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水月)2 

일구월심(日久月深), 오매에도 불망하여 외고 다니는 천수경은 그에게 있어 바로 화두요 공안이었던 것이다. 수월은 1887년 겨울 어느 날 골방으로 들어가 먹는 것, 잠자는 것도 잊은 채 천수경을 외우는 정진을 감행했다. 이레째 되는 밤, 사하촌 사람들이 절 마당으로 몰려들었다. 절에서 불기둥이 솟아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자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알고 불을 끄러 달려온 것이었다. 절에 도착해 수월의 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방광(放光)을 한 그는 세 가지 특별한 힘을 얻었다. 한번 보거나 들은 것은 결코 잊지 않는 불망염지(不忘念智)와 잠이 없어진 것 그리고 병을 고칠 수 있는 힘이 그것이었다.

천수경을 외움으로써 그는 천수관음으로부터 손 하나와 지혜의 눈 하나를 얻는 불은을 입은 것이다. 이때 경허가 그가 자나 깨나 큰 소리로 천수경을 외워 마침내 부처를 이룬 것을 기뻐하여 천수경에 나오는 수월관음의 이름을 따 ‘수월’이란 법호를 내려준다. 밝은 달이 바다 위를 환하게 비추었을 때 한 연꽃이 바다 위에 떠 있고, 그 연꽃 위에 나타나는 관음보살의 32가지 모습 중 하나가 수월관음인 것이다.

수월이 스승 경허의 주위를 맴돈 기간은 대략 2년이며 이때 갑산에서 멀지 않은 회령군 팔을면 백천사, 경원군 만월산 월명사, 명천군 칠보산 개심사 등에서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스승을 먼저 보낸 후 간도로 간 수월은 백두산 기슭에 있는 도문시 회막동에서 일반인의 모습으로 살았는데, 3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던 시절의 실력을 발휘해 소먹이 일꾼 노릇을 했다. 그 일을 해서 받은 품삯으로 밤을 새워 짚신을 삼고, 짬짬이 틈을 내어 큰 솥에 밥을 지어 주먹밥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일제의 탄압을 견디다 못해 고향을 떠나 간도로 건너오는 동포들을 위해 길가 바위 위에 주먹밥을 쌓아놓고 나뭇가지에 짚신을 매달아 놓고는 하였다.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알리지 않는 무주상보시를 베풀며 묵묵히 보살행을 실천한 것이다. 훗날 명선 스님의 증언이다.

“나라 잃고 고향을 잃은 백성들이 쫓기고 쫓겨 간 곳이 간도였어요. 고갯마루에서 상처 입고 지친 그들을 기다렸다가 밥 한술을 먹이고 짚신을 주워 보내는 식으로 생의 마지막 수년을 보내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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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한 번도 대우를 받으려 하기는커녕 오직 남의 손발처럼 머슴으로 살았던 수월은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서 이런 식으로 조용히 헌신한 것이다. 다시 수월은 1915년 회막동을 떠나 만주와 러시아 국경 지대에 있는 흑룡강성의 수분하(綏芬河)로 들어갔다. 

그는 관음사(觀音寺)라는 작은 절에서 신분을 감춘 채 한 젊은 스님에게 온갖 욕설과 행패를 당하면서도 6년간 보임을 했다. 그러다 1921년 봄, 수월은 왕청현 나자구(羅在溝)에 들어가 화엄사(華嚴寺)라는 작은 절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도 누더기를 걸치고 날이 밝으면 종일 들이나 산에 나가 늘 말없이 일했고, 탁발을 자주 다녔으며 생식을 했고 잠을 자지 않았으며 산짐승이나 날짐승과 어울려 놀거나 때때로 호랑이를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여전히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었고, 산이나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손수 밥을 지어 날라 주었다. 이때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과 초대 총무원장을 역임한 청담 등이 스승을 찾아와 한철을 지내면서 그의 말 없는 가르침을 배워갔다.

당시 간도엔 마적이 들끓어 집집마다 송아지만한 만주개를 길러 집과 마을을 지켰다. 그 개들은 모르는 사람이 밤에 나타나면 다짜고짜 물어뜯을 만큼 사나왔지만 수월에게만은 꼬리를 흔들며 엎드리곤 하였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주인공이 수월이기에 설령 전설과 동화일지라도 아름답다.

1928년 하안거를 마친 그는 다음 날인 음력 7월 16일, 절 뒤편 송림산에 올라 흐르는 개울물에 깨끗이 몸을 씻고, 잘 접어 갠 바지저고리와 새로 삼은 짚신 한 켤레를 가지런히 놓은 다음 맨몸으로 단정히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세상을 떠났다. 세수 74세, 법랍 45세였다. 그가 원적에 든 후 7일 동안 밤마다 송림산에 불기둥이 치솟는 대방광이 일어났고, 산짐승과 날짐승이 떼를 지어 울었다고 한다. 간도로 건너가 말년을 보낸 수월은 남북이 분단되고 오랫동안 중국과 국교마저 단절돼 있었기 때문에 전설이 되어 잊혔지만, 그렇다고 그의 숨결이 자취도 없이 완전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수월은 온전한 수덕 문중 사람이다. 1989년 문중의 최고 어른인 원담 스님과 상좌인 설정 스님이 수월의 흔적을 찾아 중국으로 들어갔다가 수월이 살던 옛 간도에서 80~90살 든 노인들이 수월을 ‘자기는 없고 중생만을 위했던 자비의 화현보살’로 기억하고 있는 것을 목도했다. 원담 스님도 이제는 고인이 되었고 그의 뒤를 이어 설정 스님이 수덕 문중을 관장하는 방장의 자리에 올랐다. 설정 스님에 따르면 당시만 해도 일광산과 송림산에서 수월을 친견했던 노인들이 있어서 많은 증언을 채록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흑룡강성 왕청현 태평촌에 방 씨 성을 가진 노인이 살고 있었다. 방 씨의 증언을 설정 스님이 전한다.

“수월 스님은 매일 아침 공양 뒤 산에서 내려와 탁발을 하거나 들판에서 이삭이나 무시래기 등을 주워 짊어지고 올라가셨답니다. 송림산은 겨울이면 눈이 많이 쌓여 먹이를 구하지 못한 산짐승들이 굶어 죽는 일이 많은 곳이지요. 수월 스님은 겨울이 오기 전 쌓아둔 이삭과 무시래기를 새와 산짐승들에게 나눠주시어 아사를 면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수월 스님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300리 산길을 단숨에 다녀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축지법을 쓴다고 생각했다는 거에요. 스님이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대기만 하면 병이 나았기 때문에 그 고을에선 의사가 필요 없다는 말도 들었어요.”

방 씨가 12살 소년이었을 때 수월은 소년의 부모에게 찾아와 “이대로 있으면 호랑이 밥이 되니 내 곁에 두라”고 말해 단칸 흙집에서 일주일을 머무르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수월 선사와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방 씨 노인은 훗날 눈물을 흘리며 증언했다.

“그때 보니 수월 스님은 일절 눕지 않았고, 아예 잠도 자지 않았습니다. 5일째 되는 날 오줌이 마려운데도 나가지 못하게 하던 수월이 밖을 향해 ‘이놈아, 이제 그만 가거라!’라고 말해 밖을 내다보니 눈에 불을 켠 호랑이가 있었지요.”

방 씨 노인은 수월이 열반에 들자 마을 사람들이 다비하고는 다음날 현장을 살피기 위해 올라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북이 쌓인 하얀 가을 서리 위로 남쪽을 향해 걸어간 발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고 한다.

 **은사인 진성 대종사 원담 스님을 모시고 현지를 다녀온 설정 스님 외에도 김진태 전 청주지검장이 젊은 시절 지리산의 한 절에서 고시공부를 하면서 수월의 얘기를 전해 듣고 발심해 훗날 간도 현장을 답사한 뒤 수월에 대한 책 <물속을 걸어가는 달>을 펴낸 바 있고, 명선 스님도 <수월평전>을 출간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이면 이런 책을 통해 진짜 수월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