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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가 된 여성수행자들 41

이 학종 | | 2022-03-25 (금) 07:52

불행한 양녀에서 왕비 된 후 수행의 길로 든 사마와띠① 


우데나 왕(rājā Udena)은 왐사(Vamsā) 국의 왕 빠란따빠(Parantapa)의 아들로 태어나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올랐다. 왐사 국은 부처님 당시 인도 서북부의 16대 도시국가 중의 하나였다. 당시에는 마가다, 꼬살라, 앙가, 왐사 등의 도시국가와 사캬 왕국 등의 부족 군주국가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 빠란따빠의 대를 이어 왕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임신하였을 때 왕이 정표로 값비싼 반지를 왕비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는데 그때 코끼리 어금니만큼 큰 부리를 가진 큰 새가 내려와서 그녀를 낚아채 가버려서 알라깝빠(Allakappa) 수행자 거처의 나무에 걸쳐놓고 가버렸다는 신비한 일화가 있다. 그는 이렇게 알라깝빠의 교육을 받으며 자라서 부왕 빠란따빠를 찾아갔고, 마침내 왐사 국의 왕이 되었다. 

우데나 왕의 휘하에 고사까(Gosaka)라는 유능한 재정관이 있었다. 왕은 고사까의 양녀였던 사마와띠(Sāmāvati)를 보자 한눈에 반해 청혼했고, 마침내 결혼해 왕비로 삼았다. 빠란따빠 왕은 그다지 종교적인 인물은 아니어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아난다 존자에게는 가사공양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마와띠는 고사까 재정관의 친딸은 아니었다. 사마와띠는 고사까 재정관과 서로 얼굴을 모르는 채로 친구 관계를 맺었던 밧다와띠야(Bhaddavatiya) 장자의 딸이었다. 어느 날, 밧다와띠야는 그가 사는 마을에 역병이 돌자 가족을 살리기 위해 서둘러 아내와 딸, 사마와띠를 데리고 담장을 넘어 집을 빠져나왔다. 그는 왐사 국의 수도 꼬삼비(Kosambī)에 있는 친구 고사까 재정관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으로 굶주림과 비바람에 시달리며 가까스로 꼬삼비에 도착해 난민들이 머무는 수용소의 숙소로 들어갔다. 

밧다와띠야 장자가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가면 자식을 보는 어머니도 좋아하지 않는 법이라오. 사람들이 그러는데 여기 내 친구(고사까)가 여행자와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에게 하루에 천 냥 어치의 음식을 보시한다고 그럽디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삼일 머물면서 딸을 고사까에게 보내 음식을 가져오게 합시다. 그리고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리고 혈색이 돌아오면 그때 친구를 만나는 것이 좋겠소.”

“그래요. 그렇게 하는 게 좋겠어요. 그렇게 해요.”



수행센터 중앙에 위치한 시마홀에서 결계의식을 진행하고 있는 미얀마 비구들.​(사진=이학종)
 


그들은 여행자 숙소에서 임시로 머물기로 했다. 다음날 식사 시간이 되자 여행자들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은 음식을 타러 고사까 재정관이 음식을 나눠주는 곳으로 향했다. 부부는 딸 사마와띠에게 말했다. 


“얘야, 너도 가서 음식을 타 오너라.”


사마와띠는 좋은 가문에 태어나 부잣집 딸로서 살아온 자존심에 내심 거슬렸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동냥 그릇을 들고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앞으로 갔다. 


“몇 사람 몫이 필요한가?”

“세 사람 몫입니다.”


그들은 세 사람 몫의 음식을 주었다. 그녀는 음식을 가지고 와서 부모에게 드렸다. 세 식구가 음식을 놓고 앉았을 때 두 모녀가 장자에게 말했다. 


“고귀한 가문에게도 불행은 다가오는 법입니다. 우리는 상관치 말고 많이 드세요. 우리는 걱정하지 마세요.”


모녀가 음식을 많이 드시라고 권하자 밧다와띠야 장자는 순간 굶주림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음식을 먹었다. 그는 먹은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밤새 끙끙 앓았다. 다음날 아침 태양이 솟아오를 때 그만 죽어버렸다. 모녀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울부짖으며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어서, 다음날 사마와띠는 두 번째로 음식을 타러 갔다. 


“몇 사람 몫이 필요한가?”

“두 사람입니다.”


그녀는 두 사람 분의 음식을 가져와서 어머니에게 드리고 많이 드시라고 권했다. 우선 어머니부터 기력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도 권하는 대로 음식을 먹고는 곧바로 탈이 나 복통을 호소하다가 그날로 죽어버렸다. 

혼자 남은 사마와띠는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자기에게 닥친 불행을 한탄했다. 다음 날 그녀는 심하게 배가 고파 눈물을 흘리며 거지들과 함께 음식을 타러 갔다. 


“몇 사람의 몫이 필요한가?”

“한 사람입니다.”


음식을 나누어 주는 책임자는 밋따(Mitta)라는 사람이었다. 소녀가 삼일 동안 음식을 받아 가는 것을 눈여겨보고 있던 그가 마침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사마와띠에게 소리쳤다. 


“썩 꺼져라! 이 천한 여자야! 너는 오늘에서야 네 위장의 크기를 알았단 말이냐?”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가득한 귀족 가문의 딸은 가슴에 칼을 맞은 것처럼,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가슴 아파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그제는 세 사람 몫을 가져가고 어제는 두 사람 몫을 가져가고 오늘은 한 사람 몫을 가져갔으니, 이제야 네 뱃속의 양이 얼마인지 안 모양이구나.”

“선생님, 그게 아닙니다. 제가 가져간 음식은 저 혼자 몫으로 가져갔던 것이 아니에요.”

“그럼 그렇게 많이 가져간 이유가 무엇이냐?”

“선생님, 그제는 세 사람이었고, 어제는 두 사람이었고, 오늘은 나 혼자 남았어요.”

“어떻게 그런 계산이 나온단 말이냐?”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어난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밋따는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면서 말했다. 


“오오, 불쌍하고 귀여운 소녀야. 내가 오해를 했구나. 사실이 그렇다면 걱정하지 말거라. 이제까지는 네가 밧다와띠야 장자의 딸이었지만 오늘부터 내가 너를 딸로 삼으마.”


그는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고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 양녀로 삼았다. 

어느 날 그녀는 음식을 나누어주는 식당에서 시끄럽게 다투는 소리와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양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음식을 나누어줄 때 사람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하지 않나요?”

“이 사람들은 통제할 수 없단다.”

“그래요? 그런데 그건 간단한 문제에 불과해요.”

“어떻게 그게 간단한 문제라는 말이냐?”

“식당에 울타리를 치고 들어오는 문과 나가는 문을 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평화롭고 조용하게 음식을 타 갈 거예요.”


양아버지는 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쳤다. 


“옳거니,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구나.”


그는 사마와띠가 제안한 대로 시행을 해보았다. 그때까지 그녀의 이름은 사마[주근깨가 많은 여인]였지만, 이렇게 울타리(와띠)를 쳐 문제를 해결하고 난 후부터는 사마와띠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날 이후 식당에서는 떠들썩한 소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한편 고사까 재정관은 식당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오히려 그 소리를 즐기고 있는 편이었다. 그 소리가 들리면 항상 ‘저 소리는 내 식당에서 나는 소리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삼일 전부터 그의 식당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어느 날 음식을 나누어주는 책임자인 밋따가 그동안의 상황을 보고하러 찾아오자 물었다.  


“요즈음도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고 있소?”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삼일 동안 시끌벅적한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으니 어찌 된 일이오?”

“사람들이 음식을 받으면서 떠들지 않도록 울타리를 치고 입구와 출구를 만드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럼 전에는 어째서 그렇게 하지 않았소?”

“전에는 그런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럼 어떻게 그런 방법을 알았소?”

“제 딸이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요? 그대에게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딸이 있었단 말이오?”

 

밋따는 전염병이 발생할 때부터 사마와띠라는 소녀를 자신의 장녀로 입양할 때까지 밧다와띠야 장자의 가족에게 일어난 불행을 자세히 설명했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으면 왜 나에게 진즉 말하지 않았소? 내 친구 밧다와띠야의 딸은 곧 내 딸이오.”


그는 즉시 사람을 보내 사마와띠를 데리고 오게 한 후 물었다. 


“소녀야, 네가 밧다와띠야 장자의 딸이냐?”

“그렇습니다. 어르신.”

“아무 걱정하지 마라. 나는 네 아버지의 친구이니 이제부터 넌 내 딸이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고 장녀로 삼았다. 그리고 오백 명의 시녀로 하여금 시중을 들게 하였다.  

어느 날 꼬삼비에 축제가 시작되었다. 평소에는 외출하지 않는 귀족 집안의 딸들도 축제 때는 시녀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와 강으로 목욕하러 가곤 했다. 그날 사마와띠도 오백 명의 시녀들을 데리고 궁전 뜰을 지나 강으로 목욕을 하러 가는 중이었다. 이때 우데나 왕이 창가에 서 있다가 사마와띠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시종들에게 물었다. 


“저 여인들은 누구의 무희들인가?”

“왕이시여, 저들은 무희들이 아닙니다.”

“그러면 맨 앞에 걸어가는 소녀는 누구의 딸인가?”

“왕이시여, 저 소녀는 재정관 고사까의 딸 사마와띠입니다.”


우데나 왕은 그녀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다. 그는 고사까 재정관을 불러 말했다. 


“당신의 딸을 내게 보내시오.”

“송구하오나, 보낼 수 없습니다.”

“왜 그러시오? 고집부리지 말고 내게 보내도록 하시오.”

“폐하, 제가 딸을 폐하에게 보낸다면 사람들은 제가 출세를 위해 딸을 이용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끝내 왕의 요청을 거절한 고사까 재정관이 돌아가자 화가 난 왕은 군대를 보내 재정관 부부를 집 밖으로 쫓아내고 집을 폐쇄시켰다. 사마와띠가 목욕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군인들이 길을 막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아버지, 무슨 일이에요?”

“딸아, 왕이 너를 자신에게 보내라고 강요했단다. 내가 그럴 수 없다고 하자 우리를 집 밖으로 내쫓고 이렇게 집을 폐쇄시켰구나.”

“아버님, 왕이 명령을 내릴 때 ‘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딸과 시녀를 데리고 가시겠다면 ‘기꺼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딸아,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그렇게 한 거란다. 그러나 네 뜻이 그러하니 네 말대로 하겠다.”


고사까 재정관은 급히 사람을 보내 왕의 뜻대로 하겠다고 전했다. 왕은 고사까 재정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왕은 사마와띠와 시녀들을 왕궁으로 데리고 가서 그녀와 결혼식을 올리고 첫째 왕비 자리에 앉혔다. 그녀의 시녀들은 모두 궁녀가 되었다. 

우데나 왕은 사마와띠 왕비에게 매일 꽃을 사 오도록 까하빠나[kāhapaṇa: 황소 한 마리의 값이 12까하빠나였음] 여덟 닢을 주는 습관이 있었다. 왕비에게는 쿳줏따라(Khujjuttarā)라는 시녀가 있었다. 쿳줏따라는 고사까 가문의 보모였다가 사마와띠가 왕비가 되자 왕궁으로 따라가 그녀의 몸종이 되었다. 그녀는 매일 정원사 수마나(Sumana)에게 가서 꽃을 사 오는 심부름을 담당했다. 어느 날 그녀가 꽃을 사러 갔을 때 수마나가 말했다. 


“오늘 나는 위대한 스승 부처님을 초청했습니다. 오늘은 이 모든 꽃을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데 사용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잠시 기다려서 함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읍시다. 그러면 남은 꽃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녀는 남아서 수마나를 도와주기로 했다. 수마나는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시중을 들었다. 공양이 끝나고 수마나가 부처님의 발우를 받아들자 부처님께서 법문을 시작했다. 이때 쿳줏따라도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크게 발심하여 순식간에 성자의 흐름에 든 경지[수다원과]를 얻었다. 사실 쿳줏따라는 이제까지 까하빠나 네 닢으로 꽃을 사고 나머지 네 닢은 착복해왔었다. 그러나 그날은 까하빠나 여덟 닢으로 꽃을 사서 돌아갔다. 사마와따 왕비는 여느 때보다 꽃의 양이 많은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쿳줏따라여, 오늘은 대왕께서 꽃을 사라고 두 배로 돈을 주었느냐?”

“아닙니다. 왕비님.”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꽃이 많은 거지?”

“사실 이전에는 까하빠나 네 닢은 제가 챙기고 나머지 네 닢으로 꽃을 사서 가져왔습니다.”

“그래? 그런데 오늘은 왜 돈을 챙기지 않았지?”

“오늘은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신 분으로부터 법문을 듣고 법을 이해하였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이 사악한 하녀야, 이제까지 훔친 돈을 모두 내놔라’라고 꾸짖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마와띠 왕비는 매우 영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도리어 쿳줏따라를 착한 여인이라고 부르며 간곡하게 요청을 했다. 


“착한 여인이여, 그럼 그대가 불사(不死)의 감로수라도 마셨단 말인가? 정말 그렇다면 나도 그 감로수를 마시게 해줄 수는 없겠니?”

“좋습니다. 왕비님. 그러려면 먼저 저를 위해서 목욕물을 준비하라고 궁녀들에게 지시하십시오. 위대한 스승님의 가르침을 대신해 설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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