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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전문기자로 일하는 동안 인도 붓다의 성지를 두 차례 순례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 중 한 번은 붓다의 생애에 따라 성지를 순례하는 것이었다. 보통 8대 성지를 순례한다면 10일 정도가 소요되었지만, 생애에 따라 성지를 돌다 보니 15박 16일이 필요했다. 그때의 값진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인도에 가면 누구나 붓다가 된다>(2006, 오래된 미래), <붓다 연대기>(2021, 불광출판사)의 두 권의 책을 집필할 수 있었다. 

지금도 눈 감으면 성지순례 당시의 광경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네란자라 강변에 위치한 우루웰라 마을은 사실 순례 객들이 스쳐 지나가곤 하는 곳이다. 일정이 빠듯하면 건너뛰는 곳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깊이 살피면 이곳은 붓다의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마을이다. 붓다는 입멸이 가까웠을 때, 수행자가 된 이후 받았던 두 번의 특별한 공양을 꼭 짚어 말씀하신 적이 있다. 여기서 붓다가 언급한 두 번의 특별한 공양이란, 대각에 앞서 수자따 여인에게 받은 공양, 그리고 열반에 앞서 받은 쭌다의 공양을 말한다. 우루웰라 수자따 마을은 붓다가 수자따 여인으로부터 최초로 공양을 받은 장소이다. 정각을 성취하기 위한 자양분을 수자따 여인의 공양으로 마련한 것이니, 의미를 부여하자면 얼마든지 부여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우루웰라 마을 삡빨라 고목 아래인 것이다.  

6년 동안의 전무후무한 고행을 끝낸 사문 싯다르타는 ‘죽을 먹고 기력을 회복해야겠다. 덩어리진 음식을 기꺼이 먹을 것이다.’라고 결심한 후 네란자라 강가 우루웰라 마을의 한 언덕에 서 있는 커다란 삡빨라(pippala) 고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삡빨라가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놓은 그 자리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이었다. 싯다르타는 그 나무를 등지고 앉았다. 아래로 강물이 흐르고 주변의 정경은 아름답고 평온했다. 그곳에서 싯다르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그리고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으며,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줄곧 다시 태어나기를 갈망한다. 고통을 반복하는 이와 같은 삶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이런 윤회의 굴레로부터의 자유, 불생의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싯다르타가 생각에 몰두해 있는 동안 밤이 다 지나가 버렸고, 동녘에는 어느덧 동이 트고 있었다. 여명에 눈을 뜬 싯다르타는 마침 한 아름다운 여인이 두 명의 시종을 거느리고 자신이 앉아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우루웰라 마을 촌장의 딸 수자따(Sujātā)였다. 

수자따 여인은 보름날 아침이면 으레 신성한 기운을 풍기는 삡빨라 고목을 찾아와 우유죽을 제물로 바쳐왔다. 세 여인은 나무 앞에 앉아 있는 수려한 용모의 수행자가 자신들이 올리는 제물을 받기 위해 몸을 나툰 목신(木神)이라고 생각했다. 수자따 여인으로부터 받은 공양을 다 마친 후 싯다르타는 수자따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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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에 묘사된 쌀우유를 바치는 수자타. - 포토 달마(말레이시아)의 사진.

삡빨라 나무의 사진을 얻을 수 없어서 상아조각과 그림에 있는 이미지로 대신합니다.(편집자주)

“고귀한 여인이여, 그대가 준 우유죽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보십시오.”

“장차 도를 이루시면 부디 저를 제자로 삼아 바른길로 이끌어 주십시오.”

이날 이후 수자따는 매일 지극정성으로 우유죽을 끓여 싯다르타에게 바쳤다. 그 덕에 싯다르타는 빠르게 예전의 건강을 회복해갔다. 정각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시도가 가능할 수 있도록 고행으로 망가진 몸을 추스르는 과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삡빨라 그늘 아래 앉은 덕에 우유죽을 공양 받아 건강을 회복했으니, 대각 성취에 이 나무의 역할은 지대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삡빨라가 서있던 장소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보리수는 삡빨라, 즉 인도보리수이다. 그런데 문제는 보리수가 한 종류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동남아시아에 널리 분포하는 뽕 나무과 무화과나무속(Ficus)의 나무를 ‘고무나무’ 또는 ‘보리수’라는 이름을 붙여서 부르는데, 전 세계에 존재하는 무화과나무속의 나무는 무려 850여 종에 이른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나무가 무화과나무, 보리수(인도보리수), 그리고 반얀나무(banyan, 벵골보리수)이다. 

반얀나무는 인도 원산의 상록교목으로 높이가 30미터까지 자라고, 사방으로 뻗어나간 가지에서 수많은 공기뿌리가 자라나 뿌리를 내리는 특징이 있다. 그 때문에 줄기는 계속 굵어지기도 하고 수많은 줄기들이 이어진 숲처럼 형성되기도 한다. 공기뿌리가 커튼처럼 늘어져 장관을 연출해 커튼피그트리(Curtain fig tree)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벵골보리수, 즉 반얀나무와 인도보리수(삡빨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벵골보리수는 이파리의 모양이 달걀형이고 잎 끝이 밋밋하지만 인도보리수는 잎 모양이 포플러 잎을 닮았고 잎 끝에 긴 꼬리가 발달되어 있어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헷갈리는 것은 이런 나무들이 동아시아에서는 서식하지 않아 낯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불전마다 나무의 이름이 일치하지 않거나 혼용되곤 한다. 

빠알리 경전 등을 통해 확인한 결론은 삡빨라 나무는 수자따 여인에게 우유죽 공양을 받았던 곳에 그늘을 드리운 나무이고, 붓다가 대각을 이룬 나무는 강 건너편에 서 있던 아자빨라 보리수라는 사실이다. 붓다 전기나 붓다 성지순례 관련서에서 이 부분에 대해 혼선이 빚어지고 있어 차제에 바로잡는다. 그런데도 남는 의문점은 아자빨라 보리수, 즉 아자빨라니그로다(Ajapālanigrodha)에서 니그로다는 벵골보리수[반얀나무]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염소치기[아자빨라]가 쉬었던 삡빨라 나무, 즉 아짜빨라 보리수를- 현재 마하보디대탑 옆 정각을 이룬 장소에 서 있는 인도 보리수가 당시 보리수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맞다면- 경전 결집 당시에는 아자빨라니그로다로 표현했고, 이때의 니그로다는 ‘인도무화과(India fig tree)’의 뜻으로 사용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