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종
2022-12-16 (금) 09:20‘꽃과 나무로 만나는 붓다’- 무화과나무 ㉓
무화과는 인류가 재배한 최초의 과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지중해나 중동에서 많이 먹는 과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남부지방에서는 9월경에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는 과일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중부지방에서도 비닐하우스 등을 활용하여 무화과나무를 재배하고 있다. 겉으로 볼 때 아무리 찾아도 꽃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무화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기독교 구약에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가 수치심을 느끼고 옷 대신 입은 것이 무화과의 잎이라는 이유로 선악과가 무화과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다 보니 무화과는 기독교를 떠올리게 하는 과일로 인식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무화과는 사실 불교와도 깊은 인연이 있는 식물이다. 붓다가 전생에 앵무새 왕이었을 때 무화과나무와 얽힌 가르침이 불전에 등장한다. 붓다는 제따와나에 머물고 있을 때, 제자들에게 검박하게 살아가는 니가마와시 띳사 장로에 대해 이야기한 후, 이어 당신의 과거 생에 대해 설법을 한 적이 있었다. ‘삭까와 앵무새’라는 제목의 이 이야기는 <마하수까 자따까(Mahāsuka Jātaka)>에 전하는데, 무화과나무가 매우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붓다의 전생 이야기는 이렇다.
어느 때 수천 마리의 앵무새가 히말라야 갠지스 강둑에 있는 무화과나무숲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앵무새들은 버릇이 이상해서 한 숲을 정해서 그 숲에 있는 열매를 다 먹고 나면 곧 그곳을 떠나곤 했다. 그런데 앵무새 왕만은 열매가 다 없어진 다음에도 그곳을 떠나지 않고 나무순이라든가 나무껍질, 썩은 과일 등을 먹으면서 남아있었다. 그가 만족하고 검소하게 사는 공덕으로 삭까 천왕의 궁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삭까는 궁전이 흔들리는 원인이 앵무새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삭까는 신통력으로 그 무화과나무를 시들게 했다. 나무는 여기저기 갈라지고 속이 텅 빈 앙상한 나무가 되어 바람이 들이치면 황량한 메아리가 울려 나오고 갈라진 틈과 구멍 사이로 먼지가 풀풀 휘날렸다. 그러나 앵무새는 먼지와 갠지스 강물을 먹으면서도 다른 나무로 옮기지 않았다. 그는 쓸쓸한 바람과 뜨거운 태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무화과나무 꼭대기에 앉아서 살아갔다. 삭까는 앵무새가 정말로 행복하고 만족해한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생각했다.
‘그에게 우정의 미덕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으로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많이 달리도록 해주어야겠다.’
삭까는 아내 수자따를 거위로 변신시켜서 그에게 보냈다. 그녀는 무화과나무숲으로 날아가서 앵무새와 멀지 않은 나뭇가지에 사뿐히 내려앉아 노래를 불렀다.
“푸른 잎사귀와 과일이 풍부하게 달린 다른 나무들도 많은데 앵무새는 왜 말라비틀어지고 속이 텅 빈 고목나무에 앉아 즐거워합니까?”
앵무새가 역시 노래로 대답했다.
“이 나무는 전에 나에게 많은 이익을 주었는데 말라비틀어졌다고 나무를 버려서야 되겠습니까?”
삭까 천왕은 앵무새 왕의 이런 대답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는 곧 자기의 본모습을 드러내어 신분을 밝힌 다음, 갠지스 강물을 끌어와 시든 무화과나무들을 모두 소생시켜 주었다. 그러자 나무들의 잎이 푸르게 무성해졌고, 오래지 않아 열매를 주렁주렁 달리게 되었다.
붓다는 이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말했다.
“그때 삭까는 아난다였고 앵무새 왕은 바로 나였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적은 것에 만족하는 것은 바로 나의 성격이고 습관이다. 그래서 나의 아들 니가마와시 띳사가 나를 스승으로 삼아 작은 것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은 비구는 사마타 위빠사나와 도과(道果)로부터 물러날 수 없고 퇴보할 수 없고 점점 열반에 가까이 다가간다.”
붓다는 이렇게 말하면서 그 감흥을 시구(詩句)로 읊었다.
깨어있음을 즐기거나
방일함에서 두려움을 보는 수행자에게
뒤로 물러남이란 있을 수 없고
오직 열반에 가까이 다가갈 뿐이네
Appamādarato bhikkhu
pamāde bhayadassi vā
abhabbo parihānāya
nibbāasseva santike.
삶의 터전이자 맛난 먹거리를 제공해 준 무화과나무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 앵무새 왕의 의리와 검소한 삶의 태도에 크게 감동한 삭까, 즉 제석천왕이 전생의 아난다 존자였다는 것, 붓다의 전생이었던 앵무새 왕의 감동적인 모습이 그려진 이 이야기는 오랜 시간 가장 가까이서 지냈던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알게 해준다.
이 이야기는 지금 자신의 주변에 있는 지인들, 친인척이나 친구, 스승이나 제자들이 오랜 전생부터 깊은 인연을 맺어온, 지극히 소중한 분들이라는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