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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사람 김성채의 '문화탐방' 53
수원사람 김성채 객원기자 2022-07-01 (금) 11:27
미래에 오실 부처님은 어떤 모양의 전각이 어울릴 것인가?
세계 곳곳에는 놀라운 종교시설이 많기도 합니다. 기원전에 세운 높고 큰 신전, 맨 몸으로 오르기 어려운 곳이며 암반을 깊이 뚫어 돌산 전체를 법당으로 꾸민 것 등은 놀라움 그 자체 입니다.
봉원사 미륵전도 저에게는 놀라운 일로 보였습니다. 연세대학교 터에 창건된 봉원사가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때는 1748년(조선 영조 24년)입니다. 지금 세우는 사찰도 전통사찰이라며 한옥으로 법당을 짓는데, 봉원사는 천장이 평평한 슬래브 집을 지어 미륵불을 모시는 법당으로 삼았습니다. 그렇다고 1748년에 슬래브 집을 지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미륵전 앞에 세운 표지석에 ‘1908년 이곳에서 한글학회가 창립되었다’고 새겨진 것으로 짐작하면, 미륵전은 1908년 이전에 일본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무력으로 침입한 후에 세워졌을 것입니다. 이리 추측하는 이유는 미륵전 정면의 창문이 아치형 창문으로, 이런 모양의 창문은 강점기에 지어진 붉은 벽돌집들에게서 유행한 창문인 때문입니다.
봉원사는 왜 미륵부처님을 슬라브 집에 모셨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내가 출생한 것처럼 미륵불도 먼 장래에 도솔천에서 내려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근거로 봉원사 스님들은 미래세에 출현하실 미륵불을 어떤 모양의 전각에 봉안해야 할 것인가를 고심하였을 것입니다.
그 결과, 과거세와 현세에 출현하신 부처님은 한옥으로 지은 법당이 당연하지만, 미래세에 출현하실 부처님은 지금과는 다른 모양의 전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때맞춰 서구 문물의 유입과 함께 들어온 슬래브 집이 낙점을 받았을 것입니다.
한 칸짜리 초가집도 대들보와 서까래가 있어야 지붕이 만들어지는데, 미륵전은 그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건축 방식이었습니다. 더구나 아치형의 유리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미륵불을 항상 밝혀준다는 것도 매력적이었을 겁니다.
또한 정면에 난 세 짝의 유리 창문을 보면서 ‘세 번의 설법으로 사바세계가 정토를 이루고, 모든 중생이 아라한과를 얻는다’는 말씀도 떠오르면서, 분명히 미륵불을 봉안할 목적으로 세웠다는 상상도 일어났습니다.
미륵전 정면에 문 위에는 “미륵전” 현판이, 좌우측에는 “인등기도소”와 “소원성취발원”이 걸렸습니다.
노파 난타는 ‘제가 가난한 탓에 작은 등불로 공양을 올립니다. 이 공덕으로 내생에 지혜의 광명을 얻어 모든 중생의 어두움을 없앨 수 있도록 해주소서.’라며 등 공양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난타의 등불이 꺼지지 않는 것을 의아해 하는 제자들에게 ‘난타의 등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려는 큰마음을 낸 사람의 보시인 때문에 꺼지지 않는다. 그녀는 등광여래가 될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난타를 잇는 많은 불자들의 마음을 담은 인등이 미륵전 내부를 환하게 밝혔습니다.
동쪽에 있는 불국토, 만월세계
“만월전”은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시는 전각입니다. 이 이름은‘약사유리광여래는 동쪽으로 모래 수만큼이나 많은 불국토를 지나서 있는 만월세계에 계시다’는 말씀에 따라 붙여졌습니다.
조금 전에 칠성각에 모신 약사여래 불상을 보고 ‘왜 칠성각에 약사여래불을 모셨을까?’하며 궁금증이 있었는데, 약사여래를 모시는 법당을 또 보게 된 것입니다.
만월전의 창방과 익공 단청은 제 문양과 색깔이 잘 유지되었지만, 그 윗부분인 부연과 서까래는 팥죽색의 가칠단청만으로 나무가 썩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문짝과 문짝 아래의 청판에 그려진 문양은 비바람에 색깔과 도안이 낡아버렸습니다.
부처님께서 ‘약사여래의 유리광세계는 성(城)과 대궐 곳곳의 대들보와 공포가 모두 7보로 이루어져, 극락국과 같은 모습으로 장엄되어 있다’고 칭찬하셨는데, 단청이 낡아서 안타까웠습니다.
정면 세 칸 모두에 들어열개문을 달았습니다. 열 짝의 문을 활짝 열어서 네 개로 접고, 들어 올려 처마 끝에 매달면 안팎이 시원스레 통하도록 만든 문입니다.
어간문에는 큰 자물쇠가 잠겼는데, 보꾹에는 문짝을 활짝 열어서 얹어주길 바라는 걸쇠가 간절한 모습으로 매달렸습니다.
부처님께서 ‘유리광세계에는 일광보살마하살과 월광보살마하살이 있는데, 모든 보살들의 우두머리로 약사여래의 정법을 지키고 있느니라’말씀하셨습니다. 혹시나 만월전에 두 보살님이 협시하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법당 안이 궁금해졌습니다.
잠겨있는 까닭에 더 궁금해지는 것은 아직도 수양이 덜된 때문일 겁니다. 언제 다시 방문하는 때 뵙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걸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서쪽 극락정토의 장엄을 보려면
극락전에서 눈에 띈 첫 번째는 처마에 늘어선 막새기와였습니다. 수막새의 둥근 마구리에는 연꽃 위에 범어 “옴(ॐ)”자가, 꽃잎처럼 모양을 낸 암막새에는 연잎과 활짝 핀 연꽃이 피었습니다. 내림마루가 끝나는 곳에 놓여 먼 곳을 쳐다보는 망와에는 꽃과 나뭇잎이 무성한 고목이 새겨졌습니다.
서까래 마구리마다 연꽃이 피었는데, 부연에는 녹색으로 가칠만 입혔습니다. 주심포에 익공을 짰고, 창방에 얹은 소로 위에도 작은 익공을 올려서 멋을 냈습니다.
정면 세 칸에 열두 짝의 분합문을 달았는데, 두 짝씩 접어 문을 활짝 열어 제킬 수 있습니다. 문살은 세살 형식으로 짰지만 그 위에 석류나무며 포도나무, 대나무 등 꽃나무를 조각해 넣었습니다. 우주(모서리 기둥)엔 낙양을 달았습니다. 단청과 문살, 낙양은 아미타불의 불국토가 7보로 이루어졌고, 그 보배들이 서로 섞여 이름답고 화려하며 청정하게 장엄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쉬운 점은 만월전과 마찬가지로 입힌 지 오래되어 색이 낡아졌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법장보살은 이미 성불하여 서방에 계시는데, 지옥과 축생과 아귀 등의 고난 가득한 악취(惡趣)도 없고, 사계절도 없이 항상 온화하고 쾌적하여 안락이라고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바세계에 안락의 세계를 가고 싶은 마음으로 꾸며놓았지만, 그 장엄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어서 시간이 흐르면서 낡아지고 쇠해질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미타부처님의 위신력을 지극한 마음으로 찬탄하면, 원하는 바에 따라 그 국토에 태어나게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된다면 속된 말로 ‘따 놓은 당상’으로 성불은 결정된 것이고, 그곳에서는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장엄을 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난존자가 ‘아미타부처님과 서방정토를 보면서, 땅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에 펼쳐진 미묘하고 장엄하고 청정한 자연의 만물을 다 보았습니다.’라고 부처님께 사뢰었기 때문입니다.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보살행을 닦아 극락국에 태어나셨다고 하니, 응당히 극락전에 모셨을 터인데, 영산재 시연시간에 마음이 쫓겨 법당에 들어설 엄두를 못냈습니다.
지장보살마하살께 미리 축원한 이완용은 어찌 됐을까
‘죽음은 끝’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끝이 아니라서 살아온 흔적으로 자신의 몸뚱이를 남깁니다. 몸뚱이를 남기는 순간에 평생을 같이 지냈던 넋이 빠져나오는데, 갈 곳이라곤 명부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몸뚱이를 부려먹으면서 저지른 잘잘못을 심판받게 됩니다. 극락세계에서 일생보처로 태어나 수행하며 지낼 것인지, 나쁜 업보로 죄과가 없어질 때까지 지옥에 있을 것인지는 명부에서의 심판결과에 딸렸습니다.
방금 전에 보았던 극락전이 명부전 위쪽에 위치한 것은 명부에서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은 후, ‘좋은 곳으로 상승한다.’ 는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면이 다섯 칸이나 되는 명부전은 용마루 중앙부분은 살짝 내렸고, 처마의 양쪽 끝은 하늘로 살짝 들어 올려서 용마루선과 처마선이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명부전도 이제까지 본 전각(극락전, 만월전, 칠성각, 영안각)과 마찬가지로 내림마루만 있는 맞배지붕 집입니다. 팔작지붕 집은 내림마루 끝자락이 추녀마루로 이어지고, 추녀마루 끝은 하늘로 치켜 올라가 버선코 같은 아름다운 선을 보여주는 까닭에 많이 짓는데, 봉원사 전각은 왜 맞배지붕 집이 많은지 궁금합니다. 무슨 연유가 있을까요?
맞배지붕 집은 측면 쪽에 지붕이 없는 때문에 노출되는 측벽을 막아주는 풍판을 걸어놓습니다. 봉원사는 풍판이 가려주지 못하는 부분을 화방벽으로 쌓았습니다. 때문에 비바람으로 인한 훼손을 막아주는 것 외에 한옥의 아름다움과 정취가 살아났습니다.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대방 ∥ 사고석과 검은 벽돌을 쌓고, 줄눈을 회반죽으로 치장했습니다.
영안각 ∥ 사고석과 붉은 벽돌을 쌓고, 줄눈을 회반죽으로 두껍게 발랐습니다.
칠성각 ∥ 허튼층으로 쌓은 막돌을 회반죽으로 덮은 다음에 그림 그리듯 냈습니다.
극락전 ∥ 사고석과 검은 벽돌을 쌓고, 줄눈을 회반죽으로 두껍게 발랐습니다.
단청은 창방부터 위쪽엔 금모로단청이 화려하고, 그 아래부터 상인방 사이에는 법당 내부를 밝햐줄 교창을 빗살로 짜서 달았습니다. 정면 칸칸마다 네 짝의 분합문을 달았는데, 각 칸의 분합문을 열어서 모두 제켜놓으면 그것도 빗살교창과 어우러져 볼만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정면 기둥 여섯 개에 주련이 걸렸는데, 오른쪽 두 귀(句)는 지장보살의 덕 높으심을 읊은 연이고, 그 뒤에 이어진 네 귀는 지장보살의 위신력을 찬탄하는 내용입니다.
안인부동유여대지정려심밀유여비장
安忍不動猶如大地 靜慮深密猶如祕藏
지장보살님은 견고한 지계와 금강 같은 정진을 바탕으로
참아내심이 대지 같아서 흔들림이 없으시고
고요하신 생각의 깊이는 비밀창고보다도 깊고 깊다네. (의역했습니다)
지장보살은 미륵부처님이 출현하실 때까지 불구덩이며 칼산지옥에 떨어진 중생을 구제해 주시는데, 못난 중생들은 또 다시 죄를 짓고 지옥에 떨어지기를 반복합니다. 같은 놈을 몇 겁에 걸쳐 건져내려니 인내심이 바닥 날만도 하지만, 지장보살의 참아내시는 힘은 끝이 없고 흔들림이 없으십니다.
주련 글씨를 쓴 사람은 일제강점기 친일행동에 앞장섰던 이완용입니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그 업보로 명부에서의 심판받게 될 것을 두려워했을까요? 조선 후기의 명필이라 일컬어지는 이완용이 스스로 나서서 주련을 써주겠다고 했을까요?
이완용은 지장보살께서 금강 같이 깨지지 않는 인내심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해 주신다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요? 감히 지장보살을 찬탄하는 주련을 썼으니. . .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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