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종
2022-06-08 (수) 09:33이학종 칼럼15
순천 조계산에 자리한 천년고찰 선암사의 공식 명칭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한국불교 태고종 태고총림 선암사이고, 다른 하나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0교구본사 선암사이다. 이는 선암사가 두 종단 사이에 소유권 분쟁 대상인 분규사찰이라는 이야기다.
선암사 소유권 문제와 관련한 소송 2건이 오는 6월 22일과 7월 7일 각각 선고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두 종단 사이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조계종 기관지인 불교신문에 따르면 이번 소송은 땅 소유자 동의 없이 세운 차(茶)체험관을 철거해달라는 소송과 조계종 선암사 등기를 원래 상태인 선암사로 돌려달라는 내용이다. 차체험관 철거 소송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어 광주지방법원에 계류 중이고, 등기말소 소송은 광주고등법원에서 판결이 이뤄질 예정이라고 한다.
조계종은 “일제강점기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는 대처승이 사찰을 차지하고 눌러 앉아 주인 행세를 하면서 조계종의 소유권을 부정하는 소송”이라고 주장한다. 법원이 ‘불법(佛法)에 대처(帶妻) 없다’는 한국불교의 역사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판결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조계종은 법원이 현재 선암사에 머물며 종교행위를 하고 있는 주체를 더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법원이 이런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든 말든 어떻게든 선암사에서 대처승들을 몰아내고 과거로부터 내려온 한국불교의 법통과 정통성을 바로 세울 수도 있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인다.
조계종은 특히 선암사 문제가 단순히 사찰의 소유권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이어온 전래사찰 선암사의 법통과 전통교단(조계종을 지칭) 소속을 송두리째 부정할 것인지, 나아가 1700년 한국불교의 역사와 전통을 정면으로 부정할 것인지를 다루는 한국불교사에 있어 매우 중차대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태고종의 입장도 강경하다. 등기를 원래 상태인 선암사로 돌려달라는 요구는 불교재산관리법이 악법이라고 주장하며 폐지시킨 당사자가 할 소리는 아니라고 일축한다. 또한 조계종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불법에 대처 없다’는 주장도, 국가가 어떤 기준을 세워 판단할 사안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승려의 결혼 허용이 권장할 내용은 아니지만, 일제강점기 취처가 유행한 것이 반드시 일본의 명령 때문만은 아니라는 입장을 내보이며, 만해 한용운이 승려의 결혼을 권장했던 사실을 제기한다.
태고종은 또 조계종이 현재 선암사 머물며 종교행위를 하는 주체를 더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재판에서 유리한 입장을 얻기 위해 최근 선암사에 한해 이중승적[이미 특정교구에 소속된 승려라도 선암사 교구의 승적을 복수로 취득할 수 있도록 한 조치]을 허용하는 특별법을 제정한 것을 두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억지스러운 행동이라고 비난한다.
두 종단의 주장들에는 제각각 크든 작든 명분이 있고, 나름 설득력도 있다. 그렇지만 이미 서로의 주장과 실체를 인정하고 왕십리 안정사와 신촌 봉원사 문제를 타결했던 두 종단이 이제 와 마치 처음 있었던 일인 것처럼 지난 역사와 정통성을 따지며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거니와 볼썽사납기까지 하다.
알다시피 안정사는 절을 매각해 두 종단이 나눴고, 안정사에 거주하던 태고종 승려들은 경기도 양주로 이전해 청련사라는 새절을 세운 것으로 일단락됐다. 분쟁은 사라졌지만 서울 도심에 자리했던 사찰 터는 아파트 단지가 되고 말았다. 신촌 봉원사는 절을 점유해온 태고종의 기득권을 인정해 절은 태고종으로, 10만여 평에 이르는 소유지는 당시 약 1100억 가량의 지가(地價)를 따져 사찰 입구 쪽 23,000여 평은 조계종이, 사찰 주변 77,000여 평은 태고종이 소유하는 것으로 합의해 오래 지속된 분규를 마무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암사의 경우도 앞의 두 분규사찰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선례와 서로를 인정하는 합리적 입장에서 해결할 필요가 있다. 만에 하나 물리적 충돌까지 일어난다면, 그렇지 않아도 교세가 급격하게 위축되는 상황에서 한국불교는 회복 못할 깊은 수렁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필자 개인적 입장으로는, 태고종에도 하나 정도의 총림사찰은 있어야 한다는, 그동안 교계 안팎에서 비교적 공감을 얻었던 중재안을 기본으로 하되, 선암사 말사격인 순천 향림사와 도선암 등은 조계종에 양도하는 선에서 원만한 합의를 이룬다면 어떨까 싶다. 조계종의 몇몇 전 총무원장들도 “조계종과 태고종은 승려의 분한만 다를 뿐 나머지는 같다”라는 식의 이른바 ‘한 뿌리’ 발언을 했던 적도 있지 않은가.
태고종도 이번 기회에 분규가 원만하게 타결된다면, 만암 스님 등의 뜻을 받들어 선암사를 모범적인 수행도량으로 운영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태고종이 결혼을 인정하는 종단이기는 하지만 선암사만큼은 독신승들이 거주하면서, 다른 어떤 도량보다도 더 수승한 청정수행도량의 위상을 확고히 하겠다는 대불교계, 나아가 대국민 약속을 한다면 어떨까.
부디 조계 태고 두 종단이 슬기롭게 선암사 분규를 끝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