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월(慧月)4 - 혜월의 얼룩소 - 

혜월은 묶인 소만 보면 풀어주곤 하였다. 혜월이 가장 싫어한 것은 소를 매어두는 것이었다. 실컷 일을 부려먹고 쉴 때도 왜 소를 묶어두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혜월은 길을 가다 매인 소를 보면 다짜고짜 풀어놓곤 하였다. 그래서 절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혜월이 동네 앞을 지난다는 소문이 들리면 다투어 뛰어나가 먼저 소부터 감시했다고 한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혜월이 풀어준 소가 콩밭을 작살 내놓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콩밭을 소가 다 파먹어 화가 상투 끝까지 오른 소 주인이 절까지 찾아와 혜월에게 덤벼들자 혜월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사람아, 콩밭은 누가 제일 애써 갈았나? 이 소가 아닌가? 그러면 먼저 소부터 먹여야지, 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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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월이 이처럼 소를 사랑하였기에 인근 소들도 혜월을 사랑했다. 이상하게 마을에서 소만 잃어버렸다 하면 그 소는 제 발로 어슬렁어슬렁 혜월이 머무르고 있는 절로 찾아온 것이다.

당시 모든 사찰이 마찬가지였지만 선암사도 살림이 어려웠다. 혜월은 절 살림에 보탬이 될까 하여 밭을 개간하고 스스로 나가 농사일에 부지런히 정진했다. 농사일이 크게 되니 자연 소가 필요하게 되어 혜월이 직접 소시장에 나가 ‘얼룩이’라고 불리는 소 한 필을 사다 기르기 시작했다. 이 얼룩소에 쏟는 혜월의 정은 남다른 것이었다. 손수 소먹이를 끓여주기도 하고 깨끗이 몸을 닦아주기도 했다. 농사일을 많이 한 날이나 시장에서 장을 본 날이면 혜월은 밤늦게까지 소의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하곤 했다. 몇 해를 두고 계속되는 혜월의 정성이 지극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얼룩소도 혜월의 말을 알아듣게 되었으며 서로 눈빛만 봐도 마음이 통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그 얼룩소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밤새 소도둑이 들어 몰래 소를 끌고 간 것이다. 이른 새벽 외양간 문이 열려 있는 것을 제일 먼저 발견한 행자가 소를 잃었다고 고함을 치자 온 절 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원주 스님이 혜월의 방으로 뛰어와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큰스님, 얼룩이가 사라졌습니다. 간밤에 도둑이 들어 소를 몰래 끌어갔습니다.”

방 안에서 이를 들은 혜월은 묵묵부답이었다. 이어 온 사내 대중들이 소를 찾으려고 마을로 내려가는 새벽길을 달려가기 시작했는데 혜월은 뒷짐을 지고 뒷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산정에 오른 혜월은 주위에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두 손을 입가에 대고 소리쳤다.

“얼룩아, 얼룩아!”

이때 마침 소도둑은 뒷산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마을길로 내려가면 들킬까 봐 일부러 뒷산 비탈길을 가로질러 가고 있던 것이다. 멀리서 자기를 부르는 혜월의 목소리를 듣자 끌려가던 얼룩소가 제자리에 멈춰 울었다.

“음머, 음머어!”

소는 끌려가지 않으려 버티고, 도둑은 고삐를 잡아끌고, 혜월은 얼룩소를 부르고, 얼룩소는 혜월을 향해 울고 그러는 사이 날은 밝고 마침내 행자들이 그 소도둑을 잡게 되었다. 소도둑을 잡아 절로 끌고 온 행자들은 도둑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도둑의 비명을 들은 혜월이 뛰어나와 소리를 질렀다.

“소가 다시 왔으면 됐지, 무엇 때문에 사람을 때리느냐?”

그리고 혜월은 도둑에게 용돈까지 챙겨주며 말했다. 

“밤새 소를 끌고 가느라 한잠도 못 자고 얼마나 수고하셨는가? 자, 어서 빨리 일어나 돌아가시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