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찬주
2022-03-09 (수) 08:36복의 힘으로 불도를 이룬다
정찬주(소설가)
마중물 생각
어느 해 청화스님을 뵌 적이 있다. 스님께서는 소박한 방 벽에 두 장의 수건을 걸어 놓고 정진 중이셨다. 한 장은 세수하신 뒤 물기를 닦는 수건이고, 또 한 장은 부처님 법을 만난 고마움에 절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는 수건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친지 지인들도 청화스님처럼 두 장의 수건을 걸어 놓고 살기를 발원해 본다. 어떤 분은 가끔 어머님 아버님 은혜가 사무쳐서 흘리는, 그 회한(悔恨)의 눈물을 닦는 수건이 되기도 하리라.
‘눈물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수저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는 말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고 뇌리에 남아 있다. 눈물의 시간도 수저의 수고가 있었기에 나름대로 빛을 발하는 귀한 추억이 되지 않았을까? 청화스님처럼 부처님 말씀이 우리 가슴을 적신 적은 없었을까? 오늘은 부처님께서 고지식할 정도로 순수했던 아니룻다에게 하시는 말씀을 ‘귓속의 귀’로 들어본다.
부처님 말씀과 침묵
부처님께서 기원정사 대중을 위해 설법하고 계실 때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아니룻다는 꾸벅꾸벅 졸았다.
부처님께서는 설법이 끝난 뒤 아니룻다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니룻다여, 너는 어째서 집을 나와 도를 배우느냐?”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벗어나려고 집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너는 졸고 있으니 어떻게 된 일이냐?”
아니룻다는 자기 허물을 뉘우치면서 부처님께 말씀을 올렸다.
“이제부터는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는 부처님 앞에서 졸지 않겠습니다.”
이때부터 아니룻다는 밤에도 자지 않고
뜬 눈으로 정진하다가 마침내 눈병이 나고 말았다.
부처님께서 타이르셨다.
“아니룻다여, 너무 애쓰면 조바심과 어울리고
너무 게으르면 번뇌와 어울리게 된다.
너는 그 중간을 취하도록 하라.”
그러나 아니룻다는 부처님 앞에서 졸지 않겠다고
맹세한 일을 상기하면서 타이름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룻다의 눈병이 날로 심해진 것을 보시고
부처님께서는 의사 지바카에게 그를 치료해 주도록 하셨다.
아니룻다의 증세를 살펴본 지바카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아니룻다님이 잠을 좀 자면서 눈을 쉰다면
치료할 수 있지만, 통 눈을 붙이려 하지 않으니 큰일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아니룻다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니룻다여, 잠을 좀 자거라.
중생의 육신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눈은 잠을 먹이로 삼고, 귀는 소리를 먹이로 삼으며
코는 냄새를 먹이로 삼고, 혀는 맛을 먹이로 삼으며
몸은 감촉을 먹이로 삼고, 생각은 현상을 먹이로 삼는다.
그리고 여래는 열반으로 먹이를 삼는다.”
아니룻다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러면 열반은 무엇으로 먹이를 삼습니까?”
“열반은 게으르지 않는 것으로 먹이를 삼는다.”
아니룻다는 끝내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눈은 잠으로 먹이를 삼는다고 말씀하지만
저는 차마 잘 수 없습니다.”
아니룻다의 눈은 마침내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애써 정진한 끝에 마음의 눈이 열리게 되었다.
육안을 잃어버린 아니룻다의 생활은 말할 수 없이 불편했다.
해진 옷을 깁고자 바늘귀를 꿰려 하였으나 꿸 수가 없었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세상에서 복을 지으려는 사람은
나를 위해 바늘귀를 좀 꿰어 주었으면 좋겠네.’
이때 누군가 그의 바늘과 실을 받아 해진 옷을 기워주었다.
그 사람이 부처님인 줄 알고 아니룻다는 깜짝 놀랐다.
“부처님께서는 무슨 복을 또 지을 일이 있으십니까?”
“아니룻다여, 이 세상에서 복을 지으려는 사람 중에
나보다 더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여섯 가지 법에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여섯 가지 법이란, 보시와 교훈과 인욕과 설법과
중생제도와 더 없는 바른 도를 구함이다.”
아니룻다는 말했다.
“여래께서는 법의 몸이신데 다시 더 무슨 법을 구하려 하십니까?
여래께서는 생사바다를 건너셨는데 더 지을 복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다. 아니룻다여, 네 말과 같다.
중생들이 악의 근본인 몸과 말과 생각의 실행을 참으로 안다면
결코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생들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나쁜 길에 떨어진다.
나는 그들을 위해 복을 지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힘 중에서도 복의 힘이 가장 으뜸이니,
그 복의 힘으로 불도를 성취한다.
아니룻다여, 너도 이 여섯 가지 법을 얻도록 하라.
수행자들은 너와 같이 공부해야 한다.”
― 『증일아함增一阿含 역품力品』
갈무리 생각
선물 중에서 가장 받고 싶은 책이 있다면 불경이다. 그것도 책상 위에 두고 싶었던 불경을 선물 받으면 더없이 기쁘고 행복하다. 이병욱 거사님이 <법구경-담마파다>을 보내왔다. 이 거사님과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부처님과 제자들 간에 인연담을 궁금해하자 <법구경-담마파다>를 소개하면서 흔쾌히 선물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이 거사님이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 선생의 번역작업 시 교정 일을 도왔다고 해서 여분이 있는 줄 알고 보내주겠다고 했을 때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했는데, 책을 받아보니 미안하기 그지없다. 교보문고에서 <법구경-담마파다>를 구입해 택배로 보내온 것이다. 너무 뜻밖이어서 바로 전화해 고마움을 표했다.
이병욱 거사님이 보낸 <법구경-담마파다>를 받고 나서 나는 아니룻다를 위해 설한 부처님 말씀 가운데 한 구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세상 모든 힘 중에서도 복의 힘이 가장 으뜸이니, 그 복의 힘으로 불도를 이룬다.’
복의 힘으로 불도를 이룬다는 부처님 말씀을 벽에다 청화스님의 수건처럼 걸어놓고 적어도 하루에 세 번은 되새기고 싶다. 복의 힘으로 불도를 이룬다. 복의 힘으로 불도를 이룬다. 복의 힘으로 불도를 이룬다.