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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소년 싯다르타는 아버지 숫도다나 왕과 함께 농경제에 참석했다. 갖가지 제물이 차려진 제단에 브라만 승려들의 <베다> 찬송에 감흥은커녕 따분함을 느끼던 싯다르타는 제사 준비에 어려움을 겪었을 사람들을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표정한 표정에 더 아픔을 느끼던 순간 싯다르타는 막 일군 밭이랑에서 기어 나온 벌레를 쏜살같이 날아온 새가 낚아채는, 약육강식의 광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슬그머니 행사장을 빠져나온 싯다르타는 한적한 숲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햇볕을 피해 싯다르타는 숲속 잠부나무(Jambolan, 염부수) 그늘 아래로 들어갔다. 시원한 잠부나무 그늘 아래 두 다리를 포개고 앉은 싯다르타는 곧 사색에 잠겼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그는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고 고요히 잦아드는 숨결의 흐름을 관찰했다. 사려가 깊어지면서 평정이 찾아왔고, 모든 것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붓다연대기> 42~43쪽

싯다르타는 잠부나무 아래에서의 명상에서,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차원이 전혀 다른 안락함을 느꼈다. 이 안락함은 세상의 흐름, 시시각각 다가오는 현상과 대상을 향한 집중이 가져다 준 즐거움이었다. 잠부나무가 제공한 시원한 그늘 아래서의 고요, 그 고요를 바탕으로 한 깊은 통찰이 가져다 준 청량감은 싯다르타에게 큰 위안으로 다가왔다. 

이 장면은, 붓다의 일생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이다. 출가 직후 알라라 깔라마 등 선정의 스승에게 배우고, 6년 고행을 통해서도 얻을 수 없었던 위대한 경지를, 싯다르타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곳 잠부나무 아래에서 잠시 느꼈던 청량한 즐거움, 평정을 기억해냄으로써 마침내 획득할 수 있었다. 

선정의 궁극과 고행의 극대치를 체험한 후, 이 길이 아님을 파악한 싯다르타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어딘가에 분명히 자신이 찾는 궁극적인 경지로 가는 길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 분명 다른 길이 있을 것이다. 올바른 길이….’ 그 순간! 싯다르타의 뇌리에 맑고 선명한 기억이 혜성처럼 떠오른 것이다. 다름 아닌, 어릴 적 파종기에 아버지와 함께 참석했던 농경제 도중에 빠져나와 잠부나무 아래에서 경험했던 선정의 기쁨이 빛처럼 떠오른 것이다. 

“잠부나무 아래에서 경험했던 행복과 희열은 결코 불건전한 것이 아니었다. 관능적이고 부정한 상태와 전혀 무관한 행복과 희열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난 그런 행복과 희열이 두렵지 않다. 나는 이제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색과 사려와 통찰을 갖춘 선정수행의 길을 열어갈 것이다. 이제 내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땅히 그 길로 가야하리라.” - <붓다연대기> 224쪽  

잠부나무 아래에서 깊은 선정에 들어 있는 어린 싯다르타의 모습은 아버지 숫도다나 왕이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할 정도로 성스러웠다. 기록에 따르면 이때 고요한 왕자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평온과 함께 근엄함이 흘렀다. 잠부나무도 왕자의 선정을 방해할 수 없었는지, 해가 이동하는데도 그늘을 옮기지 않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붓다를 깨달음으로 가는 선정으로 이끌어준 잠부나무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불교권에서는 염부수(閻浮樹)라는 음사어로 더 잘 알려졌다. 잠부나무의 원산지는 남부 아시아로 인도와 동남아시아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반낙엽성(半落葉性) 나무로 높이는 10~15m에 이른다. 특히 강바닥과 인접한 곳에서 많이 자라고, 아래로 드리워진 가지에 잎이 짙푸르게 무성하여 나무 그늘을 제공해 가로수로 이용되기도 한다. 

염부제는 인도신화에 나오는 수미산의 사방에 위치한 네 육지 중 남쪽에 위치한 육지를 말한다. 염부(閻浮)는 잠부나무를 의미하고 제(提)는 섬·육지를 의미하는 범어 ‘dvīpa’의 음차이다. 그러므로 염부제는 ‘잠부나무가 자라는 땅’이라는 의미이다. 

붓다의 담마[가르침]를 배워 해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염부제의 인간에게만 가능하다고 한다. 염부제는 이렇듯 히말라야 남쪽의 인도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불교의 우주관에 나타난 여러 세계 중 인간이 사는 세계를 의미하는 말로 개념이 확장되었다. 수미산의 남쪽에 있기 때문에 남염부제(南閻浮提), 남염부주(南閻浮州),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도 부른다.

소년 싯다르타가 잠부나무(염부수) 아래에서 든 선정을, 대승불교에서는 잠부나무 아래 정관(靜觀)이라고 부른다. 이때 싯다르타는 색계(色界) 초선(初禪)에 해당하는 삼매(三昧)에 들었다고 한다. 선정주의와 고행주의를 극복하고, 바른 선정과 통찰의 지혜로 나아가는, 그러니까 위대한 붓다의 옛길을 찾게 해준 나무, 잠부! 인류를 뛰어넘어 모든 생명들의 위대한 스승, 붓다의 탄생 뒤에 잠부나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