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허와 그의 제자들

경허와 그의 제자들22

우 봉규 | | 2022-10-04 (화) 08:23

만공(滿空)3 



(좌)경허성우 스님 진영. (우)만공월면 스님 진영.
 


만공은 말년에 덕숭산에 전월사를 짓고 지내다 1946년 10월 20일 나이 75세, 법랍 62세로 입적했다. 입적하던 봄, 만공은 시봉하던 원담 스님을 불러 ‘더 살면 험악한 꼴을 볼 것이니 올해 시월 스무날쯤 가는 게 좋겠다’ 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아침 목욕 후 거울을 들여다보며 춘성 스님에게 법상을 맡긴 후 열반에 들었다.

만공과 경허는 훗날의 원담과 만공처럼 실과 바늘이었다. 입술과 이였다. 그들이 한 몸이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우리를 울고 웃기는 천만년 불변의 선화를 볼 수 있다. 사실 경허가 보는 만공은 자신과 조금도 다름이 아니다. 만공이 혹은 경허가 서로에게 보낸 시가 우리를 울게 한다. 다음은 경허가 만공에게 보낸 시다.


雲月溪山處處同  

臾山禪子大家風  

慇懃分付無文印  

一段機權活眼中  


구름과 달, 시내와 산 이르는 곳마다 같은지고.

만고의 인품 이미 대가의 풍모 있더라.

글자 없는 도장을 은근히 분부하노니

일단의 기틀과 권한이 살아있는 눈에 보이는구나.


만공 또한 스승에게 다음과 같이 응대했다.


鏡虛本無鏡  

惺牛曾非牛  

非無處處路  

活眼酒與色  


경허는 경허인데 거울 없거니

소는 소인데도 소가 아니니

아님과 없음의 여러 곳에서

살아있는 눈엔 오직 술과 여자 뿐.


어찌 보면 규격을 일탈한 작품 같지만 그 속내는 스승에 대한 최고의 찬사가 아닐 수 없다. 만공은 스승 경허를 있는 그대로 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善惡過虎佛    

是鏡虛禪師    

遷仕向甚處去  

酒醉花面臥    


착함과 악함이 호랑이와 부처님을 넘는

이 경허라는 스님이여

죽어서 어느 곳으로 향하여 가셨는고.

술에 취해 꽃밭 속에 누우셨도다.


역시 만공은 만공이다. 만공이 아니면 세상 누가 이토록 스승 경허를 알뜰히 알 수 있을까? 기실 경허를 아는 사람은 이 세상 오직 만공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스승 경허에 대한 모진 경애(敬愛)와 경외(敬畏) 그리고 한없는 슬픔. 만공은 그 절절한 비극의 절정, 흐드러진 꽃밭 속으로 스승 경허를 밀어 넣었다. 침몰시켰다. 유폐하였다. 그리고 한잔 술에 취해 그 꽃밭에 누운 그 경허를 아름답게, 너무나 아름답게 산화(散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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