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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봉화 축서사 괘불』 첫 서울 나들이”

염정우 기자 | bind1206@naver.com | 2022-11-02 (수) 12:36

2022년 불교중앙박물관 특별전 <등운산 고운사>. 고운사 말사의 괘불 3점 교체 전시 

11월 1일부터 1개월간 18세기 괘불의 수작秀作인 <봉화 축서사 괘불>(보물) 최초 서울 전시

고려시대 불교조각을 대표하는 <안동 봉정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보관 없이 특별 공개


불교중앙박물관(관장 미등 스님)과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주지 등운 스님)는 고운사와 소속 말사의 성보를 엄선하여 특별전시 <등운산謄雲山 고운사孤雲寺>를 성황리에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고운사에서 온전히 보존 전승해 온 국가지정문화재급 성보들의 문화재적 가치를 알리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봉정사와 부석사를 비롯한 영남 북부의 불교문화를 살펴보는 자리다. 



봉화 축서사 괘불

조선 1768년, 봉화 축서사, 보물



이번 특별전시에서는 고운사 말사의 괘불 3점을 전시한다. 특별전시의 마지막 괘불로 <봉화 축서사 괘불>(보물)을 11월 1일부터 1개월 동안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1층에서 공개하고 있다. 괘불은 사찰의 야외에서 설행되는 의식을 위해 조성된 것으로, 대형의 화폭에 제작되었으며 당시의 불교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성보다. 보존 문제로 최근에는 괘불을 현괘懸掛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찰을 방문해도 이를 친견하기 어렵다.


<봉화 축서사 괘불>은 1768년에 제작된 높이 894cm, 너비 509cm의 크기로 대형 불화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배경에 솟아오르는 모습의 구름을 채워 넣어 법석法席에 강림한 부처님의 상서로운 모습을 극대화하였다. <봉화 축서사 괘불>은 석가모니불을 홀로 그린 독존 형식의 괘불이지만, 광배 위로 화불과 보살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화면 구성은 이전에 조성된 괘불에는 보이지 않는 새롭게 나타난 도상이다. 다만 <봉화 축서사 괘불> 이후에 조성된 <서산 개심사 영산회 괘불>(1772)에서 유사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어 두 괘불 간의 연관성을 짐작할 수 있다. <봉화 축서사 괘불>을 조성한 정일㝎一 스님과 <서산 개심사 영산회 괘불>을 조성한 유성有誠 스님은 경상북도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던 수화승으로, <포항 보경사 팔상도>(18세기)를 함께 조성한 기록이 남아 있어 스님들 간의 교유 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봉화 축서사 괘불>의 화기畵記에는 정일㝎一 스님과 낙선楽先 스님, 일성一成 스님 등 10명의 스님들이 1768년 3월 14일에 불사를 시작하여 25일간 괘불을 그리고 4월 부처님 오신날 축서사 대적광전에 점안 및 봉안한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괘불 조성에는 환성 지안喚醒志安 스님의 3세손이자 1769년 봉정사의 경판 조성 불사를 증명證明하였던 벽허 명찬碧虛明賛 스님이 증명으로 참여하고 있어, 당시 영남 북부지역 문중 불사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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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봉정사 목조관음보살좌상

고려 1199년, 안동 봉정사, 보물



또한 본 전시에는 고려시대의 귀족적인 불교문화를 상징하는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과 <안동 봉정사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이 최초로 함께 전시되고 있다. 이번 전시의 마지막 1개월간 <안동 봉정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보관을 쓰지 않은 모습으로 특별공개된다. 높은 보계寶髻(보살상의 머리를 위로 묶은 상투)의 표현은 고려 중기 불교조각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고려시대 보관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과 함께 영남 북부지역의 뛰어난 불교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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