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사람 김성채 객원기자
2022-03-24 (목) 10:20아미타부처님법회 참석 기념사진
여래좌상 뒷벽에는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제 110호)된 아미타회상도가 걸려있습니다.
아미타회상도는 아미타여래께서 극락정토에 마련된 강당에 모인 성문과 보살들을 위하여 설법하시는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 탱화를 조성한 금어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미묘하고도 큰 진리를 깨닫게 된 참석자들 모두가 환희심이 넘쳐났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그렸을 겁니다.
그렇게나 좋은 뜻을 담아낸 회상도는 보존상태가 좋지 않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탱화는 한 가지의 색도 여러 번 덧칠로 이루어지는데 색을 낸 안료가 층층이 떨어져서 얼룩덜룩해졌고, 여기저기 상당히 많은 부분이 완전히 벗겨졌습니다. 하단은 특히 심해서 언제 어떻게 그려졌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처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불화(佛畫)를 떠올리며, 그렇게 보존해 오신 분들이 정성이 대단한 것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탱화의 중앙에는 아미타여래께서 높은 사자좌에 결가부좌하셨고, 여래 뒤로는 곡식을 까부르는 키 모양으로 넓게 두광과 신광이 퍼졌습니다. 부처님 몸에서 뻗어난 광명은 ‘일체 부처님들의 세계를 모조리 비출 수 있어서, 무량광불이라 찬탄한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좌보처 보살은 흰색 대의를 입어 백의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보관에는 화신불이 있고 왼손은 정병을 잡고 있습니다. 이는 부처님께서 ‘관세음보살의 몸에서 나오는 광명에는 중생이 살아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마니보주로 이루어진 보관에는 화신불 한 분이 서 계시다’는 말씀을 따른 것입니다. 보살이 들고 계신 정병에는 중생들이 겪는 사바세계의 고통과 갈증을 해소해 주는 감로수가 담겨 있습니다.우보처에는 일체의 중생이 삼악도의 고난을 겪지 않게 하는 큰 힘을 뜻하는 이름의 대세지보살이 서계십니다. 푸른 색 가사에 아직 피어나지 않은 연꽃 꽃대를 두 손으로 잡으셨습니다. 경전에는 ‘대세지보살의 보관에는 보배병이 얹혀있고, 시방세계의 청정한 불국토 모양이 나타나있다’고 쓰였는데, 이를 알아 볼 수 없어서 답답하였습니다. 안타까운 일은 자세히 보이지 않아서 ‘대세지보살을 관조한 사람은 아승지겁을 생사에 헤매지 않고, 언제나 청정한 불국토에 노닐게 된다’는 말씀이 이루어질 기회를 못 가졌다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뒤로 세분의 보살이 모서리 쪽으로 비스듬히 서계십니다. 관세음과 대세지보살만 이름을 알 수 있고, 다른 여섯 보살은 이름을 알 수 없습니다. 좌측엔 문수보살 금강장보살 미륵보살, 우측엔 보현보살 제장애보살 지장보살이려니 추측할 뿐입니다.
좌보처 관세음보살의 보관에 화신불이 서 계시고, 우 보처 대세지보살이 든 연꽃봉오리는 보관 옆에 그려졌습니다.
중앙에 위치한 아미타부처님과 좌우측 보살 사이에는 아난과 가섭 등 10대 제자가 자리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미타불이 극락정토를 세운 자초지종을 설하셨고, 수많은 보살과 성문들 그리고 제자들이 기뻐하였으며, 이 법회의 모든 과정을 다문제일 아난존자가 듣고 기록하였음을 보여줍니다. 10대 제자가 그려진 위쪽에 타방불이 보입니다.
초록색 머리의 아난존자와 푸른색 머리의 가섭존자가 합장을 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아미타불의 명성은 떨치지 않은 곳이 없어서, 나만 찬탄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도 한 결 같이 찬탄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타방불도 이 법회에 참석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전통사찰 천왕문을 지나며 큰 몸에 튀어나올 것 같은 눈을 가진 사천왕을 만나게 됩니다. 엄마 아빠를 따라 사찰을 방문한 아이들은 험상궂은 겉모양에 겁이 나서 작은 몸을 움츠리기도 하지요. 그런 사천왕이 탱화에 그려졌습니다. 사천왕은 인간이 살고 있는 남섬부주를 덮은 동서남북 하늘의 주인입니다. 그런 사천왕이 부처님의 감화를 받은 후, 부처님과 불법 그리고 불자들을 지키고 보호해주는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부처님의 법문을 듣기위해 수많은 사부대중과 다른 세계에서 불도를 이룬 타방불까지 왕림하셨으니,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천왕의 출현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사천왕은 자신이 다스리는 하늘의 위치에 맞춰 다른 얼굴색을 가졌습니다. 그 이유는 음양오행에 따라 동서남북을 푸른색 붉은색 흰색 검은색의 얼굴로 표현하는 때문입니다. 회상도에 그려진 사천왕의 얼굴색은 각각 다른 색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색이 바랜 때문인지 향초에 그을린 때문인지 정확한 색을 알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어렴풋이 증장천왕이 칼을 잡았고, 광목천왕이 여의주를 들었음을 알 수 있고, 다른 천왕은 어떤 지물을 들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검은색 안료가 색 바램이 적은 탓인지, 사천왕의 눈동자가 금어가 의도한 그대로 남아있다는 겁니다. 법회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바깥쪽을 주시하는데, 튀어나올 듯 그려진 눈망울이 ‘바깥은 우리가 책임지겠습니다’ 라는 각오를 보여줍니다.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극락보전에 들어서면서 극락정토에 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죽지 않고도 갈 수 있는 곳이 극락정토입니다. 극락보전에 들어와 아미타부처님과 한 공간에 머무른 시간이 짧았지만, 짧은 시간은 어리석은 중생의 탈을 벗어버린 보살이었던 것입니다. 극락보전 협문을 나서며 다시 본래의 중생으로 돌아와서도, 여유롭고 마음 편했던 즐거움은 쉬 가셔지지 않았습니다.
여러 장에 쓰인 많은 글자와 한 장의 그림
극락보전을 나와서 벽화를 둘러보았습니다.
쌍계사가 방아머리에 자리하였음을 나타내려는 듯, 혜능대사께서 디딜방아를 찧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나무꾼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청년, 한 스님이 독송하는 금강경의 한 구절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以生起心 -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을 듣고 출가를 합니다. 이 청년이 혜능스님이지요. 혜능의 근기를 알아챈 스승께서는 남들의 시기로 자칫 잘못될 수 있음을 막아주려고, 방아를 찧는 허드렛일을 시킵니다. 그리고 글자도 깨우치지 못했다는 혜능스님은 불자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게송을 짓습니다.
보리본무수 명경역비대 본래무일물 하처유진애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有塵埃)
깨달음에 몸통이며 가지란 것이 없듯
거울에 비친 것도 거울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은 본래부터 비어있는데
사바세계에 살아가더라도 티끌이 묻어나겠는가. (의역하였습니다)
이 게송을 본 스승님(5조 홍인스님)은 혜능스님에게 부처님을 상징하는 가사와 발우를 전하십니다. 방아머리가 가까운 쌍계사 법당에 디딜방아를 그린 것이 재미있는 발상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다른 벽에는 한산습득도가 그려졌습니다.
당나라에 어떤 절에서 주워온 아이를 스님으로 키웠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그래서 습득(拾得)입니다. 불전에 올린 공양을 새들이 먹어치우자 ‘새도 못 지키는 주제에 어떻게 절을 지키냐?’ 며 사천왕을 후려치는 기행 등을 펼쳤지만, 불법의 이치에 맞는 말만 했다고 합니다.
한산은 습득을 찾아와 대중이 먹다 남긴 공양을 먹었고, 때때로 소리를 지르고 하늘을 향해 욕을 하는 바람에 스님들에게 쫓겨나곤 했답니다.
벽에는 한산이 손가락으로 누렁 소인지, 검은 소인지, 아니면 축 늘어진 소나무가지를 가리키고 있고, 습득은 활짝 핀 연꽃을 들고 염화미소를 짓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한 쪽에는 ‘또 헛소리를 하네’ , ‘안 됐군, 안 됐어’ 하며 혀를 차는 스님이 그려졌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름이나 모습을 분별하고 집착하면, 탐욕을 일으킨다’며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여우견지월 관지부관월 계착명자자 불견아진실
(如愚見指月 觀指不觀月 計著名字者 不見我眞實)
어리석은 사람, 달을 가리켜 보이면손가락만 보고 달은 보지 못하니명자(名字)에 계착하는 자는나의 진실을 보지 못한다.
깨치기 어려운 글귀를 한 장의 그림으로 단박에 알게 하는 그림의 위력을 실감하며, 바람의 언덕으로 발을 옮겼습니다.
바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발길을 옮긴 곳은 명부전 뒤편 쌍계사 수목장림 “바람의 언덕”입니다.
영화의 첫 장면처럼 보이는 입구로 들어서니, 나지막한 언덕에 나이어린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줄지었습니다. 수목장을 개설한 지가 얼마 안됐다는 이야기입니다. 바람의 언덕에서 ‘바람이 어떤 바람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풍(風)을 뜻한 것인지, 원(願)을 뜻하는 것인지를 알지 못하지만, 어느 것이든 좋다는 생각입니다.
“風”자의 뜻으로 세워진 수목장림이라면, 자연에서 태어나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을 겁니다. 가졌고 또 누렸던 모든 것을 놓고 바람으로 돌아온 곳이라니 기막히게 좋은 뜻입니다.
무상게 “난기귀화 동전귀풍 사대각리 금일망신 당재하처(煖氣歸火 動轉歸風 四大各離 今日亡身 當在何處 - 몸의 더운 기운은 불로 돌아가고, 활동하던 기운은 바람 따라 사라져 마침내는 흙으로 물로 불로 바람으로 흩어지게 되니, 돌아가신 몸이 어디 있겠는가)”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願”자의 뜻으로 세워진 수목장림이라면, ‘많은 선근공덕을 쌓고, 지성으로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한 중생이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부처가 되지 않겠다’하신 아미타부처님의 발원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따스한 햇볕이 깔려있는 바람의 언덕을 이리 저리 걸으면서 바로 옆 명부전에서 거행되는 천도재 염불을 듣는(듣는지 못 듣는지 모르겠지만) 망자를 떠올렸습니다.
쌍계사를 찾은 이유는 경기도가 지정한 유형문화재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미타회상도와 목조여래좌상 그리고 현왕도입니다. 현왕도는 보지를 못했는데 “아미타회상도”처럼 훼손이 심한 때문인지, 훼손이 염려되는 때문인지, 별도로 보존되어 볼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 볼 수 있겠는가를 문의했지만 ‘기약할 수 없다’는 답을 듣고서는 다음에 언제 볼 기회가 있겠지 하고 돌아섰습니다. 볼 인연이 생긴다면 그 결과를 꼭 알려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쌍계사를 찾았던 이야기를 그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