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종
2022-08-10 (수) 09:51이학종 칼럼21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역서문화기념관
선가(禪家)에 ‘활발발’이란 말이 있다. 살아 있을 활(活), 물 튀길 발(潑)을 써서 활발발(活潑潑)이다. ‘활발’로는 성이 차지 않아 ‘활발발’이라고 했다. 활발발 세 글자 모두가 물 수자를 부수(部首)로 하고 있다. 계곡이든 하천이든 강이든 자연 그대로의 물은 활발발 그 자체이다. 활발발은 막힘없는 흐름이고, 대자유이며, 생명이고 환희용약이다. 물이 고이면 썩는다. 연못에 물이 유입하지 못하면, 또 출구가 없어 빠져나가지 못하면 반드시 썩게 마련이다. 보(堡)에 막힌 4대강이 녹조로 병들어 썩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막히고 고인 채 썩어가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물은 흐르게 하는 것이 정상이다.
용수철은 탄성(彈性)을 생명으로 한다. 용수철은 탄성을 유지할 때 그 생명력을 갖는다. 눌렸다, 풀렸다 하면서 적절한 기능을 할 때 비로소 존재할 가치를 갖게 된다. 억눌린 용수철은 죽은 시체와 다르지 않다. 얼핏 보면 안정돼 보일 수도 있지만 더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억누린 용수철은 주변 조건이 변해 조금만 어긋나도 폭발하듯 튄다. 물도, 용수철도 자연 그대로, 속성 그대로 둘 때 비로소 가치를 갖는다. 흐르는 물이, 또 풀린 용수철이 바람이나 외력에 흔들려 일순 불안정하게 보이더라도, 도리어 그것이 진정한 안정이고, 평화임을 알아야 한다. 억눌린 것들은 안정이나 평화와 거리가 멀다.
조계종 제37대 총무원장 선거가 임박했다. 며칠 뒤 8월 9일부터 11일까지 3일 동안이 후보 등록기간이다. 그러나 현재 종단 분위기는 ‘단일후보’를 추대하자는 목소리만 존재한다.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는 지난 8월 3일 총무원장 선거와 관련하여 ‘9월 1일 제37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는 단일후보를 추대해 국민에게 기대와 희망을 안겨줘야 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중앙종회 종책 모임들의 ‘단일후보’ 추대 공식화도 잇따를 전망이라고 한다.
교구본사 주지들은 “국민 모두가 고통받고 있는 어려운 시국에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안겨주고 종단 화합과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우리의 염원을 피력한다.”며 “수행과 교화를 본분으로 삼아 사회와 국민을 향해 정진해야 하는 우리는 4년마다 되풀이하는 선거의 폐단을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분들에게 총무원장을 경선으로 선출하는 것은 폐단일 뿐이다. 교구본사주지협의회의 입장은 단일후보 추대로 선거 폐해를 막자는 것이다. 경쟁 구도 시 비난과 비방, 음해가 횡행하는 것의 원인이 후보자 난립 때문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후보자 등록을 일주일 앞두고 영향력 큰 교구본사주지협의회가 단일후보 추대 입장을 공식 발표한 것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출마의 뜻을 가진 승려에게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
이런 흐름들은 후보 단일화도 아닌, 단독 후보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선거가 유권자의 여론을 반영한 민주적 제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행 간선제마저도 무력화하려는 퇴행적 시도로 보인다.
이제 정책선거, 선거공약, 공정경쟁, 여론 수렴 등 선거가 갖는 중요한 가치들을 조계종에서는 볼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폐단이야, 그것을 줄이기 위한 보완대책을 세우는 것으로 해결하는 것이 상식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속담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아예 선거 자체를 없애 폐단을 해결하겠다는 것은 반민주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구나 단독 후보 추대를 주도하는 세력이 소수 기득권 세력들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여론을 폭넓게 반영하는 직선제도 아니고, 그나마 종도들의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현행 간선제조차 무력화하려는 의도의 뒤에 소수 기득권 세력들의 이권 확대, 기득권 공고화라는 음험함이 숨어있는 건 아닐까.
갇힌 물은 안정돼 보이지만 머지않아 썩어 생명력을 잃는다. 눌린 용수철은 얼핏 안정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더 큰 불안을 품고 있다. 조직이나 단체도 다르지 않다. 생명력이 살아 흘러야 산다. 걸림 없이 활발발할 때 발전하고 향상한다. 조계종 선사들이나 지도자급 스님들의 법문, 말씀 중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활발발’이다. 그러나 입으로만 활발발을 외친들 감동은 있을 수 없다. 최근 불서(佛書) 시장에서 선(禪) 관련 서적들이 외면 받는 이유를, 특히 종도들의 정신적 스승역할을 하고 있는 선사들께서는 돌아보시기 바란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단일후보인가? 가만히 살펴보면 이 분위기는 단독후보 추대라고 보기도 어렵다. 차라리 낙점후보라고 해야 맞다. 기득권에 의해 낙점된 이가 어떤 일인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튀기는 물에 옷 젖는 것이 그렇게 두려운가? 차라리 활발발 포기를 공식 선언하는 게 맞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