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으로 읽는 불교
험악한 숲이라도 성자가 머물면…
이 학종 2022-12-23 (금) 09:36
어릴 적 등하굣길에 동무들과 함께 아카시아 꽃잎을 따먹곤 했다. 1970년 전후만 해도 시골 아이들에게 과자 등의 간식은 언감생심(焉敢生心) 꿈도 꾸지 못했다. 그저 간식 대용으로 땅에서 막 솟아오르는 찔레 대궁을 꺾어 껍질을 벗겨 먹거나,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는 것을 감수하고 아카시아꽃을 따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봄이 무르익어 막 여름이 시작되는 시절은 시골 어린아이들이 기다리는 시기이기도 했다.
요즘은 꿀을 생산하는 분들에게 아카시아 나무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가 되었지만, 내 어릴 적만 해도 일제강점기 왜놈들이 우리나라 강토를 훼손하기 위해 일부러 곳곳에 아카시아를 심어 가시덤불을 만들었다며 아카시아 나무를 뽑아내는 일도 있었다. 아카시아 나무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만 그만큼 아카시아 숲은 그 날카로운 가시로 사람들이 접근하기를 꺼려 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아카시아 숲을 척박한 장소로 보는 시각은 붓다 당시 인도에서도 비슷했던 것 같다. 붓다도 아카시아 숲에서 정진해 아라한과를 이룬 레와따(Revata)라는 어린 사미수행자 를 격려하며 ‘숲에서 가장 잘 수행하는 데 제일’이라는 별칭을 내린 일이 있었다.
레와따(Revata)는 목갈라나와 함께 붓다의 상수제자였던 사리뿟따(Sāriputta의 막냇동생이다. 사리뿟따에게는 세 누이동생과 세 남자 동생이 있었다. 세 누이동생인 짤라(Cālā), 우빠짤라(Upacālā), 씨쑤빠짤라(Sisūpacālā)와 두 남동생인 쭌다(Cunda)와 우빠쎄나(pasena)는 맏형 사리뿟따를 따라 출가해 붓다의 제자가 되었는데, 막냇동생 레와따는 아직 어려서 출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사리뿟따 장로의 어머니는 사견(邪見)을 갖고 있는 이교도 신봉자여서, 장로에게는 막냇동생이 늘 걱정거리였다. 어머니가 자칫 막냇동생을 잘못된 길로 이끌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실제로 장로의 어머니는 세 딸과 두 아들이 출가하자 마지막 하나 남은 아들 레와따의 출가를 막기 위해 일곱 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서두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꿰뚫어 알고 있던 사리뿟따 장로는 모든 비구들에게 ‘내 동생 레와따가 출가하러 찾아오면 즉시 머리를 깎고 계를 줄 것’을 당부했다.
레와따가 일곱 살이 되자 그의 어머니는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비슷한 가문의 소녀를 선택해 결혼 날짜를 잡고 호화스러운 결혼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레와따는 결혼식장에서 120세의 늙은 신부 할머니의 이빨은 빠지고, 피부는 주름살로 구겨져 있으며, 얼굴은 물론 온몸에 검버섯이 피었고 허리는 활처럼 굽은 모습을 보고, 자신의 아내도 언젠가 저렇게 추한 모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염오의 마음을 일으켰다.
‘내 아내처럼 아름다운 몸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끔찍하게 변할 수밖에 없다. 나의 형 우빠띳사[사리뿟다의 속가 이름]도 이런 걸 보았기 때문에 출가했을 것이다. 나도 오늘 도망쳐서 출가해야겠다.’
신부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레와따는 꾀를 내 일행을 따돌리고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마침 그곳에서 멀지 않은 지역에 서른 명의 비구가 살고 있는 수행처가 있었다. 탈출에 성공한 어린 레와따는 그곳으로 찾아가 비구들에게 삼배를 올리고 출가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그가 사리뿟따 장로의 막냇동생임을 확인한 비구들은, 장로의 당부를 기억하고 즉시 사미계를 준 뒤 사리뿟따 장로에게 레와따의 출가 소식을 알렸다. 사리뿟따 장로는 이 소식을 붓다에게 말씀드린 후 동생을 보고 돌아오겠다며 외출을 청했다. 그러나 붓다는 아직 때가 아니니 더 기다리라며 승낙을 보류했다. 나중에 모두 함께 가게 될 것이라는 언질도 주었다.
그런데 사미가 된 레와따는 언젠가는 친척들이 찾아와 자신을 집으로 끌고 갈 것이라는 불안감에 서둘러 비구들에게 아라한에 이를 수 있는 수행 주제를 받아서 가사와 발우를 든 채 유행을 떠났다. 그는 30요자나를 유행한 끝에 한 아카시아 숲에 거처를 정하고 안거를 시작했다. 3개월이라는 안거 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레와따는 사무애해(四無礙解, 네 가지의 분석적인 앎)를 갖춘 아라한이 되었다.
해제 날 자자(自恣)가 끝난 후 사리뿟따 장로가 붓다에게 동생에게 가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하자 붓다는 ‘우리 모두 함께 가자.’며 500명의 비구를 데리고 레와따가 머물고 있는 아카시아 숲으로 향했다.
레와따 사미는 붓다와 큰형님이 비구들과 함께 자신이 머무는 숲으로 오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신통력으로 붓다를 위한 간다꾸띠를 세우고, 비구들이 머물 500개의 꾸띠와 500개의 경행대, 큰 법당을 세웠다. 이곳에 도착한 붓다와 사리뿟따 비구 일행은, 레와따의 신통으로 세워진 사원에서 ‘신들의 공양을 받는 데 제일’이라는 칭호를 받은 시왈리(Sīvali) 존자가 받은 공양물에 의지해 한 달간 머물렀다.
일행 중에 두 늙은 비구가 있었다. 이들은 붓다가 험한 아카시아 숲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이 험한 숲에 이렇게 커다란 건물을 지으면서 레와따가 수행을 제대로 할 수가 있었겠느냐며, 붓다가 대장로의 동생이라고 너무 편애를 하는 것 같다고 수군거렸다. 그날 아침 세상을 살펴보던 붓다는 이 두 비구의 생각을 읽고, 숲을 떠나는 날 두 비구가 발에 바르는 기름과 물그릇과 신발을 깜박 잊고 떠나도록 만들었다. 그러고는 얼마쯤 가다가 신통으로 두 비구에게 뭔가를 잊어버렸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두 비구는 자신들이 놓고 온 물건이 있다며 허락을 받아 부리나케 한 달간 머물렀던 아카시아 숲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곳에는 황량하고 거친 아카시아 숲만 있을 뿐 사원도, 머물렀던 꾸띠도, 놔두었던 물건도 보이지 않았다. 두 비구는 자갈과 나무줄기, 가시덤불에 발바닥을 찔리며 헤맨 끝에 가까스로 아카시아 나무에 걸려 있는 물건을 찾아 서둘러 일행을 찾아 떠났다.
사왓티 시의 뿝바라마(Pubbārāma, 동원정사) 승원으로 돌아온 뒤 두 늙은 비구는 모든 객승에게 언제나 공양을 올리는 위사카의 집으로 찾아갔다. 이들은 본 위사카가 레와따 사미가 머물고 계신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숲에 다녀왔느냐고 묻자 그들은 ‘그곳은 온통 가시로 뒤덮인 아카시아 정글로 귀신들이 아니면 살기 어려운 험악한 곳’이라고 대답했다. 그곳을 다녀온 다른 비구들이 ‘레와따 사미가 머무는 곳은 도리천의 수담마 법당처럼 웅장하고 화려했다.’는 답과는 정반대의 대답이었다.
얼마 후 붓다가 비구들과 함께 위사카의 집으로 와서 공양을 올리자, 위사카 여인이 레와따 사미가 머무는 숲에 대한 비구들의 서로 다른 답변이 나온 연유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해 붓다는 “아라한이 거주하는 곳은 풍요로운 마을이든 황량한 숲속이든 항상 즐거움이 가득 찬 곳이다.”라고 말하고, 게송을 읊었다.
마을에서나 숲에서나
계곡에서나 평원에서나
거룩한 님이 머문다면
그 지역은 즐거운 곳이다.
Gāme vā yadi vā raññe
ninne vā yadi vā thale
yatthārahanto viharanti,
tam bhūmiṃ rāmaṇeyyakam.
- 전재성 옮김 <테라가타> <담마빠다> 인용
붓다의 이 게송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흐름에 든 경지[수다원]에 들었다.
붓다는 위대한 성자가 머무는 곳이면. 설사 그곳이 온통 가시로 뒤덮인 아카시아 정글로 귀신들이 아니면 살기 어려운 험악한 곳이거나 고행자들이나 살기에 적합한 곳이라고 하더라도 즐거운 곳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사람들은 레와따 장로를 ‘아카시아 숲에서 잘 머무는 수행자’라는 의미의 ‘카디라와니야 레와따(Khadiravaniya Revata)’라고 불렀다.
레와따 장로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마치 마을의 파리가 활짝 핀 연꽃의 꽃송이에서 즐기지 않는 것과 같은 것처럼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즐기는 사람들은 아카시아 정글과 같은 험악한 숲을 즐겨 하지 않는다. 그러나 번뇌가 소멸되고 욕망이 사라진 사람들은 꿀벌이 활짝 핀 연꽃의 꽃송이를 좋아하는 것처럼, 아카시아 정글과 같은 험한 숲도 즐긴다.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