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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품어 안은 사랑 ‘통일보살’의 길 30년!

염정우 기자 | bind1206@naver.com | 2022-07-05 (화) 09:32

법타 스님, 『평불협 30년사』 출간 

통일운동의 불모지, 그 개척의 역사를 담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통일보살의 길을 걸으며 남북불교교류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단법인 평화통일불교협회(회장 중화 법타스님, 조계종 원로의원_은해사 조실)가 올해 창립 30년을 맞아 자주적인 역량과 향후의 역할을 제고한다는 취지로 『평불협 30년사』를 발간했다. 


사단법인 평화통일불교협회(이후 평불협) 창립주역인 법타 스님은 일찍이 남북의 분단으로 인해 발생하는 우리민족의 고통인 민족고를 해결하는 일은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일’임을 절감하고, 통일운동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보살의 길’이라는 의지를 다졌다. 통일운동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불교계와 시대상황에 대처가 대체로 늦는 불교인들을 견인해 현재적 깨달음의 길을 함께 가는 것이 곧 ‘통일보살’의 탄생이며, 이를 행동화한 것이 평불협의 창립이다. 


“분단이라고 하는 것은 민족고民族苦인데, 이 민족고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민족의 행복이나 번영은 없는 것이다. 그걸 절실히 느끼고 내가 금생에 이거나마 하고 가야 되겠다는 원력을 세웠어요.”    - 7월 4일 기자간담회 중에서 -


평불협은 지난 30년 간 남북불교교류를 통한 대북지원과 문화유적지 복원, 인권회복, 학술문화, 포교교육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남북교류의 한 획을 긋는 의미 있는 자취를 남겼다. 특히 북녘 땅에 금강국수공장을 설립하여 굶주린 북한동포들의 삶을 보듬어 살피는 동체대비의 보살행을 실천한 일은 남북 간의 화합과 연대를 더욱 굳건히 하는 인연으로 작용했다.


1992년 2월 12일 평불협 창립이후 통일운동을 주도하던 과정에서 법타 스님은 1994년 7월 10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남영동’에 붙들려가 심한 고초를 겪기도 했다. 법타 스님은 이에 굴하지 않고 그 이후에도 수십 차례 방북하면서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함을 체감하고, <밥이 통일이다>·<밥이 평화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북한의 식량난 해결에 진력했다. 그때가 바로 북한동포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한 ‘고난의 행군’ 시절이었다. 



『평불협 30년사』 본문 364, 36쪽(사진=미디어붓다)



평불협은 1997년 황해남도 봉산군 성불사 인근의 사리원시 만금동에 「금강국수공장」을 설립하고 1998년 초부터 매달 60톤의 밀가루를 인천항에서 북한 남포항으로 보내 하루 7천7백여 명분의 국수를 생산하여 무상으로 나눠주었다. 조불련이 밀가루와 국수배급의 책임을 맡았으며, 평양에도 빵공장을 설립 운영했다. 


김일성 주석의 유언이기도 한 금강산 신계사의 복원은 1998년 3월 24일 평불협 회장인 법타 스님과 북한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위원장 김용순, 약칭 아태)가 30년간 금강산 문화유적 복원을 협약하고 1999년부터 복원을 추진했다. 그런데 통일부가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 독점계약을 이유로 현대아산을 일방적으로 지원함으로써 평불협-아태 공동추진이 지지부진했으며, 그러다가 2003년부터 대한불교조계종이 복원주체로 참가하면서 2007년 10월 13일 불사회향법회를 개최하게 되었고 이후 조불련에 인계했다. 


2005년 10월 31일 복원 낙성된 개성 오관산 령통사는 고려 천태종의 본찰로서, 고려 제11대 문종의 4왕자 대각국사 의천이 출가하고 입적한 사찰이다. 2000년부터 북한당국이 25개 건물동을 복구 추진했으며, 2003년 3월 법타 스님의 주선으로 남측 천태종이 참여해 기와와 단청, 진입로 공사를 지원함으로써 령통사의 복원을 회향하게 되었다. 


통일부에 신고된 평불협의 대북지원금액은 50여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 모든 대북지원교류활동은 2008년 7월 11일 금강산관광객 박왕자 피살, 2010년 3월 26일 북한 잠수함의 무차별 어뢰공격으로 인한 천안함 폭침,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한 일 등 일련의 사건들로 당시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5.24대북제재조치’로 중단되었다. 남북교역과 대북지원사업은 물론 인도적 지원마저 단절되었으며, 급기야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에는 개성공단마저 철수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2022년 현재까지도 발효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재인 정부의 3차에 걸친 남북정상회담(2018.4.27, 5.26, 9.19)도 아무런 진전 없이 오히려 더욱 악화된 현실에 직면해 있다. 


평불협은 이처럼 출범 이래 30년 동안 온갖 희비곡절 속에서도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일’에 기여하고자 진력해왔지만, 지금의 상황은 마치 ‘잃어버린 30년’처럼 허망한 현실 앞에 놓여 있다. ‘통일보살’의 길은 그야말로 인욕으로 점철된 길이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평불협의 지나온 발자취를 남기는 일은 매우 소중한 일로 다가선다.



중화 법타 대종사(사진=미디어붓다)
 


“그 간의 기록을 ‘30년사’에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을 해놨어요. 이것은 개인적으로 보면 금생의 나의 유언이자 유고이고, 나아가서는 우리 불교계가 하나의 통일운동 관계라고 하는 어느 한 부분은 역할을 해왔다는 증명이 이 ‘30년사’입니다.”    - 7월 4일 간담회 중에서 -


평불협의 역사성과 존립의 가치성은 법타 스님으로 함축된다. 분단 이후 남북교류사에서 민간교류단체가 30년의 세월을 지탱해온 경우는 극히 드물다. 평불협은 남북동포들의 서원을 머리에 이고 가슴에 안고 30년의 세월을 걸어왔다. 그 중심에는 법타 스님이 우뚝 서 있다. 아마도 남북교류사에서 정치성을 벗고 동질의 민족성을 소통하며 진정성 있는 교류를 실천해온 인물은 법타 스님이 유일하지 않을까. 


평불협은 남북 간 평화공존의 시절이나, 불신과 대립이 지속되는 여건 속에서도 북한동포들의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조국의 평화통일을 이룩하고자 하는 통일보살의 원력을 변함없이 지켜오고 있다. 


하지만 평불협은 여전히 북한동포들의 배고픔의 현실을 상징하는 '밥이 곧 통일'이라는 신념을 결코 버릴 수 없다.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싼 국제정세 속에 남북관계는 여전히 분단의 역사를 지워내지 못하고 있고, 이명박 정부 이래 이산가족의 만남이나 민간인 교류가 멈춰선 지금, 평불협의 역할과 더욱 성숙된 통일운동이 간절히 요청된다. 


평화통일의 민족적 과업을 단순히 희망 내지 선언으로 남겨서는 안 된다. 결코 식을 수 없는 동포애로 한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마침내 화해와 통일을 이룩하는 날. 통일보살의 원력이 한반도에 구현되어 현세의 지상정토를 일구어가는 보람찬 불사의 노정이 끝나는 날.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고 민족의 화해가 성취되는 그날 평불협의 존립목적은 실현되기 때문에 아마도 그날이 오면 평불협은 기쁨에 넘친 해단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해학 주민교회 원로목사의 「축사」 중에서-



『평불협 30년사』 본문 20쪽(사진=미디어붓다)



 

     중화 법타 대종사는…


충북 청주생. 1965년 속리산 법주사에서 추담(秋潭) 대종사를 은사로 득도한 후 동곡일타(東谷日陀) 대종사께 건당했다.


종비생 4기로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1996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시 클레이턴 대학교에서 「20세기 최근세의 북한불교 변화에 대한 연구」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2020년 2월 동국대학교 대학원 북한학과에서 「북한 조선불교도연맹 연구」로 승려 최초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의원 및 조계종 10교구본사 은해사 조실이다. 1999년 이래 은해사 운부선원과 보경사 보경선원 등지에서 28안거를 성만했으며, 2018년 팔공산 동화사에서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사)평화통일불교협회 이사장․(사)겨레살림공동체 공동대표․(사)동행연우회 명예이사장․동국대학교 총동창회 고문․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총동창회장 등을 맡고 있다. 월남전에 참전했으며, 백마부대 백마사 등 각 군에 10여 개의 법당을 창건했다. 1995년 조계종 총무부장․1996년 은해사 주지(3임)․2009~2015년 동국대학교 정각원장․동국대학교 총동창회 상임부회장․대구불교방송 창립 초대사장․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1989년 평양축전 때 최초로, 그 후 수십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1997년 북한 사리원에 ‘금강국수공장’을 설립해 북한동포들에게 무상으로 국수를 공급하는 등 불교계 처음으로 남북불교교류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면서 통일운동과 사회운동(NGO)에도 진력해오고 있다.


제8회 만해대상(2004.8.12)․체육훈장 기린장(2004.9.13)․제2회 민족화해상(2004.12.10)․제10회 자유민주상(민주통일부문, 2006.4.22)․제4회 대원상(2006.12.1) 등과 통일부장관의 단체표창(2007.3.29)․제21회 조계종 포교대상 특별상(2009.11.14)․세계평화상(2011.11.29)․은관문화훈장(2011.12.7)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북한불교 연구>, <북한불교 백서>,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을 해부하다>, <북한의 절과 불교>, <독도는 통곡한다>, <대마도는 한국 땅>, <간도는 한국 땅>, <중원에 서서>, 및 법문집 <용서해야 사람이다> 등과 다수의 논문이 있다.




 

     책의 구성 


․페이지: 960  ․판형: 규격 외 변형  ․제본: 양장(케이스)


․목차 󰌶 CONTENTS


▮축하휘호_중봉성파 대종사

▮축하휘호_학산대원 대종사

▮슬로건_이시규

▮축  시_목필균

▮우리의 소원

▮홀로아리랑


▮발간사_중화법타 대종사

▮축  사_이해학

▮편찬사_하춘생


▮총설/평불협 30년, 남북교류의 역사가 되다_이지범


▮제1장/평불협 소개

  •제1절/설립취지

  •제2절/법인정관 

  •제3절/조직기구

  •제4절/역대임원


▮제2장/평불협 연보  

  •제1절/설립자료

  •제2절/연혁보고 

  •제3절/사진으로 보는 평불협 30년


▮제3장/평불협 활동과 성과

  •제1절/대북지원

  •제2절/남북교류 

  •제3절/유적복원

  •제4절/인권회복

  •제5절/학술문화

  •제6절/포교교육


▮제4장/평불협 자료실

  •제1절/남북 공문서 

  •제2절/공동 발원문

  •제3절/선언문및기타

  •제4절/이사장 법문

  •제5절/통일 강연문

  •제6절/특별 기고문 

  •제7절/언론 보도문


▮제5장/북한불교의 현황과 조선불교도연맹

  •제1절/북한불교의 어제와 오늘

  •제2절/조선불교도연맹 발자취

  •제3절/북한불교 현장기행_이학종


▮부록

  •남북불교교류 연보

  •회원 및 후원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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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재가 2022-07-06 10: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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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노고에 깊히 감사드립니다.
 책 출판 또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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