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ㆍ예술 > 이학종의 ‘불교명저 산책’

정찬주 소설가의 구도소설 『시간이 없다』를 읽고

이 학종 | | 2022-12-22 (목) 09:38



 

성철, 혜암, 일타 스님 등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수행자의 삶과 정신세계를 탐구해 온 정찬주 작가가 10여 년의 세월을 응축해 쓴 또 한 편의 구도소설 『시간이 없다』(불광출판사)를 최근 발표했다. 이번 소설은 지난 소설과는 다르게 현존하는 수행자를 주인공으로 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한국 간화선(看話禪) 현대화의 선구자로 알려진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이다. 동시대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는, 언제든 원력만 세우면 만날 수 있는 수행자의 삶과 수행을 소설로 만나는 색다름이 이 소설이 갖는 드문 특징인 셈이다.


이 소설책을 받아 들며 떠오른 첫 생각은 원효 스님이 쓴 발심수행장의 맨 마지막 구절이었다. 

‘몸은 반드시 죽고 마는 것이니 죽은 다음에 받는 몸은 어찌할 것인가?

급하지 아니한가? 급하지 아니한가?

身必有終 後身 何乎

莫速急乎 莫速急乎’

또한 이 소설책을 받아들며 떠오른 두 번째 생각은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이었다. 

‘모든 조건 지어진 것은 소멸하는 것이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vayadhammā saṅkhārā 

appamādena sampādetha’


이 소설의 제목을 ‘시간이 없다(No time left!)’라고 정한 것은 아마도 원효스님과 부처님의 간절함과 상통할 것이다. 이 소설은 수불 스님의 출가 전 이야기부터 출가 후 의심을 타파하는 과정, 그리고 간화선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진력해 온 과정을 주요 일화를 중심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줄기는 간화선이 어떤 수행법이며, 왜 이것을 세상에 알려야 하는지에 맞춰져 있다. 

그동안 한국불교는 불자들에게 간화선의 탁월함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수행은 조사선(祖師禪)의 방식으로 지도해 왔다. 그러다 보니 어디 가서 배워도 간화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지 않고, 아무리 열심히 수행해도 원하는 결과에 도달할 수 없었다. 수불 스님 역시 처음 사람들에게 수행을 지도할 때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수행하러 온 이들에게 ‘부모한테 몸 받기 전에 나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이 누군가?’와 같은 조사들의 유명한 화두를 던져주었지만 사람들은 답을 찾지 못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력과 흥미를 잃어갔다. 이에 스님은 스스로를 성찰하여 문제를 직시하고 단호하게 결심했다. 그것은 ‘옛 조사들의 공안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신만의 활구를 제시해야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이었다. 

“한국불교의 문제점은 법문은 조사선으로 하면서 수행은 간화선으로 하라고 이야기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이율배반입니다. 법문도 간화선, 수행도 간화선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차라리 조사선으로 공부시키려면 조사선으로 수행 방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 33쪽

“진(眞) 의심을 해야지 조작의심을 해서는 안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 의심과 조작 의심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경계를 만나면 두려움을 느끼고 화두를 놓아버립니다. 그러니 갈팡질팡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들고 있는 죽은 화두(사구)가 화두인 줄 알고 참의심이 아닌 조작의심을 품고 골똘히 하고 있으니 상기병이나 걸리고 공부에 진척이 없는 것입니다.” -35쪽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필자는 ‘제대로 된 활구 간화선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는 일종의 수행지침서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들을 때는 알 듯하면서도 돌아서면 무슨 말인지 모르는 허공을 맴도는 그런 뜬구름 잡는 식의 수행법이 아닌 살아있는, 그래서 나를 실제로 변화시키는 그런 수행법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현존하는 수행자 수불 스님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어쩌면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소설을 읽어가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촌각이라도 더 서둘러서 불법의 진수를 전하려는 수불 스님의 단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을 적나라하게, 마치 수불 스님과 대면한 듯 생생한 문체로 그려내고 있는 작가의 내공도 놀라움 그 자체였다. 


활구! 이 소설의 키워드는 활구일 것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수불 스님이 찾은 답은 ‘활구(活句)로써 체험케 하기’였다. 의심만을 지속하게 하는 조사선의 방식을 버리고, 의심을 바깥의 벽으로 여기고 이를 타파해 자신의 본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살아 있는 화두를 던져주는 것이다. 수불 스님의 재가수행자 제접 방법의 핵심은 각자에게 펄펄 살아 꿈틀거리는 활구를 던져주는 그만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 책에는 간화선을 대중화하고 세계화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 온 수불 스님의 행보가 다채롭게 그려진다. 그 과정에서 여러 이름난 이들과 만난 사연도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혜민 스님, 로버트 버스웰 교수(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회원, 전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차드 멍 탄(구글 엔지니어), 베누 스리니바산(TVS모터스그룹 회장)이다. 

정찬주 작가는 10여 년 전 처음 수불 스님을 만났다고 했다. 작가의 아내와 자녀는 수불 스님으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고 변화를 체험했다. 이를 지근거리에서 목격한 작가는 이후 간화선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수불 스님과 간화선을 주제로 책을 쓰리라 다짐했다고 밝혔다. 이후 2019년 스님과 함께한 부처님 성지순례 길에서 자신의 뜻을 전하고 2021년 겨울부터 올해 7월까지 집필에 몰두했다. 긴 시간을 거쳐 탄생한 이 책은, 오랜 시간 글 짓는 수행자로 살면서 선지식들을 만나고, 그들의 가르침을 깊이 배우고, 그들의 삶과 가르침을 이야기로 전해온 정찬주 작가가 자신의 삶에서 체험하고 길어 올린 또 한 편의 역작이다.

“부처님께서 방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되겠어요? 수행은 안 하고 시간을 흘려보내서야 되겠냐는 거지요. 어차피 한정된 시간을 살다가 가는데 어떻게 보내야 하겠느냐는 겁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접할 기회가 왔을 때 공부해야지요. 이런 의미에서 시간이 없다는 거지요. 내 입장에서도 신도들한테 가르쳐줄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시간이 없는 거지요. 앞으로 내가 몇 번이나 가르치겠어요?”

정찬주 작가는 수불 스님의 이 말에서 소설의 제목을 뽑아낸 듯하다. 실제로 수불 스님은 법문 때마다 이런 취지의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간화선 수행에 관심이 있는 분들, 간화선 수행을 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진척이 없는 분들, 또 한국불교의 미래를 걱정하는 분들에게 매우 요긴한 구도소설의 등장이 한국불교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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