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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신념은 온통 조계종을 다시 살리는 것이었다. 오래된 교단이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종도로서 도저히 외면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조계종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이기에 그분은 종단 대신 교단이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했다. 그분은 교단이 망가지는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적주(賊住)들이 교단의 중요한 자리를 대거 차지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명리(名利)를 좇는 자들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그분이 말하는 적주들은 이른바 보천교 차 천자에서 파생된 세력들인데, 이들이 대거 승려로 위장해 교단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일면 황당해 보이기도 해서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불교를 접한 지 수십 년이 흘렀는데 차 천자의 영향이 남아 있겠느냐?’고 되묻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분은 ‘그건 모르는 소리’라며 ‘과학자들 상당수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몰라서 기독교를 믿고, 상당수의 산부인과 의사들이 동정녀가 아기를 낳았다는 교리가 합리적이어서 신봉하겠느냐?’고 답하곤 했다. 어릴 적이나 자기 철학이 정립되기 전에 굳어진 신앙은 세뇌의 수준을 뛰어넘는 매우 무서운 신념체계라는 설명이었다. 그분의 이런 주장에 백퍼센트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명리승들과 이권을 나누며 공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정말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분이 말하는 명리승들은 본분사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명리를 추구하고 확대하는 데에만 골몰하며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자들이다. 그분은 이들의 위세가 커지면서 급기야 도척(盜跖)의 수준에 이르렀고, 어느 순간 그런 도척이 여러 명으로 늘어났다며 탄식을 금치 못했다. 도척이 하나라면 교단이 망할 지경까지 가지는 않겠지만, 동시에 여러 명이 활거하면 망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 한국불교 교단은 후자의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이었다.   

그분은 교단이 올곧게 서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외부, 즉 올바른 정치세력들이 집권하는 것이 중요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을 지지했지만 그들의 한계를 목도했을 뿐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김대중은 조계사에 공권력을 투입하는 과오를 저질렀고, 여의도 셈법에 갇힌 문재인은 끝내 명리승들과 적주들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수구세력이 정권을 잡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이번에도 정권 재창출을 기대했지만, 참으로 안타깝게 되었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분은 무너져가는 교단을 외면할 수 없어 기회 있을 때마다 종단 개혁에도 앞장섰고, 원로들에게 호소도 해보았으며, 목숨을 건 단식도 해보았지만 끝내 교단을 바로 세우지 못했다고 긴 한숨을 내쉬곤 했었다. 연초 통화에서도 그분의 걱정은 온통 무너져가는 교단이었다. 이제 그만하시고 건강을 잘 돌보시라고 권했지만, ‘그렇게 살아서 어떻게 불보살님을 대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분은 현실이 아무리 암담하다 해도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 한 해 전에 입적한 만해 스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이 될 줄 알고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오직 애국‧애민의 각오로 싸운 것처럼, 교단개혁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해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소신이었다. 

그런 그분이 지난 1월 27일 종단으로부터 제적 판결되었고, 그로부터 2주(14일) 지난 뒤에 제적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지난 3월 25일, 한 스님의 페이스북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분과 뜻을 함께 했던 다른 네 분도 제적의 징계를 받았다. 이런 민감한 소식이 한 달 넘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불교계 언론에서 기사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니, 사실이라면 황당한 일이다. 아무려나, 교단 개혁을 주창한 것이 내쫓기는 사유가 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징계를 하게 된 죄목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살펴보니 대부분 반박이 가능한 것들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그분은 한때 필자가 근무했던 신문사의 발행인으로 모셨던 분이기도 하다. 고령임에도 시대를 꿰뚫는 혜안을 갖추고 있고, 평생 진보와 개혁의 가치를 견지하며 살아온 분이다. 고속철도가 경주 도심을 관통하는 것을 혈혈단신 단식투쟁으로 저지했고, 독재와 싸우며 민주화를 견인한 고 리영희 선생을 보답의 뜻으로 신문사 고문으로 모시기도 했다. 이런 성정을 가진 그분이 평생을 몸담은 교단을 위해 개혁을 촉구하며 목숨 건 단식을 감행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직 바람에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시절에 위법망구의 삶을 살아온 어른이 종단 밖으로 내쳐졌다. ‘패악질’은 이럴 때 사용하는 용어가 아닐까 한다.

필자가 사는 현묘재에는 요즘 매화 꽃망울이 시시각각 한두 송이씩 터지고 있다. 그젯밤엔 내내 제법 강한 봄비가 내렸는데도 더 많은 매화가 망울을 터뜨렸다. 뼈를 에이는 추위를 견뎌내고 코끝 찌르는 향기를 내뿜는 매화꽃처럼, 거센 빗줄기를 거뜬히 이겨내고 향기를 내뿜는 매화향기처럼, 온기(溫氣)도 없고 옳고 그름[正邪]도 사라진 삭막한 한국불교에도 정법의 봄소식이 찾아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