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락객常樂客이 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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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자로서 어느 정도 일가를 이루었다고 자신하는 경허는 어느 날 은사 계허 스님의 권속을 찾아 천안으로 가는 도중 홀연 폭풍우를 만났다. 더구나 캄캄한 밤길, 그는 여러 집 대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폭풍우 소리만 귓전을 때릴 뿐 아무 인기척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 경허는 억수같이 내리는 장대비를 피해 급히 어느 집 처마 밑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대뜸 집주인이 내쫓았다. 다른 집으로 갔으나 역시 똑같았다. 그 마을 수십 가구를 다 가보아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경허는 마지막 집에서 주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세상인심이 아무리 험하지만 처마까지 내주지 않는 성품을 나무랐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경허는 대뜸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 그곳엔 널려있는 시체들이 썩어가고 있었다. 노인이 조용히 꾸짖었다.

 “이봐 땡중? 걸리면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돌아 오늘 멀쩡히 서 있던 사람도 내일 죽어 나가는 판인데 자네는 어떤 사람이기에 죽는 곳에 들어왔는가?”

 바로 그때 축 늘어져 있던 송장이 경허의 발목을 잡았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자신도 전염병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모골이 송연했다. 그의 몸이 전율하기 시작했다. 경전 구절을 수없이 암송해도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숨이 가빴다. 그곳을 뛰쳐나와 달려간 곳, 그는 비 내리는 주막에 술상을 놓고 앉아 눈을 감았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