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이면 뒷산에서 현묘재를 향해 돌진해오는 칡덩굴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하루 이틀 방심하면 칡덩굴이 뒤란의 곳곳에서 마치 뱀의 머리처럼 고개를 들고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복숭아나무 아래 심어놓은 호박들은 이런 칡덩굴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무정물에도 생명이 있지만 부득이하게 낫을 들고 칡들을 쳐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칡덩굴을 제거하고 나면, 일주일 정도는 칡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 녀석들의 침략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색이 없다. 가을이 깊어질 때까지 칡과의 싸움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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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은 힘차게 뻗어가는 덩굴로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칡을 소재로 한 시조로는 훗날 조선의 제3대 왕 태종이 된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가 대표적이다. 하여가는 이방원이 고려의 충신 포은 정몽주에게 조선 건국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면서 송악산 서쪽에 있는 만수산의 칡을 빗대 읊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가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라는 시조이다. 이에 대해 포은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라는 단심가(丹心歌)로 답했고, 결국 선죽교에서 살해되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이방원이 얽힘의 논리로 화해와 조화를 희구했으나, 포은은 죽음의 논리로 단절을 드러낸 것이다. 이방원이 화해 또는 조화의 논리를 구사하면서 칡을 소재로 사용한 것은 칡이 갖고 있는 속성을 잘 이해한 데서 비롯됐을 것이다. 

칡은 다년생 식물로서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대부분의 줄기가 살아남는다. 줄기는 매년 굵어져서 굵은 줄기를 이루기 때문에 나무로 분류된다. 실제로 논산 쌍계사 대웅전의 오른쪽 뒤편의 기둥은 칡넝쿨을 사용해 유명세를 타고 있기도 하다. 칡은 산기슭의 양지에서 잘 자라는데, 줄기의 길이는 20m 이상 뻗쳐있다. 추위에도 강하지만 염분이 많은 바닷가에서도 잘 자랄 정도로 강한 생명력을 가졌다. 8월에 붉은빛이 도는 자주색 꽃을 피우고 잎겨드랑이에 길이 10∼25cm의 총상꽃차례를 이루며 많은 수가 달린다. 꽃향기는 진하지만 고급스럽지는 않다. 오래전부터 구황작물로 식용되었고 자양강장제 등 건강식품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갈근(葛根)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발한·해열 등의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칡은 숲의 무뢰한이라고 부를 만큼 얽히고설켜 숲을 망친다. 숲 가꾸기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겐 너무도 미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숲을 망치는 게릴라들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수종(樹種)을 가리지 않고 접근해 둥치를 감아 올라간다. 공손히 감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숨통을 조이고 둥치의 영양을 빨면서 감아 올라간다. 큰 소나무도 칡의 공격을 받으면 몇 년 내에 고사(枯死) 한다. 줄기를 잘라도 뿌리가 살아있는 한, 다시 살아나는 불사조 같은 존재이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주변 산야를 보면 치렁치렁한 칡넝쿨이 나무를 감아 조이거나 산야를 뒤덮고 있는 광경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칡을 제거하기 위해 뿌리를 쫓아가다 보면, 여지없이 난관에 맞닥뜨린다. 큰 바위 밑으로 길게 뻗은 칡뿌리는 의욕 넘치게 시작한 작업을 가로막는다. 간혹 바위의 무게감에 질려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칡을 제거하는 과정이 마치 수행의 그것과 유사하다. 마음이라는 광석을 제련하는 방식도 칡뿌리를 캐는 일련의 과정과 매우 비슷한 것이다. 칡을 그대로 방치하면 온 산을 덮어버리듯, 세속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오염된 마음을 그대로 방치하면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으로 인해 사악도에 떨어져 끝을 알 수 없는 윤회의 굴레에서 끔찍한 고통 받게 될 것이다. 

불전(佛典)에서도 칡은 감각적 쾌락을 비유하는 대상으로 등장한다. <쿳다까니까야> 숫타니파타의 ‘작은 법문의 품’ 가운데 쑤찔로마의 경(Sūcilomasutta)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가야에 있는 땅기따만짜에서 쑤찔로마라는 야차의 집에 계셨다. 그런데 그때 카라라는 야차와 쑤찔로마 야차가 세존께서 계신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야차 카라는 야차 쑤찔로마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이분은 수행자이다.”

“아니다. 그는 수행자가 아니다. 적어도 그가 수행자인지 새내기 수행자인지 내가 알 때까지 그는 새내기 수행자이다.”

그리고 야차 쑤찔로마는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몸을 굽혀 부딪쳤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몸을 젖혔다. 그때 야차 쑤짤로마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수행자여, 그대는 나를 두려워합니까?”

“벗이여, 나는 결코 그대를 두려워하지 않지만 아까 그대의 부딪힘은 기분 나쁜 것입니다.”

“수행자여, 나는 그대에게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만약 그대가 나에게 대답하지 못하면, 나는 당신의 마음을 미치게 하거나 심장을 찢어버리거나 또는 두 발을 붙잡아 갠지스 강 저쪽으로 던져버릴 것입니다.”

“벗이여, 나는 이 신들의 세계, 악마들의 세계, 하느님들의 세계, 성직자들과 수행자들의 후예들, 그리고 왕들과 백성들의 세계에서 나의 마음을 미치게 하고 나의 심장을 찢어버리고 나의 두 발을 붙잡아 갠지스 강 저쪽으로 던질 수 있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벗이여, 그대가 원하는 것을 한번 질문해 보십시오.”

그래서 야차 쑤찌로마는 세존께 이와 같이 질문했다. 

“탐욕과 미움은 어디서 일어납니까? 불쾌함과 즐거움과 털이 곤두서는 전율은 어디서 일어납니까? 어린아이들이 다리를 묶어 까마귀를 놓아준 것처럼 마음의 생각은 어디로부터 일어납니까?”

“탐욕과 미움은 여기서[여기서는 ‘자기의 존재’를 의미함] 연유하고 불쾌함과 즐거움도 털이 곤두서는 전율도 여기서 일어납니다. 어린아이들이 다리를 묶어 까마귀를 놓아준 것처럼 마음의 상념은 여기서 일어납니다. 벵골 보리수에 많은 줄기가 나 있는 것처럼, 감각적 쾌락에서 일어나며 스스로에게서 생겨납니다. 칡이 숲속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감각적 쾌락에 얽매어 있습니다. 어디에서 생겨났는가를 밝게 아는 사람들은 그 원인을 없애버립니다. 야차여, 들으시오. 그들은 건너기 어려운 거센 물결을 건너, 다시는 태어나지 않습니다.” 

이 경에서 붓다는 감각적 쾌락의 속성을 칡(Mālava)이 숲속에서 퍼져나가는 모습으로 비유해 설명하고 있다. 붓다가 칡을 비유 대상으로 삼은 것은, 식물 가운데 빨리 성장하는 것의 상징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칡은 나무를 뿌리에서부터 꼭대기까지 감아서 죽게 하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세속적 쾌락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사유를 감싸서 파괴시킨다고 밝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