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봉규 / 사진 장명확
2022-11-08 (화) 09:02蓮이를 위하여2
그 해의 장마, 반바지 차림으로 작은 탁자 앞에 앉아 있던 그녀. 그녀의 음성, 그녀의 냄새, 그 냄새는 항상 의식이 흐려질 때면 그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낮은 돌 천장 위로 안개처럼 연기가 떠돌고 있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에게는 부모형제도 없다. 그렇다고 재산도 없다. 절망도 없지만 희망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때우고 있다.
세상을 날려버리겠다는 열망으로 조선팔도 역역을 향해 그야말로 부지런히 삐라를 뿌렸다. 눈먼 세상에다가 말하고 싶었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죽어가야 되는가를. 몇 백 년, 아니면 영원히 살 것처럼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매진하던 때가 있었다. 한 마디로 무지막지한 객기였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고향에서 죽고 싶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소원은 이룬 것이다. 분명 이곳에서 우리 집을 보고 죽을 테니까.
어쨌든 그즈음 원산역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러나 그래봐야 겨우 삼 일, 그리고 또 한 번의 일주일, 합쳐서 그녀와 지낸 시간은 열흘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열흘 때문에 일 년을 기다렸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평생을 기다려야 할지도. 나는 울었다. 어쩌면 그녀 때문이 아닌지도 몰랐다. 그녀를 핑계로 삼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몸이 점점 아래로 가라앉았다. 땅속으로 반쯤 가라앉는다. 언젠가 보았던, 어디선가 들었던 개울물이 흐른다. 갑자기 물이 너무 맑다. 곧 겨울이 온다는 신호다. 왜 겨울이면 이렇게 물이 맑아지는가? 여기는 거의 산꼭대기. 그런데 저 물들은 어디서 저렇게 사시사철 쉬 없이 내려오는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오늘도 누워서 뾰죽, 동굴 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보고 또 운다. 물빛과 마찬가지로 하늘은 또 왜 저렇게 푸르른가? 아랫마을의 마지막 남은 미루나무 잎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보고 운다.
저것들을 보면 자꾸만 눈물이 흐른다. 멀리 우리 집이 보인다. 역시 아무런 기척이 없다. 벌써 거의 일 년을 이곳에서 살았다. 다시 겨울이 오면 힘들게 될 것이다. 결코 추워서가 아니다. 그 서늘한, 그 쓸쓸함, 눈곱만큼의 희망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산, 저 나무들은 작년이나 올해나 똑같다.
서리가 내리면 잎을 떨구고, 저희들끼리 서로를 지켜보며 묵묵히 겨울을 견딘다. 마찬가지로 아랫마을도 겉으로 보기엔 똑같다. 우리에게 언제 무슨 일이 있었던가? 저 아랫마을은 내가 있는 이 산처럼 너무도 평온하다.
또 어둠이 찾아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굴 밖에서 무언가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경묵이는 아니다. 어젯밤에 내려갔기 때문이다. 동봉 스님도 아니다. 스님은 한 번도 이 동굴에 오지 않았다. 이 싸늘한 가을 아침에 험산 중턱까지 올라올 나무꾼도 없다. 눈을 감는다. 불안해서가 아니다. 눈을 감고도 살아 있는 것들과 살아 있지 못한 것들의 정체를 알 수 있다. 살아 있는 것들의 움직임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그러나 살아 있지 못한 것들은 규칙이 없다. 두서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 들리는 소리는 분명 나에게 소굴을 빼앗긴 늑대란 놈들이다. 겨울을 부르는 바람 속에서 소란스러운 숲속을 헤매는 놈들의 마음을 나는 안다. 떨어진 나뭇잎은 쉴 새 없이 바람에 흩날린다.
처음 멀찌감치 서 바스락대던 놈들이 이제는 동굴 가까이 다가온다. 황갈색의 북실한 털빛, 어릴 때 저녁 산 그림자 사이로 언뜻언뜻 모습을 보이던 바로 그놈들이다. 조금은 두려움에, 조금은 호기심에 이끌려 밤새도록 지워지지 않던 그 모습 그대로다. 한 마리 뒤에 떼를 지어 숨어 있던 그 음흉함으로 놈들은 지금 내 소굴을 서성거린다. 파랗다 못해 황금빛으로 빛나는 열 네 개의 눈빛은 언제나 내가 살고 있는 동굴을 향하고 있다. 이 근처에는 놈들이 살만한 동굴이나 풀섶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놈들은 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것일까? 놈들은 거의 정확한 시간에 이곳을 찾아온다.
우우웅!
우우웅!
이곳에 오기 전에 놈들은 반드시 울부짖는다. 울음소리를 듣고 나는 놈들의 상태를 확인한다. 정확하게 보름 전, 갑장산 전체가 떠나라고 울부짖던 날, 이곳에 나타난 무리는 분명 일곱 마리였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무리는 분명 여덟 마리였다. 그렇다면 한 마리가 죽은 것이다. 동료들이 죽은 날의 울음소리는 차마 들을 수가 없었다. 놈들의 울부짖음에는 집을 잃고 헤매는 구슬픔이 있다. 피리 소리 같은 처연함이 있다. 그러나 놈들은 무려 일곱 마리다. 나는 혼자다.
놈들은 같은 무리들 간의 위치를 파악하고 다른 무리와의 싸움을 피하려고 울부짖는다. 이 울부짖음은 20리까지 같은 무리에게 위치를 전달해 주기도 하고, 다른 무리들을 유혹하거나 위치를 파악해서 공격을 가해 쫓아버리거나 없애버리기도 한다. 혹 잘못해서 서로가 관할하는 영역에서 만났을 때에는 그야말로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인다. 상대 무리의 새끼 한 마리까지 끝까지 추격하여 목숨을 끊어놓는다. 그런데도 놈들은 같은 무리끼리의 결속력은 다른 어떤 족류보다 애절하고 살뜰하다.
놈들이 이 곳을 찾아올 때면 나는 새삼스럽게 동굴 벽면에 밤낮으로 걸려 있는 등불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것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다.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막연하게 솟아오르는 대상 없는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서다. 그러나 오늘같이 소리 없는 날은 드물다.
연약한 것이거나,
강한 것이거나
눈에 보이는 것이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거나,
멀리 있는 것이거나 가까이 있는 것이거나,
이미 태어났거나 장차 태어나는 것이거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여
그대들은 모두 행복하여라.
나는 저 아랫마을에 살고 있는
내 아들의 이름도 모른다.
내 아들의 얼굴도 모른다.
어젯밤에는 꿈을 꾸었다.
돌담 옆에 벚꽃, 복숭아꽃,
앵두꽃이 만발한 우리 집.
내가 태어난 사랑방,
내가 놀던 앞마당,
내가 신방을 꾸몄던 문간방……
분명히 꿈인 줄 알면서도
깨고 싶지 않다.
그런데 아버지 어머니도 없고,
아내도 없다.
아무도 없다.
오직 나 혼자다.
모두 어디로 갔는가.
텅 빈집에 들락거리는 도깨비불과
머리를 삼단으로 늘어뜨린 귀신들,
그리고 시커먼 모자를 쓴 저승사자.
믿을 수 없다.
다 때려죽이고 싶다. 따발총을 들고 마을로 내려가 내가 아는 얼굴들을 모조리 다 때려죽이고 싶다. 내 아내와 내 아버지를 몽둥이로 때려잡은 그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조리 쳐 죽이고 싶다. 아버지의 뒤통수를 곡괭이 자루로 내려친 선돌이의 사지를 찢어놓는다. 그러면 눈물이 흐른다. 오늘이 며칠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동굴 구석에서 빨갛게 타고 있는 참나무 장작 숯. 비로소 현실을 인정한다. 나는 이제 아무런 힘이 없다. 내장 깊숙이 올라온 열기를 뿜어내기 위해 숨을 고른다. 슬픈 일이다. 눈에 끼었던 덧없는 핏발이 걷힌다. 그러면 거적 데기를 한껏 젖히고 마을을 바라본다. 어쩔 수 없이 눈 뜬 아침은 무섭도록 맑은 하늘, 희뿌연 산안개 천지. 한바탕 미친 눈보라를 피한 집집 굴뚝마다 연기가 오른다.
산을 따라, 언덕을 따라 오르는 연기는 엄연히 살아 있는 사람들 몫이다. 그렇지만 우리 집과 북녘으로 간 동무들의 집 굴뚝엔 연기가 오르지 않는다. 어스름 산그늘이 마을을 덮고 있다. 뛰어 내려가고 싶다. 그러나 죽을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갈 수가 없다. 이 산 아랫녘의 늑대 못을 지나, 작은 돌다리를 건너는 순간 내 목숨은 끝날 것이다. 다시 마을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면 숨이 막힌다. 싸늘한 공기 때문에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두터운 이불을 몸에 두르고 밖으로 나온다. 지독한 감기와 몸살은 언제까지나 떠나지 않는다. 사정없이 흘러내리는 콧물, 까닭 없이 짓무른 눈, 숨을 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가래가 끓는다. 그런데도 몸에서 빠져나가는 허연 입김. 나는 아직도 살아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