라 나무처럼 모든 것은 무상하고 괴롭고 실체가 없다는 것을 관찰하고는 재가(在家)의 표시를 버리기로 작정했다. 그러고는 나무 아래 마련된 처소에 오른쪽으로 누워서 깨달음을 성취하고 연각불이 되었다. 짜뚜마시까 브라흐마닷따는 그때의 감흥을 시, 즉 한 편의 게송으로 읊었다. 얼마 후 대신들이 다가와서 “이제 왕께서 궁전으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알리자, 그는 “나는 왕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게송에서 언급한 ‘재가 생활의 특징들’은 머리카락, 수염, 흰옷, 치장, 화환, 향료, 크림, 처자, 남녀 노비 등이다. ‘재가의 속박을 끊는다.’는 것의 의미는 ‘도과(道果)로 가는 길에 대한 지혜로써 재가의 속박인 감각적 쾌락의 속박을 끊는다는 말’이며, ‘용기 있는 이’는 ‘길에 대한 정진을 구비한 자’를 의미한다. 또한 연각불(pacceka-buddha)이란, 십이연(十二緣)을 관찰·수행하여 깨달은 부처라는 뜻이다. 연각불, 즉 빠쩨까는 붓다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스승도 없이 스스로 깨달아, 고독을 즐기며 설법도 하지 않는 불교의 성자를 말한다. 홀로 깨달은 자라는 의미에서 독각(獨覺)으로 번역하기도 하며, 필륵지저가불(畢勒支底迦佛)·벽지가불(辟支迦佛)·벽지불(辟支佛)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오랜 기간 동안 아름다운 꽃과 이파리들이 무성했지만, 세월이 흘러 쇠약해지면서 앙상한 고목이 되어버린 흑단나무를 보고, 무상과 무아를 깨달아 마침내 연각불이 된 짜뚜마시까 브라흐마닷따. 그의 예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에 산재한 수많은 무정물들이 지금 이 순간도 쉴 틈 없이 무정설법을 연설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어쩌면 알고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

며칠 전, 가장 추운 절기라는 소한 날 밤에 눈 대신 치적치적 겨울비가 내렸다. 이 비로 산과 들을 하얗게 덮었던 눈들이 상당부분 녹아내리니, 군데군데 거뭇한 맨흙이 드러났다. 자고 일어나니 풍광이 바뀐 것이다. 이뿐이랴. 6년 전 귀촌할 때만 해도 거뜬하게 농사를 짓던 동네 어르신들이 어느 순간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노인회관을 찾는다. 이태 전 아궁이 부엌에 쌓아놓은 땔감나무들에는 어느 순간 좀이 슬어 누런색 가루가 뒤덮였다. 일체 대상들은 이처럼 끊임없이 무상, 무아의 도리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백년천년을 살 것처럼 우왕좌왕 헐떡거리며 살아가는 숱한 중생들을 어쩌면 좋을 것인가. 나를 포함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