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지 않은 사랑 속으로- 

 소문이 났다.

 마을이 난리 났다.

 그의 소문은 소문에서 소문에로. 마을에서 마을에로 퍼져나갔다. 오늘 만나는 그이는 우리나라 불교를 대표하는 원효성사를 종조로 하는 원효종단의 수장, 원호 종정 스님이다. 그는 늘 낯설은 돌쩌귀에서 낯익은 돌쩌귀에로, 낯설은 문설주에서 낯익은 문설주에로, 그렇게 다른 대문에서 또 다른 대문에로 드나들었다. 그리고 또다시 거리에서 거리에로, 시장에서 시장에로 약한 사람이 있는 곳이면, 약한 곳이 있는 사람에로 수수깡 바람개비처럼 맴돌았다. 

 매양 처음 보는 얼굴들, 그러나 그는 하나도 낯설지 않단다. 어디서 보았을까? 모두 그 옛날 보던 얼굴이란다. 그는 그런 수행자다. 그에게는 단정한 의복 하나가 없다. 그의 대표작, 억세게 눌러쓴 검은 빵모자. 그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빵을 좋아한다. 그런데 빵은 빵으로 끝나지 않는다. 꼭 달디단 포도주가 따른다. 휄덜린의 <빵과 포도주>처럼, 세상 일이란 다 그렇다. 하나에서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그게 부처님 법이다. 선행은 선행에로 악행은 악행으로 번진다. 

 이 땅에 그것을 가장 잘 아는 수행자! 소문의 진원지, 그곳으로 가는 길. 강화(江華)와 더불어 우리 불국의 성지 경주(慶州)의 푸르고 푸르른 단 항구 감포(甘浦)다. 경주에서도 차로 한 시간 거리의 다방(茶房). 

 "파란 파도에 파란 별이 보이는 곳으로 오세요."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그의 사찰은 언제나 그가 머무는 곳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필자가 수많은 도량의 스님들을 만났지만 다방에서 만나자는 스님은 처음이다. 익히 그의 성품은 알고 있는 터, 토함산 터널이 뚫려 시내에서 그래도 반절 이상 가까워졌다. 3월이 다시 겨울로 가려는지 감포 바닷가는 세찬 북풍이 거세다. 10여 년 전 도반들과 이곳에 앉아 <청진을 그리며>라는 시를 읊은 적이 있다. 물론 몇 잔의 곡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때처럼 갈매기는 여전하지만 역시 인적이 없다. 희뿌연 안개와 저녁 으스름, 별은 아직 멀다. 낯익은 이름, 별다방!

 그냥 노랫소리만 흘러나올 뿐이다. 별은 보이지 않지만 낯익은 별다방은 낯익은 별다방에로, 아련한 등대는 역시 아련한 등대에로 무심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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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만 나를 안아 주세요 아무런 말도 하지 말아요 

 이대로 영원히 함께해요 가슴이 메어져 오네요 

 알아요 맺지 못한 다는 걸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이렇게 우린 하나인데 내 곁에 있어주세요 

 사랑해요 나를 안아줘요 두렵지가 않아요 

 세상이 뭐라 해도 난 괜찮아 너와 함께 할 수 있다면 

 내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좋아 이렇게 함께 있으면

 그이는 사람을 만나면 덥석 손부터 잡는다. 그는 치장하지 않는다. 오가는 곳도 일정치 않다. 오늘은 안동에로, 내일은 부산에로, 이번에는 경주에로다. 걸친 의복도 농투사니 그대로다. 머리 위 눌러쓴 빵모자가 역시 잘 어울린다. 손발이 먼저 움직이는 그이는 손목도, 발목도 좋지 못하다. 선(禪) 한 사람의 눈물은 쉬이 마르지 않는다. 그의 눈엔 늘 눈물이 있다.

 "내 절이 어디요?"

 내게 되묻는다.

 "여기가 내 절이오."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대구서 오는 길입니다."

 그이가 빙긋 웃는다. 

 "차는 막히지 않았습니까?"

 언제나 상대 걱정이 먼저다.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몇 년 전인가? 

 서울역 어딘가에서 만나 적이 있다. 그때도 그는 이 차림새였다. 김장을 하고 왔다며 낡은 의복에 잔뜩 고춧가루를 묻힌 채였다. 그래서 필자는 방금 그가 어디서 무얼 하고 왔는지 알고 있다. 

 "노래하고 왔지요? 이 노래가 내 대표곡이에요"

 별다방의 이끼 낀 스피커에서 흐르는 <두려움 없는 사랑>은 절절하다. 

 짐작이 간다.

 "저 보살이 나만 오면 이 노래를 틀어줘."

 카운터 한켠, 40대의 여인이 생긋 웃는다. 파란 옷, 파란 스카프, 그야말로 한껏 멋을 부린 마담은 푸른 감포를 닮았다. 그런데 오늘 바다는 고요하지 못하다. 사납고 거친 겨울바람을 몰아내기 위해 용트림을 한다. 푸른 파도가 푸른 파도를 부순다. 그래서 봄바람은 슬프다. 스스로 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안간힘을 쓰는 겨울 북풍도 끝내 저리 쓰러질 것이다. 차디찬 북풍은 차디찬 북풍에로. 

 그의 인생 여정은 그야말로 두렵지 않은 사랑이다.

 1970년경에 시작된 철도원 생활, 몇 개월만 더 버티면 공무원 연금을 수령할 수 있음에도 단  몇 개월을 남기고 퇴직했다. 그리고 출가했다. 왜 그랬을까? 잘못하면 또 우문의 현답이 들려올 터, 묻지 않기로 했다.

 "철없던 시절, 내가 못나서 참으로 가슴 아프게 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한테 죽도록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코가 깨지고 싶었어요. 만신창이가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내달렸다. 수행자가 아니었다. 무분별한 봉사의 시절이었다. 닥치는 대로 움직였다. 노인정에서 노인정에로, 호스피스 병동에서 호스피스 병동에로, 그리고 웃음 레크리에이션 강사에서, 치료 레크리에이션 강사에로 마구 날았다. 그러자 방송에도 나오고 신문지상에도 올랐다. 우스운 일, 그러나 이런 인터뷰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굳이 사찰로 가려는 필자를 별다방으로 오라고 한 까닭이다.  

 "영주 웃음꽃 피는 마을에서 시작했지요."

 그는 봉사에 관한한 이 나라 제일이다. 그에 관련된 자격증만 20여 개가 넘는다. 모두 돈과는 상관없는 헛 자격증들이다. 개중에 그의 전문은 호스피스다.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지요. 저는 환우에게 웃음과 웰다잉을 하였지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초연하게 받아 들일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환우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노래란다. 그래서 수년간을 웃음치료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있었다. 오로지 소외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과 생사를 오가는 환우들을 위해서 음악 치료레크리에이션을 하면서 야단법석을 열었다.

 "모름지기 수행자라면 가장 못난 사람이 가장 일 잘하는 공무원보다는 나아야지요. 그런데......"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이 간다. 

 "그렇지만 돈 없으면 봉사 못해요. 그래도 정부 돈은 한 푼도 받지 않았어요. 봉사자 모두 십시일반 갹출해서 웃고 놀았지요. 누구도 인상을 찡그리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그는 눈물 한켠 앞에 웃음을 달고 산다. 웃음 전도사.

 "웃음에는 삼소(三笑)가 있습니다. 실소, 미소, 허소. 그중에 제일이 미소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웃어야 합니다. 그래야 스스로 복을 받습니다."

 역시 그는 심리학 전공자다. 울릉도 독도 인근에서 배를 탔다. 석,박사과정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최고의 대학에서 학위를 받아서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의 솜씨는 솜씨가 아니다. 맘씨다. 부처님처럼 맘씨를 잘 운위하는 그는 <더불어 시장통>이다. 튀김 파는 아주머니와 빵집 여직원들과 아주 친하다. 살짝 날짜를 넘기기 전의 튀김이나 빵을 채집하기 위해서다. 그것을 속칭 노숙자나 어려운 독거노인들에게 날랐다. 물론 다방 여직원들과도 아주 친하다. 잘나가는 노래 테이프를 전달받기 때문이다. 향 좋은 커피는 덤이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다방 마담이 우리를 바라보며 다시 생긋 웃는다. 이번에는 봄바람 색이다.

 혼자 사는 노인들은 먹지 못한단다. 돈도 없어서지만 혼자 먹는 것이 귀찮아서 먹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이란다. 그런데 빵과 우유는 간편하다. 게다가 튀김까지 곁들이고 노래가 있으면 그제야 공양하신단다. 

 "우리는 다른 이들과 달라야 합니다."

 교단이 망하는 지름길이 있다. 돈과 권력, 그것에 시선이 가면 아수라장이 된다. 그가 좋아하는 세 가지, 이번에는 삼소(三笑)가 아니라 삼자(三者)다. 부처님 하수자, 원효성사 추종자, 노약자들 보호자.

 "우리는 아무것도 할 것 없습니다. 그냥 약한 사람들 보호하면 끝입니다."

 백번 지당한 말, 철도원으로 잔뼈가 굵은 그의 음성은 꼭 멀리 떠나는 기적처럼 울린다. 그가 멀리 바다를 보며 손짓을 한다. 하얀 손, 그러나 산전수전, 공중전도 모자라 토굴전까지 겪은 그의 고운 손은 자세히 보면 마치 갈퀴와 같다. 

 "부처님 법 따르다가 죽지요. 여한 없습니다."

 무서운 말이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위법망구(為法忘軀)!

 법을 위하여 몸을 잊는다. 또는 몸의 고통을 달게 받는다는 뜻이다. 부처님은 보살은 법을 위하여 세 가지를 버린다고 설하였다. 몸、목숨、재물이 그것이다. 몸을 버린다는 것은 몸을 아끼는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추위에 떠는 불쌍한 사람을 위하여 옷을 벗어주고 자신은 추위를 기꺼이 감당하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그는 옷 대신 몸을 주었다.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목숨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거나 위험한 곳에 처한 사람을 구하려고 자기 목숨의 위험을 감수하는 선한 행위가 여기에 속한다. 또한 부모가 자식의 죽을 죄를 대신하여 처형을 받으려고 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하니 자기 목숨보다 자식의 목숨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것은 부처님의 전생의 몸인 보살이 굶주린 호랑이를 위하여 몸을 보시하는 것과 같은 보살행이니 자기 목숨보다 중생의 목숨을 더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 재물을 버린다는 것은 재물을 아끼는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보살은 본래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는 무소득, 무소유의 도리를 꿰뚫어 알기 때문에 일체 아낌이 없다. 콩 한쪽이라도 남에게 기쁜 마음으로 주는 행이 여기에 속한다. 음식、옷、침구、의약품、가재도구와 물건을 남에게 보시하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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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사실 오늘은 우리 원효성사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만났습니다. 내 얘기를 듣지 말고 그분을 만나세요. 우리 스님들이 종종 중국의 선사들을 추앙하지만, 정말로 우리 불교를 오늘에 있게 한 것은 원효스님이지요. 그분이 없었다면 이 땅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 되었겠지요. 그분은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우리의 영원한 오아시스입니다. 그 분을 불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알려주세요."

 그의 눈엔 항상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에게 원효스님은 살아있는 현재다.  

 그렇다. 

 거의 모든 진불제자들은 같은 맥락이 있다. 부처님 뒷전에서 꼭 스승을 앞세운다. 선거의 계절, 어디 어디 무덤에 가서 눈물 흘리는 정치인들을 보면 실소가 나온다. 그들이 자신의 아버지, 그 아버지 산소에 가서 눈물 한번 흘린 적이 있을까? 그들의 눈물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그래서 그는 감포에 자주 온다. 원효스님의 본향, 그는 여기서 세상을 읽고 본다. 바다를 보고 바다를 생각한다. 낮은 구릉을 보고 구릉을 생각한다. 그와 여기까지 이야기되면 우리 원효성사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기실 그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 불교가 아직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가?

 "경주에 오면 늘 그분과 만날 수 있지요."

 원효(元曉)성사의 원효라는 이름은 출가한 뒤 지은 이름으로, 첫새벽(始旦)을 뜻한다. 태종무열왕의 둘째 사위 내말 설담날의 아들이며, 설총의 아버지이다.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지 90년 만에 태어난 그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불교사상가이자 사회지도자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어머니가 그를 잉태할 때 유성이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으며 낳을 때에는 오색의 구름이 땅을 덮었다. 아명인 서당의 당은 속어로 '털'이라는 뜻이며 따라서 서당은 '새털'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는 그의 어머니가 그를 잉태하고 달이 찼을 때 집 근처의 밤나무 밑을 지나다가 갑자기 해산하게 되어 다급한 중에 남편의 털옷을 그 밤나무에 걸고 그 밑에 자리를 마련하여 아기를 낳은 데서 얻어진 이름이다. 

 모두가 알듯이 원효는 650년 의상과 함께 당나라 현장(玄奘) 스님에게 유식학을 배우려고 요동에까지 갔다가 그곳 순라군에게 첩자로 몰려 여러 날 갇혀 있다가 돌아왔다. 661년 의상과 함께 이번에는 바닷길로 당나라에 가기 위해 당항성으로 가는 도중 비 오는 밤길인지라 어느 토굴에서 자게 되었다. 잠결에 목이 말라 바가지에 담긴 물을 달게 마셨는데, 이튿날 아침에 깨어보니 토굴이 아닌 오래된 무덤이었고, 마신 물은 해골에 담긴 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 토하다가 알게 되었다.

 "마음이 일어나므로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니 땅막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알았다."

 그는 유학을 포기했다. 

 "또 무엇을 구하고 어디에 가서 무엇을 배운단 말인가. 신라에 없는 진리가 당에는 있으며 당에 있는 진리가 신라에는 없겠는가?"

 그는 곧바로 되돌아와 이후 저술과 대중교화에 몰두했다. 당시 신라 사회는 원광과 자장의 교화에 큰 영향을 입었으나 왕실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불교와 일반 서민불교 사이에는 여전히 괴리가 있었다. 혜공, 혜숙, 대안스님 등이 일반 서민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가 그들에게까지 불교를 일상생활화시켰다.

 원효가 거리에서 노래했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주겠는가, 내가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을 것이라." 

 보통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태종무열왕이 이 노래를 전해 듣고 원효가 나라에 크게 쓰일 인재를 낳고자 함을 알고 나서 과부였던 둘째 딸 요석공주와 원효를 이어주었다. 그는 요석공주와의 사이에 후일 대학자가 된 설총을 두었다. 원효는 요석공주와의 잠자리로 계를 어긴 후에는 스스로 소성거사라 자칭하면서 지방의 촌락, 길거리를 두루 돌아다니며 바가지를 두드리고 <화엄경>의 '모든 것에 걸림 없는 사람이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났다'라는 구절로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가무와 잡담 중에 불법을 널리 알려 일반 서민들의 교화에 힘을 기울였다.

 그가 스스로 소성거사라 부른 것은 실계로 인한 속죄의 한 방법이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대중교화의 방편이었다. 이는 대중교화의 선구자인 혜공이 등에 삼태기를 지고 길거리에서 대취하여 노래하고 춤추었던 것이나, 대안이 특이한 옷차림으로 장판에서 동발(銅鉢)을 치면서 대안, 대안!을 외친 것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불교뿐 아니라, 당대의 지배적인 사상이었던 유교와 도교, 법가사상 등에도 해박했다. 그는 그때까지 전승되는 불경을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 주석을 하는 데 힘써서 100여 권의 글을 남겼다고 전해지지만, 현존하는 것은 일부이다. <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 <십문화쟁론> 등은 원효의 일미 화쟁(和諍) 사상을 잘 보여주는 저작으로, 외국에 전파되어 중국과 일본의 불교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많은 저술에서 자신의 주장을 폄에 있어 화쟁이라는 방법을 썼다.

 뭇 경전의 부분적인 면을 통합하여 온갖 물줄기를 한맛의 진리 바다로 돌아가게 하고, 불교의 지극히 공변된 뜻을 열어 모든 사상가들의 서로 다른 쟁론들을 화해시키려 했다. 그의 이 화쟁 방법은 근원적으로는 부처님의 화합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은 당시 수많은 사상체계들이 서로 대립, 충돌을 일으키는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논쟁에 끼어든 적이 없었다.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논의는 진실한 실천적 인식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진실하게 살아가는 길과 진실에 대한 실천적 인식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려 했을 뿐, 베다(veda)의 권위를 배척하고 모든 형이상학적 논의를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했다. 불교에 있어서의 화(和)의 원리는 이처럼 실천원리를 중시하는 부처님에서 그 싹이 나타난 셈이고 이는 대중교화에 뜻을 두어 진속일여를 주장한 대승불교 후기에까지 면면히 이어진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 이후 1200여 년 만에 신라통일기에 나타난 기치를 높이 든 것은 바로 부처님 이후 대승에 이르기까지의 화의 정신의 시대적 재현 또는 재창조였다. 

 언제나 앞장서서 깃발을 드는 원효스님과 같으면서도 

 다른 이름 원호스님. 

 그가 또 세 가지를 꼽는다.

 삼려(三勵)

 배려

 독려

 격려

 "두고 보세요.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원효성사께서 일군 우리 불교는 결국 살아남지 못합니다. 약자들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 부처님입니다." 

 누가 함부로 이 나라 불교를 논하는가? 

 어디서 돈오와 돈수를 말하는가? 무엇하러 선과 교를 말하는가? 이 나라에 불교가 존재함은 오수와 선교 때문이 아니라 그 어느 곳에도 기댈 곳 없는 약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없다면 불교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지나간 과거와 타인들입니다. 그들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변해야지요. 그것이 수행자들의 가장 큰 덕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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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천사, 원호스님.

 그는 그 존재의 이유를 찾아 끊임없이 떠돈다. 그리 성치 않은 몸, 범인이라면 벌써 저승으로 갔거나, 입적하는 날까지 병원 신세를 져야 될 낡은 몸, 그러나 그는 항상 건재하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 그것이 그가 여태 살아있는 이유다. 까닭이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온통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그는 낯설은 곳에서 낯설은 곳에로 발길을 옮긴다. 소문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바람이 바람을 낳았듯, 소문은 소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보다 조금 먼저 간 원효성사가 그러했듯, 그도 소문을 따라 움직인다. 항용 소문이란 늘 못난 이들의 함성이다. 아우성이거나 바램이다. 소문을 따르는 자, 그들 앞에 축복 있으라. 

 "어디로 가십니까?"

 "경내에 아담한 불교학교 하나 세우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의 피투성이 이승의 여정은 어디서 끝날 것인가. 총총 어디론가 발길을 재촉하는 그의 빵모자 위로 이제 파란 별들이 섰다. 날이 맑아서가 아니다. 눈앞이 말끔해서다. 다만 그가 가는 곳에 불 밝히지 못한 저 등대 대신 일찍 뜬 낮달 같은 차단한 등불 하나라도 하나 마련할 수 있다면. 그는 반짝이는 등불 하나에서, 더 반짝이는 등불 하나에로 이어진 그 길로 갈 수 있을까? 아마도 그는 그 길마저 마다할 것이다. 그에게는 그를 지켜주는 등불이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약자들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