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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인생응원가18

정 찬주 | | 2022-05-04 (수) 08:26


                           참아라, 원망은 사라지나니


                                                          정찬주(소설가)




삽화 정윤경
 


마중물 생각


몇 달 전에 상을 추천하겠다는 지인의 호의를 뿌리친 적이 있다. 선배작가로서 후배작가를 격려해야 할 나이 칠십에 무슨 상이냐고 거절했던 것이다. 추천하신 분이 다시 전화를 해왔다. 상을 주겠다는 주최 측이 나를 지목하고 있으니 자신의 체통을 생각해달고 하는 하소연이었다. 그래도 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아 친구에게 전화로 상의했다. 친구는 어차피 가면을 쓰고 사는 세상이니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상을 주는 단체도 가면을 쓰고 있고, 상을 받는 자도 가면을 쓰고 있으니 세상의 관습을 굳이 피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가면을 쓰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작가는 작가라는 가면, 직장인은 직장인이라는 가면, 정치인은 정치인이라는 가면, 자칭타칭 지도자는 지도자라는 가면 등등 말이다.

<반야심경>의 핵심은 공(空)을 깨달으라는 것이고, 그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가면을 벗어버리고 살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요즘 너도 나도 편을 가르고 정치의 말을 하고 산다. 옳으니 그르니 시비(是非)가 넘쳐난다. 상대의 가면을 보고 야유와 조롱, 원망, 험담이 난무하고 있다.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나 스스로 그런 것에 ‘인생을 낭비한 죄’를 짓고 사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가면을 보고 그러했다면 허망하게 헛발질한 것과 무엇이 다를까. 가면 너머의 진실을 보려는 자기성찰을 했으면 좋겠다. 부처님도 곡진하게 여러 비유를 들어 자기성찰을 당부하시고 있다. 


부처님 말씀과 침묵


원망으로 원망을 갚으면

원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오직 참아야만 원망은 사라지나니

이 법은 영원히 변치 않으리.


마음에 모진 생각 버리지 못하고

욕심에 따라 치달리면서

스스로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면

그에게는 법복이 알맞지 않다.


진실을 거짓으로 생각하고

거짓을 진실로 생각하면

이것은 끝내 그릇된 소견

그에게는 부질없는 망상만 따른다.


그러나 진실을 진실인 줄 알고

거짓을 보고 거짓인 줄 알면

이것은 떳떳하고 올바른 이해

그는 반드시 진리에 도달하리.


지붕을 성글게 이어 놓으면

비가 내릴 때 빗물이 새듯이

마음을 조심해 간직하지 않으면

탐욕은 곧 이것을 뚫고 만다.


경전을 아무리 많이 외워도

실행하지 못하는 게으른 사람은

남의 소를 세는 목동과 같아

부처님 제자로서 보람을 얻기 어렵다.


마음은 고요히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여 그침이 없다.

어진 이는 이것을 바로 깨달아

악을 돌이켜 복을 만든다.


부모 형제가 어떻다 해도

친척들 하는 일이 어떻다 해도

정직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이 

내게 짓는 행복보다는 못하리.

                                         ― 『법구경法句經』


갈무리 생각


내 산방 뒷산 이름은 계당산이다. 보성군과 화순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해발 5백 미터가 조금 넘는다. 그런데 허공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의 운명이 참 의미심장하다. 바람을 만난 빗방울이 내 산방 쪽으로 떨어지면 영산강이 되고, 보성군 쪽으로 넘어가면 섬진강이 된다. 어떤 바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빗방울이 가는 길은 달라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친구를, 어떤 스승을, 어떤 아내를, 어떤 남편을, 어떤 종교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달라진다. 강은 빗방울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흐름이다. 사람도 나이 들면서 지향하고 의지하는 것들이 알게 모르게 정리된다. 그러고 보면 내 산방 뒷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도 내게 인생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  선지식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가? 내 친구, 내 스승, 내 아내 혹은 남편, 내 종교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숨김없이 다 드러난다. 누구에게 물어볼 것도 없다. 내 마음의 친구, 내 마음의 스승, 내 마음의 가족, 내 마음의 종교가 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모 대학을 정년퇴직한 친구는 내 산방을 보고 “재자불자 집 같네.” 하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 내가 암자 같은 집을 산중에 짓고 사는 분명한 인연이 있다. 결코 우연이 아닐 터이다. 젊은 날 암자기행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내 산방이 암자를 닮아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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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경담 2022-05-04 08:31:43
답변  
아, 알겠다.
윤회만이 윤회가 아니다.
내 젊은 날의 암자기행이 산방 암자를 닮은 집으로 윤회고 있다.
윤회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의 친구, 스승, 가족, 종교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멸이 찰나라면, 생도 찰나다.
윤회는 유정무정이 왼통 한 몸으로 일렁이는 바다이며
한 몸으로 부서지는 파도다.
화엄 2022-05-04 10: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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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아침에 미역국을 끓였는데, 경비아저씨 생각이 먼저 난다. 아저씨에게 미역국과 사과 요구르트를 갔다 드렸다. 또 병 중에 있는 언니에게 드실 수 있는 것을 보내고, 우크라이나 대사관에 작은 금액이지만 송금을 했다. 얼마 안되지만 나누고 나니 안에서부터 기쁨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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